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07
사람을 싫어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깐. 다만 나는 싫어하는 사람의 비중이 현저하게 많을 뿐이다. 사람을 싫어하고 더 나아가선 혐오하는 '나'이지만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기준에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라면 조금은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더 친절해진다.
사람들은 우울증이라 해서 대인관계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며, 늘 칙칙한 얼굴을 하고, 구석에서 혼자 쭈그려있는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우울증 사람들은 직장 생활도 하고 대인관계도 무난하게 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고 상냥해서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단 말을 많이 한다. 그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억지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지 내 속마음은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누구나 힘들다.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 힘듦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버렸기에 약을 복용하면서 지탱해야 하는 게 우울증이다. 하지만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든 사람의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배신감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방은 나를 가까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와 같은 호감도를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그게 참 이해가 안 된다.
요 근래 그런 경험을 몇 번 겪으며 다짐한 것이 있다. 적당한 선.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그 안으로도 들이지도, 그 밖으로 나가지도 않아야지. 나 자산조차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남인 상대방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함께 높아진다. 삶의 모든 것이 그러했다. 내 마음의 기대가 높아질수록,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내 마음은 더 세게, 더 아프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한지라 그게 마음을 이렇게 먹었다가도 바보처럼 다시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싶어진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나를 제대로 알고 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만큼 나를 생각해 줄 수 있는 건 세상에 나 자신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러니깐 스스로를 잘 보살펴야 한다. 미련스럽고 나약하고 한없이 부정적이기만 한 자신일지라도, 적어도 나는 내 편이 되어서 위로를 해줘야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일보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복용하는 약의 개수도, 함량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출근길, 퇴근길에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든다. 남편의 말대로 모든 것에 의미를 찾으니깐 더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인데.... 이젠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행복이란 것은 순간의 찰나이며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숨을 쉬고 살아있는 동안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그 이유를 알면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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