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에서 시작된 에고 탐험기 - 내면을 찾아가는 탈피의 반복
술독에서 빠져나온 뒤, 나를 지탱해 준 건 단연코 요가였다.
일정을 줄이며 가장 먼저 나를 돌보기로 약속했고,
2년 치를 통째로 등록하며 하루 1~2시간씩 수련에 몰두했다.
나는 이제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다. 나는 건강하다.
내 몸은 좋아진다. 좋아진다. 좋아진다.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매일 오전 수련장으로 입장했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나를 발견했다.
운동을 가다 말다 수십 번 반복하던 유령회원이던 나는
근력운동 덕분에 몸이 조금 단단해졌음에도,
‘나는 원래 허약한 체질’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걸 요가가 깼다.
요가를 하면 할수록
근성장이 뿜뿜 했다...
이거 내 어깨 맞니..?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머리서기도 빨리 했고
초보자한테는 다소 어렵다는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도 쉽게 올라왔다.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면
그냥 엑소시스트가 따로 없다.
이게 뭔 요가 자세냐.
그때는 우쭐했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완성이 아니라, 흉내였음을.
그런데도 계속되는 선생님의 칭찬과
도반들의 우쭈쭈가
내면의 가짜에고를 계속해서
키워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이런 음성이 들렸다.
“여러분 저 좀 봐주세요. 제발요. 저 잘하죠?”
그건 에고의 음성이었다.
요가라는 이름 아래, 내 자의식은 커져가고 있었다.
그걸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커져가는 에고에 맞장구라도 치듯
요가 강박에 빠지게 되며 무릎과 어깨에 통증이 왔다.
몸이 말을 건 것이다. 멈추라고.
힘을 빼라는 신호가 수없이 왔지만
나는 ‘감내’라 착각하고 부황을 뜨고 침을 맞으며 버텼다.
시커먼 부황 자국으로 가득한 등을 찍은 사진은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선명한 자국으로 보여준다.
어리석은 자는 부황자국이 많다.
중독자의 메커니즘은 어디에서든 통한다.
요가중독이라는 욕망은 또 다른 중독으로 번졌다.
요가복 맛을 보게 된 것이다.
딱 붙는 레깅스에서 하렘바지를 입으며
해방된 가랑이의 시원함에 중독되어
바지를 끊임없이 사들였다.
결국 가지고 있던 옷장의 공간도 모자라
또 다른 옷장을 사며
소비를 소비로 채우는 우를 범하고 만다.
가랑이는 해방됐지만 서랍은 감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교차중독이었다.
술 대신 요가, 요가 대신 소비.
나는 여전히 중독의 패턴 속에 있었다.
몸을 혹사시키며 아사나에 집착하고,
멋진 요가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멈출 줄 몰랐다.
속도와 경쟁에 나를 욱여넣던 그 시절,
스스로를 치료하려던 요가에서조차
나는 또 다른 속도와 경쟁을 반복했다.
남들보다 예뻐 보이길
남들보다 잘해 보이길
끊임없이 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말로는 삶의 속도를 조절하자면서, 나는 과연 내 핸들을 잡고 있었던가?”
감각은 깨어났지만, 마음은 깨어나지 못했다.
이것을 인정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
강박처럼 매일 요가하던 루틴을 내려놓고,
더는 옷장을 채우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면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멈춰!!"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도대체 이 집착으로
나는 내 몸을 얼마나 혹사시켰으며
나는 얼마나 많은 면직물 노동자를 착취했으며
얼마나 많은 환경을 오염시킨 걸까?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진짜 내 안의 소리를 따라가기로 했을 때
비로소 유연함이 올라왔다.
몸도, 마음도.
에고가 드디어 떠났나 싶었다.
가라 제발...
그런데 그런 내가 또다시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었다.
요가복을 소비하는 다른 도반들을 보며
“저건 요가가 아니야”라고,
마치 선민의식이라도 된 듯 판단했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한 번 벗어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나.
탈피하고 올라오고, 다시 탈피하고 올라오고,
마치 끊임없이 변태 하는 애벌레처럼.
지쳤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요가만으로는 내 안의 자아를 다 비워낼 수 없었다.
버려도 버려도 자꾸 올라오는 ‘나’.
이 자아를 어떻게 놓아야 하는가가
나의 다음 화두가 되었다.
감각은 깨어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흔들렸다.
나는 마음공부를 위해 요가를 시작했는데
왜 자꾸 가짜에고가 생기는 걸까?
이걸로 충분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 탐구의 한계가 있는 걸까?
다른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어느 날,
전봇대에 붙은 ‘불교대학 입학’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그 순간은 별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마치 ‘이리로 가보라’는 누군가의 신호처럼.
결국 나는, 또 한 번 마음을 내기로 했다.
가짜 에고야, 이제 너 나와라..
불교대학 입학하면 너는 죽었다.
부처님 옆에 모시고
진짜 한 판 붙자!
다음 편: 불교 대학에 입학하여 법륜스님이라는 새로운 스승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