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다, 계절과 현실 사이

by 알케미걸




S의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한다. 신혼 재미에 연락이 뜸한 줄 알았던 신부는 봄기운에 들떠 나들이 떠나는 계절에 더럭 미망인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암선고를 받고 치료 중인 H가 떠올랐다. 건강하던 시절 그의 집이 동네의 명소로 불릴 만큼 정원 손질에 뛰어났던 그가 잡초 무성한 마당을 보며 무슨 생각으로 지낼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면, 박사학위가 무색하게 3 년째 무직인 K군과 야심찬 개업 이래 연이은 적자 탓에 알바라도 뛰어야될까 고민 중인 카페 주인 M선생, 연애는커녕 소개팅도 한번 못 해봤다는 6 년차 돌싱 Y에겐 요즘 부쩍 포근해진 날씨 같은 건 별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모른 척하고 싶지 않을까. 세상에 보란 듯 내놓을 성과도 희소식도 없는 마당에, 뽐내듯 돋아난 새순과 꽃들의 생기발랄에 미소로 답할 기분이 아닐 테니까. 기대한 만큼 나아지는 대신 더 악화된 상황이라면 산뜻해진 옷차림처럼 마음이 가볍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꽃잎 흩날리는 축제장에서 기억하자. 계절의 새봄에 인생의 시린 겨울을 견디고 있을 누군가의 이름을. 드높아진 하늘을 바라볼 때 안부를 전하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싹트고 피어나는 날들 속에 희망을 기원하자. 어둠의 터널을 지나 낯선 세계의 문 앞에 선 누군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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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자연의 계절변화가 일치한다면 마음은 편하게 살 것만 같다. 그러면 우리는 해마다 한번씩 봄의 꽃처럼 활짝 피고, 여름의 태양처럼 타오르고, 가을의 수확처럼 풍성하고, 겨울의 대지처럼 휴식하는 보장된 리듬을 타고 흘러가면 될 테니까.


아쉽게도 자연의 계절변화는 인생의 그것과 어긋나기 일쑤다. 인생이란 최전선에서 실전을 치뤄보며 알게 되었다. 산과 들이 봄빛으로 화창할 때 삶은 가장 혹독한 시련에 맞딱드릴 수 있고, 세상이 8월의 해변과 파티무드로 들썩일 때 마음은 남모를 침묵 속에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모두 한가위 보름달 아래 풍요를 얘기할 때 빈 주머니를 감추며 쓴 웃음지어야 할 때도 있고, 연말연시 한해의 마무리와 새출발에 주위가 부산할 때 유종의 미는커녕 시도조차 해본 일 하나 없음에 상심해 어디로 숨어버리고픈 겨울도 있다.


그렇다 해도 자연의 시간과 우리의 속도를 비교해서 낙심하지는 말자. 억센 가지를 뚫고 나와 꽃망울을 터뜨리고야 마는 생명의 힘에서 머지않은 미래를 보자. 그늘진 산기슭이든 보도 블럭 사이든 누군가의 허름한 화분에서든, 주어진 곳에 뿌리 내려 성장하는생명의 인내에서 일어설 힘을 얻고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는 자신을 힘껏 안아주자.


봄꽃의 아름다움은 씨앗의 힘이다. 겨우내 추위와 어둠을 이겨낸 뿌리의 신념이다. 화창하지 못 한 나의 오늘에 마음을 열고 보살펴주자. 여린 품속에서 태동할 봄날의 약속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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