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꿈이 나에게 알려준 것

로또를 바랐나요? 네니오....

by 달달보름

'꿈 일기를 써 보세요.'



작년 가을, ‘언니들의 북씨네살롱’이라는 팟캐스트에서 홍칼리 작가님과 함께 방송을 만들었다. 무속신앙을 다룬 책,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함께 읽으며 나 역시 오랫동안 경계해 왔던 샤머니즘의 문턱에 조심스레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당시 뉴스를 달구던 전 영부인의 무속 루머도 있고, 나 역시 그런 시선에 영향을 받았던 터라 조금은 경계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칼리 작가님의 말은, 너무나 따뜻했다.



본인은 무당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기꺼이 정성껏 기도를 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두지 않고 모든 것에 신성을 본다고. 불교대학에 입학하기 전이었음에도 그 말이 무척 와닿았다.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버려지는 쓰레기에도 신성이 있으니 소중히 하라는 말이 지금 전 지구인이 처한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꿈 일기를 써 보라는 칼리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 뒤로 다이어리에, 메모지에 생각나는 꿈들에 대해서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나는 꽤 선명한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고 심지어 가위를 눌리는 경험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이제 가위눌림이 귀찮고 짜증 나서 그냥 자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수 없이 꿔 온 꿈이 어떤 메시지가 있을 거라는 말이 참 흥미로웠다.



실제로 티베트에서는 꿈을 통해 메시지를 받고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꿈 요가'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 무렵 함께 인문학 서적을 추천해 주는 도반에게 추천받은 책이 '티베트 잠과 꿈 명상'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책을 읽는 도중 칼리님의 추천을 받았으니, 뭐든 경험하고 생각하자 하는 경험주의자인 나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알 수 없는 뒤죽박죽 꿈들도 적었고, 눈 뜨자마자 휘발되고 소리나 느낌만 남은 꿈들도 있었다. 어느 날은 숫자 '6'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오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깬 날도 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적었다. 적다 보면 어떤 의미들이 연결되지 않을까 싶어서.



지난 2월 처음으로 100일 기도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정토회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뒤, 나는 앞으로 새벽 5시에 매일 일어날 생각에 미리 나사를 풀어버렸다. 그래봤자 하는 거라곤 하루 종일 영화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는 것뿐이었지만, 아무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놀고 싶어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라마만 본 날도 있다. 그즈음에 너무 선명한 꿈을 꿨다.



그냥 꿈도 아니고 무려 폭포에 황금 돼지'들'이 웃으면서 둥둥 떠다니는 꿈이었다.


꿈을 꾸면서도 나는 '대박'을 외쳤다. 내 인생에 횡재수는 없다고 했는데, 드디어 내 인생에 로또가 열리는 건가 두근두근 하는 마음을 품으며 다음 날, 기대감에 로또를 두 장 샀다. 결과는… 꽝. 아, 정확히 말하면 한 장이 5,000원 당첨이었다. 며칠간 1등의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그 5천 원은허망한 꿈이 되었다. 입재식을 시작하고 도반들과 나누기를 하며 꿈 이야기를 했다. 로또 꿈인 줄 알았는데 5천 원이라니. 대체 왜 내 꿈에 황금돼지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도반들도 웃으며 자기라도 대신 로또를 사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망한 내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일등하면 뭐 할지 열심히 뇌 굴린, 내 상상 돌려줘...



며칠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꿈은 앞으로 내가 참회기도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하는 초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100일 넘게 기도를 하면서 알게 된 내 꼴(?)을 살펴보면 나 같은 사람한테 로또 같은 횡재수가 떨어지는 건, 어쩌면 행운이 아니라 불행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윤리적으로 너무 엄격한 사람이기에, 분명 그 돈으로 뭘 할지 고민하다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 그러니까, 결국 그 꿈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그동안 견고하게 굳어진 내 정체성을 하나씩 탐구하고 해체하고 살아갈지 알려주는 그런 꿈이었을지 모른다.



그 뒤에 꿨던 꿈 중 여전히 기억나는 꿈 하나가 더 있다. 소파에서 단잠으로 딱 10분 눈을 붙이면서 꾼 선명한 꿈이다. 냉장고 앞으로 다가간 나는 열린 냉동고를 보고 기함을 했다. 꿈에서는 많은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참 많은데, 이건 100% 남편 짓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냉동고 문을 열었고, 그 순간 그 안에 얼었던 것들이 스르륵 녹아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물을 닦아내며 나는 탄식했고, 실제로 입으로 '아!' 소리를 내면서 잠에서 번쩍 깼다.



'아, 업장이 녹기 시작했구나.'


그 꿈을 꾼 이후로 나는 108배를 통해 가장 먼저 남편과 화해를 했다. 남편이 저질러 놓은 일을 보고 탄식하던 내 업장이 소멸되기 시작했다는 알림이었다. 꿈은 살아있는 메시지라 그때에 유효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생경한 꿈들을 꾼 지 벌써 150일쯤 되었지만, 여전히 저 꿈들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로또는 없었고, 나는 변했다. 남편과 쌓았던 업(까르마)이 녹았고, 우리도 변했다.



나는 그 뒤로도 매일같이 꿈 일기를 쓴다. 어떤 날은 SF 뺨치는 미친 스토리를 가진 장편 서사의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날은 모르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수 없이 쏟아지는 꿈속의 이야기들은 내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나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물론 그 의미가 한 번의 해석으로 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에서 오는 무의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노란경전의 프롤로그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심히 비친 노란색 책, 그 꿈의 메시지가 이 이야기의 제목이 되었고 이 이야기를 쓰는 힘이 되었다. 작은 꿈의 한 장면에서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해야 할 것은 꿈의 메시지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 장면이, 내가 미처 풀지 못한 마음의 실마리를 건네줄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스쳐 지나간 것 같아도, 내일 다시 돌아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오늘 밤 당신의 꿈에도 거대한 메타포가 깃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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