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5. 34일 차 : 상상도 못 한 재회, 끝을 향해서

19.2km, 5시간 30분 걷기

by 베라노드림

오늘은 짧게 걷기로 해서 조금 늦게 일어나려고 했는데 어김없이 일찍 눈이 떠졌다.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창 밖을 봤는데 점점 해가 뜨면서 보랏빛 하늘로 변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 이뻐서 사진을 찍으려고 창문을 열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제대로 찍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눈으로 밖에 볼 수 없었고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 이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가려고 알베르게 근처에 있던 카페에 들어갔다.

그냥 걸어가는 길에 보여서 들어갔던 곳인데 빵 종류가 너무 많고 다 맛있어 보여서 쉽게 고르지 못해 고민 끝에 겨우 골랐는데 다행히 전부 다 만족스러웠다.

맛있는 빵을 먹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비도 오지 않아서 더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3시간쯤 걸었을까, 식당이 나왔고 배는 별로 안 고팠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멈췄다.

분명 여기 식당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따뜻해서 더웠는데 햄버거를 먹고 쉬다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흐려지며 바람이 차가워져 경량 패딩을 꺼내 입어야 했고 비도 조금씩 내렸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예측할 수 없는 날씨였다.


오늘은 이 길에서, 동행들과 함께 알베르게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었는데 시설이 너무 좋았고 따뜻했으며 어쩌다 보니 우리 동행들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더 의미 있었다.

기분 좋게 짐 정리하고 씻고 빨래하고 필요한 거 사러 동행 몇 명과 마트에 가려고 나왔다. 마트를 향해 걸어가면서 우연히 반대편을 보게 됐는데 어떤 사람이 역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게 보여서, 왜 역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는 건지 그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자세히 봤더니 며칠 전 대도시에서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헤어졌던, 산티아고에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했던 동행이었다.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이름을 불렀고 그 동행이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 쪽으로 왔다.

생각지도 못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다.

짧게 얘기 나눈 후 일단 우리는 마트로 가고 그 동행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알베르게로 갔는데 운 좋게도 우리 방에 침대 하나가 비어있어서 우리 방으로 오게 됐다. 참 신기했다.

동행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더니 산티아고에서 더 멀리, 세상의 끝인 피스테라까지 갔다가 우리랑 함께 산티아고에 다시 도착하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했다.

다시 돌아오는 걸 알리지 않은 이유는 서프라이즈로 우리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냥 가도 힘든 길인데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그 마음이 고마웠고 감동이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 이 시간이 꿈만 같았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제 내일이면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다.

그날이 언제 오나, 과연 오긴 할까 하며 기다렸던 날인데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날을 하루만 남겨두고 있다.

내일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생각이 들까, 여기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얻었을까, 나한테는 어떤 기적이 찾아올까 등 궁금하면서도 설레지만,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이 길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면서도 아쉽고 동행들과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너무 슬프지만 내일 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내일은 천천히, 마지막 남은 이 길을 즐기면서 걸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4. 33일 차 : 동행들의 배려, 나를 돌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