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 4일 차 : 4일 만에 찾아온 위기

24.4km, 6시간 30분 걷기

by 베라노드림

오늘은 4일 차 만에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24km라는 거리를 걸어가야 했는데 긴장은 되었지만 괜찮을 줄 알았다. 어제 대도시 입성 후 그리웠던 한식과 아시안 음식을 먹었고 짧지만 도시 생활을 즐겨서 에너지가 충전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위기가 찾아왔다.


어제도 역시 숙면을 하지 못하고 자다 깨다 반복하다가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 준비하는 소리에 나도 일어나서 준비하고 7시쯤 호기롭게 혼자 나섰지만 처음부터 어디로 가야 되는지 길을 잃고 잠깐 헤매다가 결국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갔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출발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는 같이 이야기하며 걷다가 어느 순간 혼자 걷기도 하고 또 같이 걷기도 하다 보니 해가 떴다. 해가 뜨니 햇빛이 쨍쨍해서 너무 더웠고 계속 오르막을 걷다 보니 어깨도 너무 아프고 지치고 힘들었는데 오늘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날이기도 해서 몸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는데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들, 친구들이 보고 싶어 졌고 원래 혼자 걸으려고 온 길인데도 불구하고 혼자 걷고 있으니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고 슬퍼졌으며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눈물이 더 쏟아질 뻔했다.

우는 내 모습을 들키는 게 싫어서, 왜 우냐고 물으면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억지로 참고 계속 걸어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차례 고비가 와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걸어야 했기에, 심란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걸어갔고 중간에 다른 동행들을 만나 같이 걸어가다 보니 출발한 지 3시간 정도 만에 카페는 아니지만 작은 상점이 나와서 간단히 빵이랑 오렌지 주스를 먹으며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쉬고 같이 출발했으나 걷는 속도에 따라 혼자 걷기도 하고 동행 중 몇 명과 같이 걷기도 했는데 오늘 내 마음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오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행 중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느꼈고 겨우 붙잡아가고 있던 마음이 다시 힘들어졌다.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 있고 싶어서 동행들을 앞질러 걸어 나갔다.


혼자 걸으니 또다시 생각이 꼬리를 물어 부정적인 생각으로 깊게 빠져 들어가고 있던 도중 첫날 마지막 구간을 같이 걸었던, 둘째 날 힘들어서 쉬려고 들어갔던 바(Bar)에서 잠깐 얘기 나누던, 길가에 앉아 쉬고 있던 외국인 순례자를 만나게 됐는데 그 분과 얘기 나누면서 걷다 보니 다행히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고 출발한 지 6시간 반 만에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고 나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곧이어 도착한 동행들이 점심 먹으러 나간다고 했지만 나는 입맛이 없어서, 그리고 아까 느꼈던 마음 때문인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혼자 남았다.

동행들이 밥 먹으러 나간 사이에 나는 씻고 빨래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힘들었던 마음 때문에 친구랑 꼭 통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랑 통화하면서 4일 차 동안 어떻게 걸었고 어땠는지,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 보니 또 눈물이 났지만 울지 않으려고 했고 친구랑 통화하면서 아직 정리되지 않았던, 심란했던 마음이 점차 안정되었다.


친구랑 통화 후 공용공간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오후 늦게 다른 동행 한 명이 도착했고 그 동행도 오늘 힘들었다고, 고비였다고 하길래 같이 힘들었던 걸 공유하며 얘기를 나눴는데 다른 동행에게 섭섭함을 느꼈던 건 말하지 않았다.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얘길 꺼내서 그때의 힘들었던 마음이 다시 떠올려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 동행과 서로 위로해 주고 위로받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행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저녁 먹은 후 낮에 구경하지 못했던 동네 구경을 하려고 혼자 나갔는데 밤에 나가는 거라 약간 긴장했었는데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오늘 마지막을 함께 걸었던 외국인 순례자를 만났다. 그분은 성당 갔다 오시는 길이었는데 같이 동네 구경을 가주겠다고 해서 함께 걸으며 동네 구경을 했는데 오늘 이 분 한테 여러모로 감사했다.

내가 힘들어했는지도 모르셨지만 함께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같이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걸은 지 이제 겨우 4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위기가 찾아와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친구랑 통화하고 나처럼 오늘 고비였다던 동행과 서로 공감하며 위로해 주고 외국인 순례자와 함께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동행들과 얘기 나누다 보니 어수선했던 마음이 편안해져서 다들 너무 고마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이곳에 왔는데 막상 혼자가 되면 외롭다는 생각과 이렇게 힘든데 계속 걸어 나가는 게 맞는 건지, 이렇게 걷는다고 한들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또 동행들과 계속 함께 하다 보니 덕분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동행들에게 너무 많이 의지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함께 하는 즐거움에 내가 여기 온 의미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등등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어떻게 걸어가면 좋을지, 생각이 많아진 밤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