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가 레벨업이라면?

전굴이 늘었더니 컴업이 되지 않는 건에 대하여..

by 달달보름
나는 후방경사다.

이 습관이 그대로 남아 후방경사로 굳어진..

I am으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마치 내가 후방경사 자체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이상한 문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궁뎅이가 후방경사다. 수많은 육아의 시간을 겪은 부모라면 대부분이 골반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차적으로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 자체가 골반 변형을 일으키고, 두 번째가 아이를 안으면서 틀어지는 골반과 자세의 문제가 크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면? 무시무시하게도 그 습이 내 몸에 그대로 남아 더 이상 육아가 아니라 양육이 필요한 큰 아이를 둔 엄마에겐 전방경사 혹은 후방경사라는 또 다른 상흔이 남는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했지만 사실은 변명이다. 그냥 내가 내 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돌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정 없으니까.


아무튼 팩트는 나는 후방경사와 약간의 X자 다리, 그리고 스웨이백 체형을 곁들인 아주 골치 아픈 몸이다. 거기다 근질이 아주 질기고 두꺼워 유연성과는 조금 거리가 먼... 그런 몸이다 보니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때 좌절감이 클 때도 성취감이 클 때도 극명했다.



코어 힘은 없지만(후방경사이니 코어 힘이 있을 리 없음) 두 아이를 키워낸 굵은 팔뚝으로 어깨 힘이 상당했고 (이 어깨는 여전히 질겨서 열리지 않는다..) 시르사아사나나 암발란스 같은 것들은 너무 빨리 흉내 냈다. 거의 흉내내기 장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 그에 비하면 남들은 금방 접근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아사나는 나에겐 여전히 고역이다. 특히 흉추와 어깨를 써야 하는 후굴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지금도 바라보고 있다.


최근 마이솔을 시작했다. 요가원에 가서 선생님의 시선 아래에서 아쉬탕가 하프 프라이머리를 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드디어 하프 이후로 진도를 받았다. 아직 마리챠아사나 D가 잘 되지 않는 나에게 의아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선생님은 매우 인자하시고 진도에도 후하시다. 아마 학생들이 좌절감을 오래도록 맛보게 하는 엄격한 수련보다 조금 너그럽게 하시는 게 좋다 판단하시는 듯하다. 나는 어떤 수련도 선생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길래 마리 챠 D이후의 약간의 진도를 받고 좋으면서도 싫은 마음으로 수련을 하는 중이다.


마이솔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마리 챠 C도 잘 되지 않았다. 여전히 뻣뻣한 어깨와 함께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골반 탓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쉬탕가 프라이머리는 목적 자체가 순환인데 후굴보다는 전굴에 집중된 아사나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후방경사인 나에게 전굴은... 뭐랄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결코 편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특히 파스치모타나 아사나는 아직도 힘들다. 골반을 접어서 그 힘으로 허리를 길게 늘이라는데, 아니 그거 내 뇌가 아는데 내 뇌가 명령을 못 내려요 선생님.. 저는 멍청이인가 봐요.... 그런 마음으로 싫은 마음으로 매번 수련을 했더니 이제야 조금씩 그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유레카.


결국 내가 잘 못했던 마리차아사나 C와 D 역시 사실은 전굴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후방경사인 나는 그냥 허리가 꼿꼿하게 세워진 채 접근했으니 잘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 거기다 이제 겨우 흉내만 내는 하프 시리즈 이후의 시퀀스들이 깊은 전굴을 더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전굴이 는다는 것은 앞으로 밀려있던 내 궁둥이가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



컴업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 뒤로 정말 놀랍게도 컴업이 되지 않는다. 매번 그런 건 아니고 마이솔에서 특히 그렇다. 분명 몇 주 전까지 드롭백 컴업을 힘들지만 여차저차 세 번은 수행했었는데, 한 이주 전쯤부터는 아무리 하려 해도 컴업에서 좌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당황스러운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또 내가 음식을 많이 먹어서, 요즘 살이 쪄서 등등 갖가지 원인을 떠올리며 내 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해 주셨다.


최근 들어간 깊은 전굴 시퀀스로 몸이 기억하는 컴업을 정말로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다른 요가 선생님께 전방경사나 후방경사가 심한 사람들은 골반이 제자리를 찾을 때 되던 자세가 안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들었다. 보통은 전방경사인 경우 전굴을, 후방경사인 경우 후굴을 더 수월하게 하는데 그게 중립의 자리를 찾으면 잘 되던 전굴 후굴에 스위치가 꺼진다는 것을. 선생님의 말씀도 같은 원리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또 적응을 하면 된다고.


지금의 상황은 명백하게 후퇴다. 멀쩡하게 하던 컴업을 못하게 됐으니 당연히 누군가 보면 '후퇴'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에 친한 도반이 왜 하누만이 후퇴했냐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후퇴가 꼭 나쁜 걸까? 전쟁에서도 상황을 보고 전진하기 어려우면 후퇴하면서 상황을 살핀다. 그 후퇴가 때로는 또 한 번 일보 앞으로 나가게 하는 이유가 되니까. 그러니까 멀리 보면 더 나아가기 위한 후퇴인 건데, 아사나 모양이 후퇴했다고 진짜 후퇴는 아닌 건 아닐까?


요가를 하면 인생을 배운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사실이다. 어제의 마이솔에서도 나는 또 그 진부한 깨달음을 얻었다. 전진을 하면 일보 후퇴도 하는 것, 그리고 그 후퇴에 속상해하지 않고 기다려야 또 전진할 수 있는 것. 그게 파도치는 인생 같다. 그 파도의 굴곡을 잘 타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성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장은 마치 지극히 신자유적인 삶 속에서 나를 갈아 넣으며 나아가는 모습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견해다) 그래서 나는 성장보다는 다른 말을 쓰고 싶다. 레벨 업. 조금 더 가볍고 유쾌하고, 또 언제든 또 레벨 다운이 될 수 있으니까. 인생이 게임이라면, 게임같이 즐거운 것이라면 레벨 업도 레벨 다운도 가볍게 지켜봐야 계속해 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제의 일보 후퇴는 또 다른 레벨업을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후방경사가 아니라 중립이고 싶다. 인생의 중도와 같은 균형, 중용. 그리고 그 균형을 위해 한 보 용감하게 뒤로 물러서는 힘. 그 힘을 또 배웠다.

매거진의 이전글어깨를 다치고 요가를 쉬니 근손실이 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