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08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거주지가 정확하지 않았다. 이사를 자주 다녔으며, 때론 엄마와 살았고, 때로는 아빠와 살았으며 외할머니와 살기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학교는 안 빠지고 잘 다녔던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같은 반 여자아이가 키티 문구세트를 들고 다녔었다. 키티 필통에 키티 연필, 지우개 그리고 공책도 모두 핑크색 키티가 그려져 있었다. 너무 부러웠고 갖고 싶었지만, 속으로 나는 알고 있었던 거 같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았지만 꽤나 부러웠었고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계속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늘 그렇게 포기가 빨랐었다. 그래도 가장 갖고 싶었던 건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집과 평범한 가정이었다. 당연하게 짐을 꾸리고, 자연스럽게 전학을 다니고, 늘 새로운 학급에서 뒤늦게 이방인으로 들어가 빠르게 흡수되어야 했기에, 늘 긴장감을 갖고 살았으며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게 내가 유년 시절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사랑받고 싶었고 보호받고 싶었다. 부담되는 짐과 같은 존재로 살아왔던 시절. 그리고 마침내 19살 겨울엔 세상으로 내동댕이 치듯 내쳐졌다. 상대방이 무어라 하든 내 기분이 그러했다. 단칸방에서 혼자서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 아르바이트를 하고, 비가 오면 집 없는 달팽이가 하염없이 나오는 그 집에서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그래서 술을 그렇게 마셔댔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었고 알고 싶지 않았다. 전혀 평범하지 않았던 삶 속에서 그를 만났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었으며 그렇게 원했던 평안한, 평범한 삶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도 그때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지. 그때의 어렸을 나는 살기 위해 감정을 억눌러야 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버텨야 했기에 상처를 들여다볼 여유도 안전도 없었을 테니깐. 그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정신없이 살았을 때는 육아에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아이도 어느 정도 컸고, 직장 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섞여서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생활을 하다 보니 그때 억눌렸던,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기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내가 안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나는 그때처럼 계속 이사하지 않아도 되고, 사랑을 받고 있으며 삶이 안정되었다. 이런 감정은 위험한 시기보다 이제는 숨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터져 나온다고 한다.
며칠 전같이 일하는 직장의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의 둘째 딸은 미술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를 한다고 하길래 부럽다고 말했다. 나도 한때 입시미술 학원을 다녔고 계속하고 싶었으나 집안 사정으로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대화를 하다 보니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유년 시절이 좀 복잡했다고 간단하게 말했는데... 그때 그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많이 힘들었겠네요'라는 한마디에 그냥 웃어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맞아요. 많이 힘들었어요. 저도 선생님의 따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거든요... >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 난 엄마를 사랑하지만, 원망스러울 때보다 서운할 때가 많이 있어. 조금만 울타리 안에서 보살펴줬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줬었다면 내가 그때도, 지금도 덜 아프지 않았을까.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니라 안정을 줬어야 하는 게 맞는 건데, 엄마는 나한테 이해를 바라고 스스로 알아서를 바랐었잖아. 그때의 나는 엄마의 짐이었을까. 자식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