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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일 차 : 오락가락 날씨가 미웠지만, 그래도

22.3km, 8시간 30분

by 베라노드림

어제 묵은 알베르게는 자면서 침낭을 걷어찼을 정도로 너무 따뜻해서 좋았지만 화장실 개수가 적은 편이라 조금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고 생각해서 아침에 문 연 카페가 한 군데는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는데도 보이지 않아서, 이대로 못 먹고 가나 싶었지만 다행히 문이 열려 있는 곳을 찾았고 아침을 먹고 갈 수 있었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출발하는데 오랜만에 비가 안 와서, 그리고 못 먹을 뻔했던 아침을 먹어서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마을 이름으로 되어있는 조형물 앞에서 동행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찍느라 그리고 이제 산티아고 도착까지 4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서, 걸음도 느려졌다.


걷다 보니 카페가 나왔고 잠시 쉬어갔다.

분명 카페에 들어갔을 때는 햇빛 쨍쨍한 맑은 하늘이었고 너무 더웠는데 다 먹고 출발하려고 하니 갑자기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흐려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 너무 추웠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비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결국 오늘도, 우의를 입어야 했다.

하필 비도 우박 같이 엄청 쏟아져서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비와 함께 걷겠구나 싶었다.


카페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티아고 도착까지 100km 남았다는 비석을 보게 됐다.

이 비석을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고 진짜 이제 걸을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내가 여기까지 많이 걸어왔구나 생각하니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고,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이 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조금만 돌아가면 기념 도장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도 도장을 찍고 나니 뿌듯한 마음이 컸는데 마침 비도 거의 그쳐서 더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 또 조금씩 비가 내렸고 화장실을 가려고 들렸던 카페는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한국에 있는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에, 디저트도 못 보던 것들이 있어서 배는 안 고팠지만 먹어 보고 싶어 주문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처럼 너무 맛있었다.

원래는 지나쳐 가려던 곳이었는데 화장실도 들를 겸 잠시 쉬었다 가자는 동행들의 의견에 멈췄던 곳인데 그냥 지나쳤으면 너무 후회했겠다 싶었다.


오늘의 도착 마을에 들어서려고 할 때쯤 무지개가 떴다.

아마 순례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무지개를 본 것 같은데 그 모습이 신기하고 이뻐서,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힘들게 걸어왔다고 위로해 주고 선물을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분명 이때까지만 해도 한쪽은 먹구름이, 한쪽은 햇빛 쨍쨍한 맑은 하늘이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또 비가 내렸다.

오늘 날씨는 진짜 너무 할 정도로, 맑은 하늘을 보여주다가 흐린 하늘을 보여주며 비가 내리고 또 햇빛 쨍쨍하다가 또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마을에 들어선 순간, 마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동네 구경을 해야겠다 싶었고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일단은 알베르게로 먼저 갔다.

씻고 정리하고 쉬고 있으니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 같아서 나가려고 준비하니 동행들도 함께 한다고 해서 다 같이 나왔지만 그새 또 비가 내렸다. 그래도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우산을 쓰고 걸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 마을이 이뻐서 구경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었다.

초코라테 맛집이라는데, 지금까지 걸으면서 먹던 초코라테는 우유에 코코아 가루를 타 먹는 형태였다면 여기 카페에는 다른 형태의 초코라테가 있다고 해서 꼭 먹어보고 싶었다.

카페로 가는 길에 강이 보였는데 그 풍경이 너무 이뻐서 잠시 멈춰서 바라봤다. 분명 비가 조금씩 오고 있는데도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보였고 전체적으로 너무 이뻐서 그리고 맛있는 초코라테를 먹을 생각에 괜히 설렜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디저트가 몇 개 안 남아 있어서 선택지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먹고 싶었던 디저트와 초코라테를 시켰다.

추로스에 찍어먹을 수 있을 정도의 꾸덕한 초코라테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달지는 않아서 맛있었고 한국에서부터 저장해 둔 곳이었기에,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먹을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카페에서 쉬다가 동네 구경을 하려고 나왔는데 분명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보이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으로 바뀌어있었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너무 아쉬웠지만 숙소로 돌아갔고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파스타 맛집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식당을 찾아갔지만 거기도 문이 닫혀 있었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맛집은 포기하고 문이 열려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메뉴는 햄버거였는데 수제 햄버거라 빵이 너무 맛있었고 전체적으로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가 며칠째 지속되고 있어서, 오늘따라 날씨가 더 변덕스러워서 너무 얄미웠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디저트도 먹고 무지개도 보고 이쁜 마을에 도착해서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어서, 먹고 싶었던 꾸덕한 초코라테를 먹어서, 선택지가 없었던 저녁메뉴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맛있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지만 내일은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아니 도착하는 날만이라도 비가 내리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며칠 남지 않은 날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쉽지 않도록, 내일도 무사히 걷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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