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그게 뭔데

108배 vs이혼, 당신의 선택은?

by 달달보름

2년 전 이맘때였다.

요가에 푹 빠지면서 알코올 중독을 쇼핑중독으로 치환하며 삶을 이어갔던 나날들.

소비는 커졌지만 마음은 풍족해지고 있기에 이렇게 살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은 당시 개인 사업으로 1년 넘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회사에 직원 두어 명을 두며 인건비도 따로 지급하며 나름 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직장 다닐 때와 다르게 벌이도 몇 배나 많아졌기에 아마 남편을 믿고 내 소비 씀씀이가 더 커졌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절박한 카톡을 보게 되었다.




“수주한 사업 자금 회수가 안 돼서 몇 달 동안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어.

이제 나도 더 이상 대출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네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당시에 빚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는 당황했고,

남편은 몇 달 동안 인건비 지금을 위해 개인 대출을 써 가며 독촉을 감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급한 불은 꺼야 하니, 나도 있는 돈을 다 털고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챙겨서 일단 남편에게 송금했다.




‘괜찮겠지, 별 일 있겠어? 그동안 잘 됐으니 이번에도 잘 넘어가겠지.’



그땐 그냥 다 '잘 될' 마인드로 남편을 도왔다.

그나마 내가 요가하고 명상을 했으니

이런 일에도 흔들림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자기 위안을 했고,

나에게 벌어진 에피소드를 웃으며 친구들과 나눌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빚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나도 당장 생활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한계에 다다라 버렸다.

잘 될 거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잘 되지 않았고,

웃으며 자기 위안했던 내 표정도 점점 일그러져갔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싶었다.

키워야 하는 애들이 있고 돌봐야 하는 강아지도 있고,

집도 있는데 다 포기하고 그냥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일단 남편과 나는 더 이상의 빚을 지는 것은 무리라 판단해

모든 신용카드를 중지시키고 흐르지 않는 현금으로 가계를 꾸려갔다.

덕분에 내 쇼핑중독도 자연 치유되었다. 더 이상 쇼핑할 수 있는 여유도 시간도 없었으니까.




아이들 학원비만큼은 줄이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이 있어서

집에 있는 금부치를 팔고, 몇 개 되지도 않는 명품을 팔고, 냉장고를 파먹으며 하루하루 버텨갔다.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남편도 사업을 접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고,

나도 줄였던 일을 늘여가면서 살얼음판만 같은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지나고 있었다.

당장 먹고살 걱정에 남편과 나는 쌓아 둔 감정을 풀 시간이 없었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 일 할 뿐이었다.

나는 육아와 살림과 일을 중심으로 남편은 더 많은 일을 중심으로.




그 이후에도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자주 떠올렸다.

이혼을 하면 어떨까?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실리를 따지기 마련인데,

어쨌든 내 명의로 빌린 돈이 남편의 빚을 갚는데 쓰인 만큼

당장 이혼을 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싱글맘이 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커 보였다.

그래서 그냥 그 마음을 묻었다.

언젠가 이 관계도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이혼서류를 품고 딱 10년만 버텨보자 생각했다.

그때도 이 마음이 변함없으면 서류를 내밀고, 아니면 같이 살면 되지 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조금은 나아질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불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동안 내가 남편에게 줄곧 이야기해 왔던 에코페미니즘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었다.

환경을 왜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왜 몸과 마음을 먼저 돌봐야 하는지,

왜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지 등등 내가 하는 교육철학과 맞닿은 지점이 많았다.

남편이 떠올랐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사업을 무리해서 해서 실패했고,

몸은 돌보지 않은 채 하루 18시간 이상 일하며 살고 있는 남편이 불쌍했다.

그 연기적인 관계에서 나도 고통받아야 하는 거, 이제는 너도 알아야 하지 않니?



남편도 이 공부를 하게 되면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자신을 좀 더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자기야 있잖아, 내가 지금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 내가 쓴 책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아.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서 환경도 생각해야 하고 육식도 자제해야 한대.

우리가 같이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자기도 여기 입학해서 같이 배워보는 건 어때?”




남편은 얼굴을 찡그렸다.

강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그런 불교가 어딨냐, 불교는 그런 것 아니다.’며 성을 내던 남편의 표정을 보고 화가 났다.

아니 어쩌면 그 화는 1년 동안 꾹꾹 눌러오고 회피했던 내 감정이었을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과거 이야기를 줄줄이 하게 되었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큰 소리를 치게 되었다.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꼭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다 쏟아냈다.

아마도 결혼 이후 손에 꼽히는 싸움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날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한다.




억울했다. 왜 쓸데없는 과욕으로 일을 그르치게 만들고 그 책임은 공동으로 져야 하는 건지,

내가 뭘 잘못해서 여전히 나는 일을 하며 육아와 살림을 돌보고 남편은 더 많은 일에 집중하느라 가정생활은 뒷전인 건지.

내가 처한 상황, 위치, 역할 모든 것이 화가 났다.

아마 그때 내 심정은 '네가 잘못했으니 나에게 납작 엎드려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당당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참을 울다가 불교대학 수업이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방문을 닫고 노트북을 켰다.

그날은 특별히 정토회에서 오래도록 수행한 법사님과 함께 정담회가 있는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같은 고민이었더라도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못하는 나였는데,

그 시간만큼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마음을 내놓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내가 얼마나 이 위치에서 억울한지에 대해 토로했다.

나는 잘못이 없고, 피해자며 모든 것은 남편 탓이라고.

나는 그 고통을 어떻게든 다스리려고 마음공부를 하는데, 남편은 이런 마음도 모른다고.



법사님과 도반님들은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어떤 판단과 조언도 없이 그냥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한참을 울던 내가 진정되자 법사님은 조용히 조언을 해 주셨다.


“보름님, 혹시 108배해보신 적 있으세요? 지금 보름님이 108배를 해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아니, 나는 내 편 들어주길 바랐는데 뜬금없이 108배가 뭔 말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내 마음이 지치는데 내가 더 힘든 108배를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 내일 새벽부터 할 수 있는 온라인 공동정진이 있으니 해보라고 제안하는 법사님에게 차마 ’노‘라고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처음으로 꺼낸 내 어두운 마음을 가만히 들어주신 분 아닌가? 내가 왜 절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망설였다. 이걸 해, 말아? 그래도 마음 내셔서 조언해 주셨는데 무시하는 것은 어른에 대한 예의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있으니 해보라고 권유하신 거겠지. 부담감과 싫은 마음, 저항감이 가득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108배. 그게 뭔데 그렇게 좋다는 건지. 나는 내 경험을 믿는 사람이니까, 그냥 해 보자. 어차피 지금 이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


그러니까 이혼을 할 수 없다는 체념, 그 안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엉겁결에 108배를 수행하는 수행자가 되었다. 불교대학에서 진짜 공부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마음은 복잡했고, 몸은 무거웠지만, 다음날부터 나는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땐 몰랐다. 그게 내 영적 성장에 얼마나 큰 전환점이 될지는..



다음 편: 그후로 회복된 지난한 남편과의 관계, 지금은 어떠냐고요? 108배 수행으로 흔들리지만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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