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km, 7시간 40분 걷기
오늘은 7시쯤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열려있는 카페를 겨우 찾아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출발하려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우의를 입었지만, 곧 그쳤고 그 이후로는 비가 오지 않아 오랜만에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을 보며 기분 좋게 걸어갔다.
오늘은 처음으로 동행 중 한 명과 단 둘이, 꽤 오래 같이 걸었는데 생각해 보니 30일을 넘게 걸어오면서 이 동행과는 처음으로 단 둘이 걷는 거 같았다. 지금까지 비슷한 성향이라고 느꼈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더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껴져 얘기가 잘 통했고 걷는 내내 웃으면서 걸어서, 덕분에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중간쯤 걸어왔을까, 원래는 조금 더 걸어가면 괜찮은 식당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동행 중 한 명이 너무 힘들어해서 조금 빨리 멈춰서 점심을 먹었다.
계산은 나갈 때 해라고 하셔서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아저씨께서 작은 잔에 술을 담아 맛보라고 주셨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마실까 말까 고민하다가 순례길을 잘 끝내기를 바란다며 주신 거라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마셨는데 맛은, 마음과는 달라서 도저히 끝까지 마실 수가 없었다. 너무 죄송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마음만은 너무 감사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햇빛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추웠고 오랜만에 발바닥이 조금 아팠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오후 늦게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서 걱정됐지만 다행히 방이 있었고 우리 동행들만 지낼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셔서 좋았다. 게다가 따뜻하고 시설도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머물렀던 알베르게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씻고 정리하고 숙소에서 개인시간을 보내며 잠시 쉬다가 가고 싶은 식당이 있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식당에 도착하니 최근 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한국분이 저녁을 드시고 계셨고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한국분들도 오셨다. 그 이후로도 맛집답게 다른 순례자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례자 메뉴로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이렇게 먹었는데 갑자기 손님이 몰리면서 음식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기대만큼 맛있었다.
오늘은, 아침에는 비가 조금씩 내려 흐렸는데 점점 날이 개면서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좋았다.
최근 걸으면서, 맑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아니면 비가 그쳤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는 날씨였는데 오늘은 아침에만 흐렸을 뿐 이후에는 햇빛이 쨍쨍했고 파랗고 맑은 하늘을.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볼 수 있어서 이거 하나 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동행 중 한 명과 처음으로 단둘이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았고 그 시간이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이 길을 끝내려고 하니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어서 한편으로는 왜 이제야 가까워졌을까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가까워져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일은 오늘 보다는 좀 더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오늘처럼 비가 오지 않기를, 많이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기를, 딱 오늘 같은 하루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