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납작 엎드리며 깨달은 건, 나였다
“보름님은 지금 108배를 할 때인 것 같아요.”
“보름님은 지금 108배를 할 때인 것 같아요.”
“보름님은 지금 108배를 할 때인 것 같아요.”
싫어요!!!! 를 당차게 외치고 싶었으나 너무나 선한 얼굴로 너무나 활짝 웃으며 인자하게 말씀하시는 법사님의 얼굴을 보고 차마 싫다고 말할 수 없었던 그날 저녁. 다음 날 나는 이혼 보류 중 최선의 선택이라는 이유를 마음에 품고 매트를 폈다. 공동정진에 들어오라 하셨지만 그건 아직 무리였다. 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줌을 켜고 얼굴을 보면서 절을 한다?!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108배? 안 해봤지만 요가한 나에게는 껌이겠지 뭐…라고 생각한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요가할 때 쓰는 근육과 절 할 때 쓰는 근육은 다르다. 게다가 요가는 이것저것 이 동작 저 동작 돌려가며 하다 보니 앞벅지만 집중적으로 조지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108배는 말 그대로 앞벅지가 펌핑되기 너무나 적확한 운동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신체적으로 힘드니 50배쯤 되었을 때 허벅지가 아파 짜증이 났고, 그 짜증이 내 괴로움의 짜증인지 허벅지 고통의 짜증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경계에 서 있었다.
보통은 108배를 할 때 무의식을 바꾸는 기도문을 외우며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디서 절을 해 본 적도 없고 하는 방법도 배운 적이 없기에 발원문은 커녕 절 하닌 법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유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할 뿐이었다. 세모 아이콘을 눌러 ‘108배 절 하는 법’을 검색했더니 각종 불교단체에서 올라온 방식이 너무나 많았다.앞벅지에 힘을 주지 말고 올라올 때 발 뒤꿈치에 힘을 주고 올라오라고. 그 간단한 원리가 내 뇌는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요가를 3년을 했는데도 뒤꿈치에 힘주는 방법을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영상 속 사람들은 올라올 때 무려 기도손을 한 채로 자유롭게 발을 움직였다.
108배의 첫날은 내 인생 첫 108 배기에 몸도 마음도 어정쩡했다. 그런데 그 어정쩡함 속에서도 절을 하면 할수록 남편에 대한 분노가 커져만 갔다. 몸이 힘들면 그런 생각이 안들 것 같았는데 첫날은 그 반대였다. 힘들면 힘들수록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원망의 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절을 하다 어젯밤 싸움을 리플레이하게 됐는데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네가 인권 강의를 하든, 페미니스트든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러니까 너도 그냥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변화되길 기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주면 안 돼?”
그랬다. 지난 10년 간, 나는 나름대로 공부한답시고 대학원도 가고 논문도 쓰고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었다. 거기에 모자라 갈증이 나서 독서 모임도 상당히 많이 가입해서 찾아다녔다. 영화 모임도 3개 정도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머리가 클 대로 커진 것이다. 그 커진 머리로 자만했다. 나는 이렇게 ‘성장’하는데 남편은 왜 제자리일까. 나는 내가 아는 범위만큼 남편도 알았으면 했고, 내가 토론하고 사유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남편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저만큼 멀리 가 있었고 남편은 제자리에 있었기에 그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질 않았다. 내가 어떤 정치적인 이야기라도 꺼낼라 싶으면 남편은 마치 나랑 전혀 다른 쪽을 지지하는 사람처럼 겁에 질린 눈동자를 꿈뻑였다.
‘너는 너무 진보적이야.’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남편은 나를 판단하거나 그러지 말라고 천천히 가라고 한 번도 발목을 잡은 적이 없다. 변한 건 나였고, 기대하는 쪽 또한 나였다. 남편의 그 말이 크게 귓가에 울렸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줘라.’ 사실 그게 내가 불교 공부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 메시지는 제대로 듣지 못하고 주변머리에서 얼쩡거리며 남편을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올라오는 괴로움은 사업 실패 후 남편의 태도였다. 다시 회사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사와 육아는 내 전담이었고, 그 부분에서도 항상 미안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태도에 화가 나 친구들에게 ‘내가 남편이 납작 엎드리길 바라는 것 같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진짜 엎드려야 할 사람은 나였다.
나의 그런 기고만장함이 남편이 더 자기 일만 하도록 만들었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한 배 한 배 물리적으로 몸을 숙이면 숙일수록 나라는 존재도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같잖은 지식이라는 탈을 쓴 가짜 에고가 조금씩 몸을 숙이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남편도 힘들었을 거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매일 내 앞에 납작 조아리길 바라는 거냐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나를 발견했다.
100배가 가까워지자 눈물이 흘렀다. 땀도 나고 눈물도 나고 서러움에 콧물도 나고. 구멍이란 구멍에선 다 오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마치 더러운 것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방석이 젖어갔다. 몸은 힘들었는데 108배를 하는 행위는 오히려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어떤 말로 설명하면 좋을까? 이를테면 고통 속에서 오는 해방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도반님이 그러셨다. 괴로운 일이 있으면 108배가 잘된다고, 염주를 셀 틈도 없이 끝이 보인다고. 나는 염주도 없이 시작한 초보이기에 숫자 세는 일도 나중엔 포기했고 그냥 목탁 소리에 맞춰 몸을 숙였을 뿐이었다. 아마 108배를 훨씬 넘게 했을 것이다(그러니 허벅지가 더 아플 수밖에). 그럼에도 그냥 계속 숙였다.
법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해 보면 알 것이다.”
이거구나. 그냥 운동으로만 해도 최적의 전신 운동이라고 하는 108배의 효과가. 마음으로는 이렇게 작용하는구나. 바로 직전에 느꼈던 것들 중에 내가 돌아봐야 할 것들이 명징해지고 그것을 깨닫고 더 몸을 낮추면서 나는 겸손함이 무엇인지 잠시 동안 느꼈다. 물론 절을 마친 뒤에 또다시 밀려오는 무력감과 괴로움을 막을 순 없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였다. 나는 처음으로 나한테 석고대죄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에게 몸을 숙이고 발화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감사함과 미안함을 외쳤다.
그 고통 속에서 쏟아낸 더러운 오물은 나에게 첫 정화의 쾌감이었다. 몸은 분명 고단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내가 남편에게 납작 엎드린 게 아니라, 내 안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던 자만과 억울함, 그리고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상한 우월감이 내려놓아졌을 뿐이었다. 그게 내가 108배를 하며 처음으로 느낀, 감정의 찌꺼기였다. 그리고 그 찌꺼기를 처음으로 스스로 꺼내놓고 바라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