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망설이고 보류하는 삶
나는 언제부터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기 시작했을까? 그거야 당연히 태어날 때부터 아닌가요? 아기들의 울음인 응애는 어쩌면 '응'과 '아니'의 단축어 ‘응애’가 아닐까? 실제로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에도 응, 아니부터 배우는 걸 보면 인간은 어쩌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 뼛속까지 이분법으로 판단하라고 유전자 깊은데서부터 조정되고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아니고 부처님이 아니기에, 당연히 그런 깊은 유전자에 조정되며 살아왔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판단했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으며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는 내 태도에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며 살아왔다. 이 어리석음이 지혜인 줄 알고 살았던 지난 35년 이상이 물리적으로는 어쩌면 예수님이 오신 2025년, 부처님이 열반하신 2600년보다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 인생에 중요한 가치이기도 했으니까.
인권 감수성이 있고, 세계시민을 공부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나는 선악의 렌즈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소수자와 연대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던 그 기점이 렌즈가 강화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권력은 나쁘고, 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식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감각은 어쩌면 지금껏 나를 이루었던 수많은 약자의 배경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겠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이류대학 출신, 감정 노동자로 살아온 여성, 가부장제의 희생자 등등 굳이 꼬리표를 붙이자면 수도 없이 붙일 수 있는 ‘피해자’에 가까운 딱지들. 밤늦은 시간 집에 돌아가다 성폭행 피해자가 될 뻔한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왜 ‘여성전용’ 주차장이 필요한지 두둔하게 되었고, 그 감각은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라는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내 권력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고 그렇다 보니 약자와의 연대가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그 뒤에 내 위치의 반대급부에 있는 사람들이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 같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을 무시하고 귀를 닫고 눈을 가린 채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꼴 보기 싫어졌다. 조금은 모가 났지만 그대로 어찌 저지 굴러갔던 인생이 더 뾰족하게 깎여버렸다. 이제 내 눈앞에 놓인 선택들은 다 판단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A와 B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빚어지는 남편과의 갈등과, 아들과 딸을 하나씩 사이좋게 키우다 보니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내 가치 판단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헷갈렸다. A 아니면 B. 둘 중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왜 삶에서 정답은 명확하지 않은 건지. 왜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답 A를 두고도 B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건지. 그 선택을 하는 나 자신에 왜 괴로워하는 건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분명 플라스틱 소비는 나쁘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데,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서 생수병에 든 물을 두세 통씩 사 먹여야 하는 선택들. 조금만 신경 쓰고 텀블러에 물을 받아왔으면 됐는데, 그걸 하나 못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들. 그런 작은 균열들이 쌓여가서 점점 내 안의 틈이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때 즈음에 만난 불교는 이 균열의 틈을 살피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애초부터 균열이 날 필요도 없었고, 이미 난 틈새는 이제라도 흙을 빚어 채워 넣어 다시 메우면 된다고. 그렇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시민성은 사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연기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건 다 아는 내용이니까 나한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교의 연기적이라는 개념은 행동 양상,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심리적인 관계까지 모두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영화 <사바하>에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A가 있으면 B가 있을 수밖에 없고, 강한 A의 부정은 강한 B를 낳는다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이분법 안에서 판단하고 정답을 나누었던 행위 자체가 그 반대급부의 의견을 더 결속시키는데 일조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100%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한 연기의 개념은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정당성을 찾기 위한 내 고질적인 패턴이 조금 느슨해질 수 있었다.
이분법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국 그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어떤 큰 주머니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건 엄청난 용기였다. 그동안 내가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의 큰 부분을 수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무게가 덜어졌을 때, 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진즉 내려놔야 할걸 질질 끌면서 무겁게 들고 다녔으니, 내 마음도 몸도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불교공부를 하기 전에도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지만, 불교의 연기, 중도, 무아, 공사상을 배우며 남은 것들을 다 털어냈을 때 진짜 자유로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이해하게 된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었다. 왜 그렇게 스스로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 사람의 위치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야 비로소 내가 한 번도 그 책임감에 고마워한 적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원가족의 평생의 희생자였던 엄마, 가부장 아버지도 차례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원가족들로 인해 상처받았던 과거의 내면 아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를 살아가게 했던 힘인 줄 알았던 그 렌즈가 사실은 스스로 상처받게 만들었다는 사실, 그 상처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으로만 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나는 이제 누구를, 무엇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망설임, 보류, 기다림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쓸 수 있는 이 말들은 불교가 나에게 가르쳐 준 가장 큰 지혜이자 해방감이다.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효율과 빠름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느림에서 정말 큰 자유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시험에 들기도 한다. 여전히 진보적인 위치에 있는 나를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울컥하기도 하고, 앞 뒤 재지 않고 꼴페미라고 인신공격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기도 한다. 그래도 되도록 그들의 속도도 기다려 주려 노력하고 싶다. 언젠가는 나와 같은 자유와 해방감 속에서 진짜 삶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알록달록 채색된 곳이니까.
오늘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정답은 없을지도 몰라. 그저 지금, 이 삶에서의 나를 잘 살아내자.”
경계 위에 선 삶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이해와 자비가 내 삶의 색을 더 풍부하게 채워준다.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는 법을 배워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