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06
우울증이 심해질 때 무조건 쉰다고 회복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몸은 무기력하고 힘들어서 움직여지지 않는다. 마치 물을 한껏 머금은 걸레 같은 상태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그럴수록 짧은 시간이라도 밖에 나가 햇빛을 보고,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라고 하는데 움직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움직일 수가 없다. 내 마음뿐만 아니라 내 신체 또한 나의 통제권 밖으로 되어버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한다.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힘과 기운을 끌어내 일을 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무언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추고 있는 기분을 주기 때문에 자기 비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고 위로하고 일으켜 세워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다시 무너져있다. 그것을 한평생 계속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칠 때도 있고, 이미 지친 것 같기도 하고 그만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어쩔 수 없으니깐. 모든 것이 '어쩔 수 없이 살아있으니, 가족이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연결된다.
한참 세상 풍파를 다 겪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때,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참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엄마이기에 사랑은 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제 자식에서 상처를 주는 엄마의 삶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젊은 나이에 아이를 갖고 첫아이를 낳았을 땐...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원망했고 미워했던 마음이 죄스러웠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내기 위해 엄마도 최선의 노력을 했겠구나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아이 셋을 낳고 열심히 키우며 살아가고 직장 생활까지 병행하기 시작했을 땐.... 다시 엄마가 미웠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내 아이들을 세명이나 키워내고 살아내려고 하는데 엄마는 왜 나 하나를 제대로 건사해 주지 못했을까. 그때 내게 조금만 더 신경 써줬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있었을 텐데... 이런 내가 짐같이 느껴졌겠구나. 안 그래도 힘든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자식이라는 이름의 짐 덩어리. 그래서 아니라 하겠지만 그렇게 내 모습을 외면하셨구나. 외면하면서 엄마의 속도 말이 아니긴 했었겠지? 그렇지만 나도 자식인데.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더 잘 키워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경제적인 것은 부족할 수 있겠지만, 내가 너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진다고... 그리고 너희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나는 그런 사랑과 믿음을 받을 수 없었던 걸까.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던 걸까. 이해를 해보려 한다.
내 아이들에겐 그런 상처가 가지 않기를. 세상에 무너져도 언제나 한결같이 지켜줄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늘 행복하고 즐겁게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