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km, 5시간 30분 걷기
오늘은 좀 더 멀리 갈까, 아니면 20km까지만 가고 멈출까 고민하다가 어제 너무 힘들었기에 짧게 걷기로 하고,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아침을 먹으러 갈 때만 해도 비는 안 오고 바람만 불었는데 아침을 다 먹고 길을 나서려고 하니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오기 시작해서 또 우의를 입고 출발해야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가끔은 뒤로 또는 옆으로 걸어가야 했고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바람이 잦아들고 비도 약해지고 있었다. 조금 더 걷자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카페가 나와 쉬었다 가기로 했는데 원래 이 정도쯤에서는 쉬지 않고 계속 걷지만 여기서부터 14km까지는 쉴 곳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여기서 쉬어야 했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오늘은 걷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어제 퍼붓던 비로 물이 범람해서 길이 없어진 구간이 꽤 있어서 그런 곳을 지나갈 때마다 긴장하며 걷다 보니 바다가 보이면서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름을 알 수 있었다.
내리막 길을 내려가며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살짝 보이는, 스페인에서 처음 보는 바다가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고 마을에 도착할 때쯤에는 비도 그쳤으며 알베르게로 향하며 마을을 둘러보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노르웨이의 어느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게 도착 후 씻고 빨래하고 나서 배고파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시에스타 시간이라 먹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 싶어 마을을 둘러보는데, 그동안 지나온 마을들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이뻤다.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해서 마트에 갔다. 이 길을 걸으며 이렇게 큰 마트는 처음 볼 정도로 엄청 컸는데 구경하느라 배고픔도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고민 끝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걸 사서 나오는 길에 마트 안에 빵집이 있길래 배도 고프고 맛있어 보여서 사 먹었는데 생각보다 더 맛있어서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마트에서 사 온 걸 먹다 보니 배가 불러서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오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서 일단은 나갔다.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에 손님이 너무 없어서, 그 옆에 손님이 많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저녁 시간이 아니라서 잠깐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면서 메뉴를 보는데 추로스와 초코라테가 있었다. 스페인에서 꼭 먹어보고 싶었던 조합인데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고 곧 저녁을 먹을 거라 고민하다가, 그래도 먹어 보고 싶어서 주문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너무 먹고 싶었던 건데 참 아쉬웠다.
저녁을 먹으면서 동행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함께 여행을 떠났던 동행들도 이제는 다 흩어져서 한국으로, 또는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다. 다들 그립고 심심한지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는데도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갔고 마치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즐거웠지만 너무 그립기도 했다.
저녁을 다 먹고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기 아쉬워서 산책하며 마을 둘러보는데 구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어쩔 수없이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낮에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잠깐이라도 둘러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오늘 이 마을은 스페인 와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 의미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오전에는 비가 오다가 도착할 때쯤에는 비가 그쳤고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보이던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어제 힘들었던 하루를 선물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설레고 기뻤으며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 기분이 좋았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더라도 그치기를, 도착해서는 파란 하늘을 보며 기분 좋게, 편안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