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과 관세음보살과 하이파이브하기

내 안에 숨어있던 모성을 꺼내며

by 달달보름


사람들이 말하는 '나'란 과연 무엇일까? 불교 공부를 하면서 가장 의문을 갖게 되는 화두이다. 서점 자기 계발 섹션에 놓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엄마 대신 나, 진정한 나를 찾아서 등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 어쩌면 그전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 모두 '나'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 역시 괴로웠다. 역할이 늘어가면서 대체 나란 사람은 누굴까 고민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그런 시간들 속에 불교 공부를 조금 더 일찍 접했으면 어땠을까? 사실 '나'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인연 따라 불리고 살아가게 됨을 알았더라면.


정토회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변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매주 주어지는 새로운 수행과제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수행 과제 중 하나는 내 선입견과 편견 알아차리기였다. 모범생인 나는 과제나 숙제가 주어지면 최대한 성실하게 살피고 관찰하려 노력한다. 그 주에도 과제를 머릿속에 새기며 틈만 나면 내 생각과 마음을 관찰하려 노력했다. 그중 나를 괴롭히는 선입견과 편견은 여전히 내가 '페미니즘 상'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고, 그 부분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일렁이는지 바라보려 노력했다.


양육 문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딸을 대할 때의 태도와 아들을 대할 때의 나의 태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양육 방식과 성향에 맞는 개인화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대할 때 섬세함이 부족하다. 마치 남편에게 툭툭 말을 건네듯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었다. 이 아이가 커서 다른 여성들을 볼 때 ‘엄마’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투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일도 하지만, 집안에서 돌봄 노동도 하는 이중역할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임을 알지만, 내 모습이 마치 모든 여성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날 따라 아들은 나를 유달리 화나게 만드는 말을 했다. 밥을 먹으라는 내 말에 '밥을 다 차렸으면 불러야지!'라고 한 것이다. 이 말에 버튼이 눌리는 사람들은 눌리는 방향이 다 다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왜 예의 없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냐고 하겠지만 나는 항상 걱정하고 염려했던 마음이 화로 표출 되었다. 이 아이는 나를 '밥 차려 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먼 미래에 다른 여성들에게도 투영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 걱정에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내가 너 밥 차려주는 사람이야!!!'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툴툴대며 걸어 나와 밥을 먹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스운 진실이 드러났다. 나는 밥 차려 주는 사람이 맞다. 지금까지 먹여줬고 차려줬는데 당연히 그런 말을 하니 10세 아이 눈에서는 ‘이 엄마가 왜 또 이러냐’는 생각으로 이상한 눈빛이 나올 수밖에.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끌어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섞어서 내 마음의 파도를 만들어 버리다니. 이런 어리석음이 있나. 아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발견한 순간이자, 여전히 '무아'가 아니라 정체성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이다.



그 무렵 선명한 꿈을 꿨다. 칼 융이 이야기하는 내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만난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페미니즘 프레임 안에 갇혀서 깊이 있었던 여성성을 애써 무시하며 지냈던 건 아닐까? 그런데 아들에게서 비롯된 찰나의 순간으로 숨어 있던 모성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행하는 '돌봄 노동'이 지겹고 괴롭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번 부활절에서 느낀 촛불 하나의 희망이 어쩌면 내가 행하는 모성 기반의 돌봄에서 퍼져나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돌봄 노동도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 수행으로 삼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며칠 뒤 법륜스님 법문에서 관세음보살 관련된 설화를 강의를 들었다. 계모에게 버림받은 관세음보살이 동생과 함께 무인도에 갇혀 죽어가고 있을 무렵, 아무리 불러도 누구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깨달음을 안고 누구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어디든 기꺼이 가서 중생을 구제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다고. 그래서 불교 신자들이 절을 하며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것이다.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 어쩐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좀 더 친근하고 가까운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 설화에 대해 처음 알았던 나는 관세음보살님이 성모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에서도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너무 멀다 느껴질 때에는 우리는 성모님을 찾는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분이시자 모든 것을 껴안는 모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특히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더 많이 공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개신교 대신 가톨릭을 종교로 삼은 이유 역시 성모님 때문이었다. 진짜 어머니 같은 인자함, 언제든 나를 품어줄 것 같은 너그러움이 성전 안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비슷한 감정을 관세음보살의 설화를 통해 또 한 번 느꼈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거부하며 '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일부분, 지극한 모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두 인물인 관세음보살과 성모님에게서 안온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격렬하게 거부했던 그런 모성성이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그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아니었을까. 온전히 내 모성을 받아들이고 수행할 때 그 모성으로 가족을, 타인을, 사회를 치유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다음 날 아침 아들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려는 내 앞에 다가와 엉엉 울며 품에 안겼다. 꿈에서 나랑 동생만 만남았는데 엄마가 사라져서 엄마를 애타게 찾았는데 엄마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소름이 돋았다. 바로 전 날 들었던 관세음보살 전설이랑 똑같은 이야기였다. 순간 내가 이 아이를 그동안 외롭게 한 것은 아닐지 미안해졌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하느님과 부처님이, 관세음보살과 성모님이 모두 함께 나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것 같았다.



'이제 네 모성을 껴안고 사랑하라.'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모성은 어떤 걸 의미할까. 자연스럽게 어제의 수행 과제를 돌이켜본다. 밥 차려주고 챙겨주고 아낌없이 주면서 그 기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들과 딸을 잘 키워내는 것. 그게 내가 수행해야 할 내 인생의 과제이자 해결해야 할 까르마가 아닐까?



사실 조심스럽다. 페미니스트로서 모성을 껴안는다는 것은 어쩌면 양 극단에 있는 두 정체성을 함께 포용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기혼 유자녀 여성인 나에게 모성이라 함은 워킹맘이자 집안일을 까지 해내는 사람이자 가부장제에 편승한 사람으로 오독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이게 나다. 어떤 정체성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인연 따라 흐르는 나.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그 도움이 되고, 그 역할에 불평하지 않는 나. 그래야 내가 세상에 좀 더 잘 쓰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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