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vs 함께, 가능성 vs 불가능
여름이 오긴 오는지 어깨가 열리는 게 점점 느껴진다. 오늘은 말랑해진 몸과 함께 빈야사 시퀀스로 수련했다. 난이도는 중급정도. 매일 하지만 맨날 힘든 전사 1,2,3 변형을 아주 힘들에 하는 시퀀스였다. 요가원에 수련을 하러 가는 것과 홈수련을 하는 것은 굉장한 장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수련하러 가면 함께 하는 도반들에게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집중도도 집 보다 훨씬 올라가는 것 역시 장점이겠다. 단점이라고 하면, 내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는 것. 반대로 홈수련에서는 그게 어마어마한 장점이 된다.
요즘은 거울을 비치하지 않는 수련원도 많이 생긴다는데, 지금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사방이 거울이라 자세를 보는 것은 좋지만 가끔씩 수련한다는 느낌이 아닌 운동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원은 수련하기에 최적의 공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선생님의 따뜻한 핸즈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 보통은 아주 잘하고 있거나 답이 없는 양극단의 경우에 핸즈온을 스킵하는 편인데, 나의 경우는 아주 자주 지적을 당한다.
처음 요가원을 갔을 때부터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은 내 약점을 너무 잘 알고 계신다. 비틀기가 안 되는 뻣뻣한 몸, 전굴이 힘든 골반에 문제가 있는 수련생.. 후후. 그게 나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비틀기 안 되는 딱딱한 상체와 골반을 접는 힙힌지는 2년을 해도 한 번에 늘지 않는다는 점. 아주 재밌게도, 혹은 아주 무섭게도 내가 전굴을 할 때면 저 멀리 있던 선생님이 부리나케 달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름님, 무릎 접으세요. 더 접으세요.’
우타나사나(상체를 구부려 폴더처럼 만드는 자세)를 할 때 달려와서 핸즈온 해주시던 선생님. 거의 우카다사나(의자자세) 정도의 각만큼 무릎을 접고 가슴과 허벅지를 붙였는데, 그다음은 엉덩이를 들어 올리라 하시며 무릎 오금 뒤를 손으로 꽉 잡으신다. 분명 우타나사나는 기본자세인데, 선생님이 제대로 자세를 잡으라고 시킨 순간 몸이 굳는다.
‘보름님, 엉덩이를 더 위로 끌어올리세요. 더요.’
‘안 돼요..’
‘안되죠? 그럼 그동안 엉덩이를 들어 올린 게 아니라 무릎을 민 거예요.’
아니 선생님, 그걸 왜 오늘 얘기해 주시죠? 요가원 다닌 지 2년 차인데, 왜 600일이나 지난 지금 그 말씀을 해 주시는 거죠? 원망 섞인 말을 하고 싶지만 그동안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내 잘못이 아닌가. 누굴 탓하나. 남 탓 금지하자고 지난 에세이에서 다짐했건만.
선생님은 내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쩜 이렇게 내 몸을 나보다 더 잘 아실까. 오늘은 사이드 플랭크 자세에서 발을 포개라고 시키셨는데, 언제나 그렇듯 내가 가진 힘의 100프로를 쓰지 않길 원하는 나는 한쪽 발을 나만 알 수 있게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런지 5초쯤 지났나?
‘보름님, 발 떼세요!’
휴, 그 눈빛 정말 잊을 수 없다. 꾀 부리면 죽는다는 그 무서운 눈빛… 잊을 수 없어. 발을 떼라고 붙어 있는 발가락을 잡아 위로 올려 주시는데 몸이 흔들흔들한다.
“안 돼요. 못해요.”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핸즈온. 그리고 선생님이 할 수 있다고 한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그 뒤로 시퀀스별로 4번 정도 같은 자세를 반복했는데, 선생님 눈치를 안 볼 수 없던 나는 그냥 하라는 대로 정석대로 아사나를 수행했고, 모두 다 조금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될 수 있는 자세를 못하게 만들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세를 되게 만드는 선생님의 핸즈온.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으 균형은 무엇일까? 이 균형점을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 가는 걸까?
요가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다. 이것 역시 인생 같다. 별 것 아닌 정답인 줄 알았던 것 같은 것들이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못된 것 투성이었고, 절대 못할 것 같은 일들도 용기를 가지면 쉽게 해치워지곤 한다. 이 균형점을 함께 만들어가는 도반과 선생님 덕분에 요가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집에 와서는 아쉬탕가 수련을 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한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싸움이다. 나를 가르치는 구루는 말 없이 나를 찍고 있는 휴대폰뿐이고, 나를 바라보는 건 눈으로 말하는 강아지뿐이다. 외롭다. 내 비틀기는 언제 완성될까.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할 때 우타나아사나를 할 때마다 답답해하는 나는 누가 도와주나. 카메라를 구루로 삼기엔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
요가원에서 느끼는 관계에서의 배움부터 오롯이 홀로 매트 위에서 느끼는 고독한 깨달음의 균형점, 그것 역시 할 수 있음과 못해요의 사이 아닐까. 그 균형점을 외줄 타듯이 유연하게 흔들리며 걷고 있는 내 요가 수련 과정이 수련 자체이자 요가 아닐까. 그런 기념으로 마이솔을 등록했다. 아쉬탕가도 이제 혼자 하고 싶지 않다.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할 때이다. 혼자와 함께의 균형. 이것도 수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