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온 더 넥스트 레벨

당신을 위한 작은 촛불이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by 달달보름

108배 수행을 하면서 성당에 돌아간 사람, 누가 보면 날라리 신자이지만 누구보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성모님을 의지하는 불교수행 천주교신자 요기니라니. 이런 짬짜면 같은 사람이 있나. 그러나 나의 길은 그렇게 계속해서 넓게 열리고 있었다. 새벽엔 108배를 하고 자기 전엔 묵주기도를 하며 부처님과 예수님, 관세음보살님과 성모님과 따로 또 같이 소통하고 있었다. 어떤 마음이라도 다시 예수님 품으로 돌아왔으니 불교수행하는 나라도 마음 넓은 예수님은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기뻐하지 않으실까?


100일 기도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에 부활절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첫째의 첫 영성체 세례식을 준비하면서 부모교리도 들어야 했고 성경 필사도 함께 해야만 했다. 없던 신앙심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혹독한 코스 속에서 부활절 성야 미사도 참례해야만 했다. 냉담포함 신자로 산지 13년 만에 성야 미사를 처음으로 참례하다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처음 참여하는 의례에 나도 모르게 겸허한 마음이 생겼다.


내 세례명은 베로니카다.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성녀로 골고다 언덕에서 고난을 겪으시던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기 위해 손수건을 내민 여인이다. 실존하지 않은 전설 같은 성인이지만 영세를 받을 때 내가 직접 고른 세례명이다. 보통의 4월 축일을 가진 사람이 에스파 카리나의 세례명인 '카타리나'를 가지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패선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잠시 스쳤던 여인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가톨릭 내에서는 성인의 이름을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준 베로니카를 따라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일까. 부활절만 되면 내 마음이 크게 동요한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위해 십자가에 기꺼이 몸을 바친 예수님의 고난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첫 성삼일 미사 참례에도 정말 많은 눈물이 났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에 세족식을 직접 거행하는 의례에서도, 주님 수난 예식에서도 너무 많이 울어서 옆 사람에게 들킬까 봐 홀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주님 부활을 기념하는 성야 미사 때에는 두 시간 반이라는 긴 미사 시간에도 견뎌 주는 아이들과 함께 정말 축복 같은 경험을 했다.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하는 큰 촛대 하나를 들고 오시는 신부님의 촛불을 한 명씩 나누어 빛을 비추는 의례였다. 아이들도 옆에 있었고 함께 촛불을 나눠 켰다. 내 초에 촛불이 다가오며 불빛이 비춰졌을 때, 꽉 찬 성당 안의 에너지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촛불의 에너지가 꼭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제 알겠니?'


그동안 성당에 다니면서도 봉사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는, 이 안에서 봉사하고 나누는 행위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의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데 교회 내부에서 서로 잘 먹고 잘 사는 게 과연 종교가 하는 역할인지 답을 찾지 못했다. 신부님에게도 수녀님에게도 묻지 못한 채 오만한 마음을 닫아 버린 채 다시 성당에 발길을 끊고 다시 찾고 또 의문을 품고 끊고를 여러 번 반복했던 나에게 예수님이 촛불로 응답한 느낌이었다.


팬 god출신인 나는 지금도 가끔씩 '촛불 하나'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얼마나 골수팬이었는지 랩을 그냥 다 외워버릴 정도이니. '작은 촛불 하나, 가지고 무얼 하나, 촛불 하나 킨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하고 흥얼거릴 때마다 아이들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무리 설명을 해주려 해도 내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그 모습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성당 내의 공동체도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그 안에 촛불 하나 밝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투덜거렸지만, 그 작은 촛불이 가정 내의 밝은 빛이 되어 널리 널리 퍼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가 설했던 진짜 '사랑'이었다. 나는 그날 무언가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그렇게 강론을 들어도 제대로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그동안의 교리를 텍스트로만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에서 빛을 밝히고 그 빛이 모여 교회 공동체를 밝히면 자연스럽게 사회의 빛을 밝힐 수 있다. 그 간단한 원리를 촛불 하나 노래를 부르면서도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날의 깨달음으로 단박에 알게 되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줄곧 가졌던 의문점이 말끔하게 해소되었으니까 말이다.


영성을 쫓으면 사회를 보지 못한다. 혁명을 하자니 마음이 다친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이분법 안에 갇혀 있다. 그런데 중도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기반으로 교회에 다시 돌아가니 영성과 혁명의 사이인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날을 발판 삼아 나는 성당 공동체에 봉사를 시작했다. 대단히 큰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봉헌금 정산을 함께 하고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이 먹은 자리를 치운다. 내 작은 행동이 촛불이 되어 함께 한 아이들에게 불씨를 옮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또 다른 촛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정 내의 문제가 해결되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주어진 다음 쓰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임 온 더 넥스트 레벨! 나는 이제 가정을 넘어서 다른 광야로 가고 있다. 한번 연을 맺으면 가볍게 연을 끊고 시절인연을 따르는 정토회와 다르게 교회 공동체는 생애주기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사 가지 않는 한 교회 내의 사람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꽤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생애주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오래도록 부딪히다 보면 분명 아픈 일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제 가족과의 관계를 넘어 타인들과 기꺼이 교류하고, 그들과 함께 하며 상처받는 가운데에 성장할 기회를 선택했다. 그것이 예수님이 나에게 준 두 번째 숙제라 생각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넘어가면 촛불보다 더 커다란 또 다른 빛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빛이 예수님의 사랑이자 부처님의 무주상보시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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