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라 남 탓 권법

요가로도 안 풀리는 에고의 필살기

by 달달보름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서 108배를 시작한 지 100일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늦잠을 자고 싶은 날도 있다. 어제는 모처럼 주말이라 아이들이랑 느지막이 늦잠을 잤는데, 해가 중천에 뜬 느낌에 ‘아 뭐야 10시쯤 됐나?’하고 눈을 떴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아침 7시..ㅋㅋ 겁나 개운하게 일어났는데 7시라니 공짜로 선물 받은 것 같은 이 기분, 그러나 억울한 이 기분은 뭐지? 보통 이 시간에 요가를 하다 보니 알람과 더불어 개가 짖는다.


“주인놈아 당장 일어나서 요가를 하거라”


오늘이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수련을 시작했다는 점. 비록 자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언제 깰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은 웃기게도 내가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일어나면 늦게 일어난다. 그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늦잠을 자면 왜 빨리 일어나지 않느냐고 타박했던 못난 어미를 용서해 다오.


예상은 했지만 평소 하던 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하고 화장실도 오가기 때문. 카메라로 찍는다고 옷도 좋아하는 빨강 바지를 입었건만, 수리야 a, b 다 돌고 나서 첫째가 똥이 마렵다고 팬티를 벗고 왔다 갔다 한다. 카메라를 꺼야 한다. 이대로 찍은 걸 올리면 나는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것이다.


자존감이 낮지는 않아도 에고가 너무 강해서 항상 탈이 난다. 자존심만 세서 남 밑에서 일하지 못해 프리랜서로 10년 동안 일했고, 누군가에게 함께 하자고 동업을 제안하는 것 역시 나에겐 너무 어렵다. 아쉬운 소리로 도와달라는 것도 못해 지금까지 외롭게 일해 왔다. 이게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엄청난 단점으로 발현될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억울할 때마다 ‘남 탓 필살기’를 쓴다는 것. 내 잘못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남의 잘못 때문이라는 아주 비열하고 못된 생각을 하는 버릇이 강한 에고에서부터 비롯된다.


요가를 할 때면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 오늘 옆에 있는 사람이 웃겨서 웃느라 아사나를 못했잖아.

앞사람이 선생님을 가려서 집중이 안 돼.

무슨 옷을 저렇게 튀는 걸 입고 오냐, 남의 수련에 방해되게?


나는 자칭 공작새라 3번의 경우 비난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라는 점이다. 수련을 하러 요가원에 가는 이유는 남 탓을 최소화하기 위함도 있는데, 집에서 수련을 할 때에는 주로 남은 아니나 내가 아니면 남이 되는 가족들 혹은 가족과 같은 반려견이 모두 남 탓의 원인으로 발동한다. 오늘 남 탓의 첫 단추는 첫째의 팬티 실종에서 시작되었다.


즉시 카메라 철수, 매트 철수 후 작은 방으로 매트를 옮긴다. 물론 찍을 수 없다. 이 방은 나 혼자 수련하기도 벅찬 아주 작디작은 방이다. 그렇다고 문을 닫고 수련하면 끝인가? 그것도 아니다. 가장 먼저 나를 방해하러 오는 주범은 강아지. 엄마가 방문을 닫는다? 그럼 일단 발톱으로 긁기 시작한다.


“문을 열지 않으면 짖을 테다…!” 하는 소리다.


그 뒤로 첫째 둘째는 번갈아가며 와서 질문 공세를 한다.


“엄마 옷 뭐 입어? 엄마 아침 뭐야? 엄마 세수할 때 치약이 안 나와요.”


화를 떨쳐내려 하는 요가인데 요가하다 방해받으면 치솟는 화는 어쩔 수 없다. 그냥 그것도 바라봐야 수련이거늘… 그럴 때마다 한숨을 쉬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돌봄 노동을 할 수밖에.


그래서인지 오늘 애플워치로 잰 칼로리에서 평소 40분 이상 팻버닝 되던 칼로리가 오늘은 30분도 채 타지 못했다. 중간중간 쉬엄쉬엄 했다는 뜻.. 게다가 한 두 번 방해를 받으면 그날 수련은 뭔가, 될 대로 돼라 그냥 흉내만이라도 내자하고 아사나는 거의 포기한다. 숨이라도 잘 쉬면 잘 한 수련이랄까.


그렇지만 요가에서 환경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요가를 하는 모든 시퀀스가 명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숙련된 사람이야 옆에서 누가 똥을 싸든 방귀를 끼든 상관없겠으나, 나처럼 매일매일 흔들리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남 탓 권법을 쓰기 전에 환경부터 조성하자. 제대로 된 수련 환경을 만들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남 탓 대신 내 탓이 필요한 자아가 강한 나에게 경고한다. 환경을 만들어라. 수련의 최적화 된 환경!


아침부터 팬티 사건 처리하고 수련 환경 세팅하느라 머리를 너무 굴렸는지, 오늘은 몸보다 두뇌가 번아웃이다.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인요가로 몸에 수면제를 먹이려 한다. 한 아사나에서 5분씩 넘게 머무는 인요가를 하고 자면 그렇게 잠이 솔솔 올 수가 없다. 불면증에 가끔 시달리는 나도 머리만 대면 잠에 빠지니.. 꾸준한 요가를 하면 남 탓하지 않는 마음의 변화도 일어날까? 이 일기로 인해 조금이나마 그 마음이 떨쳐졌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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