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
영원히 빛나며 나를 질기게 쫓아 올 사랑이라는 인연
사랑이 끝나는 시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그 사람 먹는 모습이 쳐 먹는 모습으로 보인다면 그건 사랑이 식은 거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사랑이 시작될 때 가려졌던 부정적인 면모와 단점은 그 사랑이 식어 갈 때쯤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이런 이중적인 사랑의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의 10분, 사랑의 시작이라는 설렘을 꽉 채우며 오프닝이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인 10분 남짓동안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 과정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어느덧 결혼 7년 차가 되어 '사랑의 시작'이라는 감정은 나에게 낯설기만 하다. 20대의 뜨거운 연애를 떠올리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어쩐지 간지럽고, 미묘한 기분 좋은 감정이 가슴부터 올라와 얼굴까지 닿는다. 누가 웃기지도 않았는데 미소가 지어지고, 자기 전 짧은 시간 동안 그 사람과의 미래를 그린다. 누군가와는 벌써 아이도 낳는 허무맹랑한 미래.
이토록 설레는 사랑의 시작이라는 감정은 나의 경우 대게 100일 이내에 그 설렘이 소멸되었다. 그 이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랑의 여정이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만 하던 시기가 지나면, 결국 나와 그는 각자의 방향을 찾았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시선이 흩어졌을 때, 그 시선을 나에게 돌리기 위한 노력은 다소 거친 말과 함께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식사를 하며 서로를 지적했듯이, 대게는 그런 식이다. 본인을 바꾸기는 힘들며, 상대가 나를 위해 변화하길 바란다.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다시 만나게 되는 시점인 영화의 오프닝 중 명장면으로 꼽히는 얼음판 위의 그들의 모습에서 둘의 성격이 얼마나 반대인지 알 수 있다. 클레멘타인은 거침이 없고 조엘은 조심성이 많다 못해 소심해 보인다. 그런 둘의 양극의 성격과 반대의 매력이 서로를 끌리게 했다. 밤늦게 술에 취해 조엘의 차를 긁었다고 고백하는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저주를 퍼붓는다. 외줄 타기 같던 그들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순간에 몰입하다 보면 내 사랑이 끝나던 순간이 온통 떠오른다.
영화 <결혼 이야기>, <연애의 온도>, <봄날은 간다>등 사랑이 소멸되는 순간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 이 영화의 이런 순간처럼 감정이 몰입되어 감상이 괴로웠다. 상처를 일부러 쑤셔대고 딱지를 떼 내며 묘한 쾌감을 느끼는 인간의 이상한 본성 때문인지 사랑의 감정으로 나를 괴롭히는 영화는 그 만한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돌아가서 이 영화 속 사랑의 끝자락에서 이토록 고통스러운 사랑인데, 그들은 왜 처음부터 만날 수밖에 없었을까?
플래쉬백 형태로 서사가 진행되는 영화는 본격적인 기억삭제 시술과 함께 조엘의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지우다 보면, 사랑이라는 기억의 끝자락에 악만 남아있던 감정 속에는 진짜 사랑과 아름다움이 함께 묻어있다.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을 잡고 싶던 조엘은 어떻게든 한편을 남겨두려 애쓴다. 탁자 밑에 숨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남겨두려 한다. 이 과정에서 미셸 공드리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데, 특히 비가 몰아치는 장면이나 아이가 된 조엘의 추억 등 로맨스 영화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함이 인상적이다.
모든 기억이 삭제된 다음 날 아침, 다시 영화의 시작이다. 조엘 자신도 모르게 달려간 몬툭에서 서로의 삭제된 기억 속 남겨진 무의식을 쫒은 걸까? 그곳에서 우연히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서로 다시 사랑에 빠진다. 얼마나 지독한 우연인지. 1%라도 남았던 무의식 속 기억이 서로를 끌리게 한 걸까? 사랑이 시작됐을 때처럼 서로의 매력을 바라본 것일까?
영화를 보고 청소를 하다 무심코 들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영화와 어울리는 찰떡같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때 그 사람'. 우리는 누군가를 지우려 갖은 애를 쓴다. 영화 속 기술적인 기억 삭제는 하지 못하더라도, 갖은 쾌락과 바쁜 일상으로 지나간 과거를 지우려 한다. 기억이 삭제된 조엘의 다음 날 아침처럼, 아무렇지 않았던 하루에 갑자기 트리거가 눌리는 순간이 있다. 방 한 구석에 처박혀 있단 앨범을 듣는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장기하는 노래한다.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몇 달째 구석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음반을
괜히 한 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예쁜 물감으로 서너 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었구나
기억은 아름다움과 괴로움으로 함께 공존한다. 과거의 조엘을 흉내 내며 똑같은 말과 행동으로 클레멘타인에게 접근했던 패트릭이 껍데기인 이유가 그것이다. 조엘과의 아름다움은 오직 조엘과 클레멘타인 두 사람이 간직한 기억이고, 누군가 그것을 흉내 낸다 할지라도 빈자리를 꽉 채워줄 수 없다. 사랑이라는 인연은 참 질기다. 억지로 떼어 놓는다 해도 결국 다시 사랑에 빠져 버린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는 곧 사랑이 끝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또 그 매력은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가 된다. 결국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된 클레멘타인은 말한다. '곧 거슬리게 될 거고, 날 지루하고 답답해하겠죠.' 그리고 서로는 답한다. OK, Ok.. 사랑은 빛난다. 처음의 반짝이는 순간의 빛은 곧 흐려지나 소멸하진 않는다. 빛은 곧 북극성처럼 반짝이다 먼 밤하늘에 흐릿하게 보이는 별이 된다. 그래도 빛은 존재한다. 결국 만나야 할 인연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오렌지빛의 후드티처럼 눈에 띄게 영원히 빛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