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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r 28. 2024

중고거래로 알게 된 것들

티끌이 나를 구한다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라도...

썼다 지우는 글, 비공개 글은 차고 넘쳐서 어느 날은 '삭제'만 하는 날도 있다.


써놓은 글들을 보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내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1월부터는 일을 잠깐 쉬고 실업급여로 생활하고 있다. 

그 사이에 우리 2호가 조금 아팠고, 그로 인해 병원비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그나마 조금 모아둔 돈들도 바닥이 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급여라도 받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예전부터 돈을 잘 모으지 못하는 편이었다.

작고 예쁜 물건들 이를 테면 텀블러, 주방 조리도구, 문구류 등 명품 가방이나 신발보다 작은 물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헀다. '작은 물건'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돈 세는 줄 모르고 직장을 십 년 이상 다녀도 돈은 잘 모이지 않았다. 


물론, 후회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나의 무모함에 실망한 적도 무척 많았다.

그랬다가도 다시 여유가 생기면 이전의 패턴은 반복되었고,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서자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내가 아프거나, 우리 아이들이 아프면 보험도 하나 없는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대로 떠안아야 할 상황들에 대해서 이전보다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쿠팡, 마켓컬리, 네이버 멤버십 정기 결제를 모두 취소했다.


물건을 어느 정도 사는 경우는 이것들의 정기결제가 장기적으로는 더 혜택이 많다고 생각은 하지만, 소비를 많이 줄였다. 이 세 가지의 정기결제가 아쉽지 않을 만큼 대폭 소비를 줄였고, 줄이지 않으면 당장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됐을 것이다.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대출'은 너무 가혹하다. (갚아 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듣기도 입에 올리기도 싫은 말이다. 팔 수 있는 것들을 적당히 추려서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에 올려놓고 구입했던 가격의 삼십 프로 정도로 올렸더니, 며칠 내로 거래가 되었다. 사용 흔적 없이 말끔한 물건들, 더러 사용감은 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상쇄되는 물건들이었으니 잘 팔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라면 능력도 없으면서 '푼돈' 정도는 가볍게 여겼지만, 상황이 닥쳐서 푼돈을 모으고 보니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싶었지만 늘 <예약>되어 내 순서가 돌아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책 두어 권도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주문하고, 좋아하는 간식도 사 먹고, 건강보험료도 내고, 고양이들 소모품 살 돈도 생겼다. 


왕복 배송료 정도야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내가 지금껏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천 원이면 스타벅스 가서 커피 한 잔 시키고 두어 시간 정도 책을 보고 올 수도 있고, 만원이면 맛있는 금사과 한 봉지를 동네 마트에서 살 수도 있었다. 절약은 곧 궁상이라고만 여겼던 철없는 행동들이 작은 중고거래를 통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나도 이제는 화장품을 사기 전에는 중고마켓에서 혹시 샘플 화장품이 올라온 것은 없는지 먼저 검색해 본다. 다행히 얼마 전에는 평소 쓰고 싶었던 수분 크림 샘플이 중고 마켓에 올라와서 7천 원에 샘플 두 개를 구입해서 잘 쓰고 있다. 화장품은 특히나 사용해보지 않고는 내 피부와 잘 맞는지 알 수가 없는데, 샘플을 구입하게 되어 무리하게 본품을 사서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같이 소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갑자기 허리띠를 졸라매면 머지않아 '갑갑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환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동네 산책도 하고, 동네가 지겨우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을 다녀오곤 한다.

참고로, 박물관은 거의 일 년 연중무휴에 가깝고, 관람료도 무료다. 가끔 갑갑하고 나 자신이 밉고, 사는 게 만만치 않다고 느껴질 때는 혼자 박물관으로 간다.


며칠 전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을 다녀왔다. 경복궁과 인접해 있어서 경복궁도 잠시 거닐어 보았다. 경회루나 궁 안쪽에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들로 북적였지만 이 정도의 소란스러움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고즈넉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주말만 피한다면 다닐만한 곳들이다.)


집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가서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나면 틈 없이 꽉 들어찼던 근심 덩어리들도 잠깐 잊게 된다. 꼭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비워내지 않아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울적하고, 불안한 나를 그냥 모른 채 내버려 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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