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독에서 빠져나오다
술을 끊어야겠다 생각했던 그날을 기억한다.
여러 번 금주는 있었지만, 진짜 단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
또 술에 취해서 예전 다이어리를 뒤졌다.
마음에 병이 나니 술에 의존하면서도
과거에 자꾸만 집착했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오래된 기록을
끄집어내는 것이었으니까.
어떤 날의 기록은 뭐라 쓰였는지도 모르는
있지도 않은 한글 필기체로 흩날린 기록들이었고,
글자를 해독하는 데에 한참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중 내 두 눈을 사로잡았던 문구는
금주 직전 술에 취해 써 놨던 문구.
"내 영혼은 썩어가고 있다."
영혼이라는 개념을 그때 진짜 알기는 했을까?
나는 어쩌다 그 말을 써놨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그 말이
회복자가 되기 위해 미래의 내가 몰래 와서
인터스텔라처럼 써 놓고 간 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하는 문구다.
(이게 진짜라면...)
그런데 그 문장을 본 순간,
정말 썩어 문드러져 역겨운 냄새가 나는
내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밤 술에 취해
그 술 냄새가 싫어 집에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박 닦아 가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무리 닦아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악취.
그 냄새를 품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요가원에 가서 극악 난도의 아쉬탕가를
하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매스꺼움을
억누르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자책했다.
그 모습을 티 내고 싶지 않아서
매일 운동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던 2022년.
나는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그냥 계속 술독에 빠져 살면서
매스꺼움을 참으며 요가를 하며
나를 감춘 채 살거나
당당하게 드러내고 치료받으며
새 삶을 살거나.
벼랑 끝에 다가가니 의외의 장점이 발휘된다.
추진력이다.
나는 그다음 날 바로 정신과 상담을 갔다.
의사 선생님께 구구절절 사연을 말하진 않았지만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긴 했고,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약을 좀 달라고 간청했다.
놀랍게도 약의 효과는 매우 좋았다.
어떤 약을 누가 먹느냐에 따라 다르고
많은 경우 플라세보가 작용한다고 하지만,
어떤 이유든지 나에게 잘 맞는 약은
먹자마자 모든 스위치가 꺼지는 기분이었다.
뭘 해야겠다는 열망도,
뭘 먹고 싶다는 욕망도 감각도
모두 셧다운 되었다.
그 멍한 상태로 나는 약 6개월간
요가를 통해 몸을 돌보고,
충분한 수면을 통해 뇌가 회복될 여유를 주었고,
일을 줄여가며 소진에서 빠져나왔다.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정리되니
밖으로 미친 듯이 뻗어나갔던 에너지가
드디어 37년 만에 내면으로 수렴되기 시작했다.
엥, 나 완전 대문자 E인데 이게 말이 되나?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여행도, 락페도 귀찮고 사람 많은 것도 기가 빨리고
에너지가 탈탈 털리는 이 느낌,
이거 I들이 느끼는 감정 맞나요...?
그러거나 말거나, 37년 만에 일어난 이 변화는
너무나 놀라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탐색된 지식들은
더 이상 남을 위한 지식으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 내면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가장 먼저 내가 익숙하게 만난 내면탐구 도구는
요가 철학이었다.
본격적을 탐구한 것은 아니지만,
몸과 마음으로 먼저 느꼈다고 해야 맞는 말인 것 같다.
어느 날은
아사나로 몸을 한껏 쓰고 난 뒤에
마지막에 맞이하는
사바아사나를 통해 하나였던
내 몸과 내 영혼이 마치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손 끝, 발 끝을 타고 흐르는 혈류와
시원하게 열려서 행복해하는 골반
항상 말려있어서 괴로워하던 목 어깨도
시원해지고,
코 끝으로 바람이 왔다 갔다 하는 감각이
어느 순간 너무 선명해졌다.
마치 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그것들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술로 채우는 단편적인 도파민과
차원이 다른 도파민이었다.
실제로 같은 도파민이지만 결이 다르다는
두 도파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요가 수행 뒤에 오는 도파민은
점진적이며 동시에 주의력과 감정 조절력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썩은 영혼의 회복을 느꼈다.
나 스스로 썩어간다 생각했던 영혼들이
조금씩 살을 붙여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요가철학에서는 이것을 '아트만'이라고 부른다.
고요한 나, 참 나, 영원한 나, 조건 없는 의식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는 자아가
평온함을 느끼는 감각.
그것이 아트만이다.
사람의 경험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사바아사나 때의 감각이 아트만 그 자체였다.
2023년 3월.
그렇게 술에 취해 살던 나는
약과 아트만의 감각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나아갔다.
다음 편: 요가로 인해 감각이 깨어난 과정과 그것의 부작용에 대하서 써보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