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와 술상을 차리실 때면, 아버지는 꼭 아들도 같이 먹을 만큼의 안주를 준비하셨다. 요리는 할 줄 모르셨으니, 번데기나 고등어 캔 따위에 고춧가루를 풀고 데워 먹는 게 전부였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그날도 요깃거리를 준비하려 캔을 따시던 아버지는, 돌연 부엌에서 작게 신음하셨다. 서둘러 부엌에 가보니, 아버지는 엄지 첫마디가 캔 뚜껑에 반쯤 갈라진 채로 피를 뚝뚝 흘리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우습게도, ‘어떻게 저만큼 깊이 손을 베이고도 거의 신음하지 않으셨을까.’였다.
그 캔이 골뱅이였는지 꽁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엄지에 매달려있던 닭똥만한 검은 핏방울이 늘 가슴 한켠에 맺힌다. 아버지는 그 후로 몇 주를 깁스 신세로 지내셨다. 깁스를 풀고 나서는 그 손가락 끝이 잘 접히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살다 보니 내 팔에도 신음 없이 칼자국이 났다. 이제 나도 엄지를 접을 때면 팔목이 저린다. 아버지가 깁스를 풀으신 이래로, 나는 다치셨던 엄지손가락이 이젠 괜찮은지 아직도 여쭙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