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시간 남은 기억

남은 달력이 얇아지는 시간

by 알케미걸







10월의 끝자락
달력 한장이 또 넘어가려고 한다.
(매년 왠지 아슬아슬한 이맘때 기분...)

시간이 흘러야 좋은 점도 있긴 하다.
그래야, 알게 돼서 반가운 사람이 오고
살아있다는 게 감사한 순간이 오고
절로 마음 설레는 기회가 오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던 내 차례가 오고
'이 또한 지나리라'며 기원했던 날이 오고
오랫동안 꿈꿔온 장면이 펼쳐질 수 있다.

경험하고 감동하고 성숙하고
사랑이 주는 천 개의 행복을 알게 되고
어린 시절 품었던 의문의 답을 얻고
원하는 것에 다가갈 수 있는 건,
결코 되돌아오지 않고 한결같이 흘러준
성실한 시간이 선사한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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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세월의 뒷모습이 언제나
뿌듯하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가차없이 갈 길 가는 시간 때문에,
어린시절의 마지막 날이 오고
만남 뒤에 헤어짐을 알게 되고
세상 사는 쓴맛을 보게 되고
어른들이 그랬듯 한숨을 쉬고
희망이 절망으로 끝나 무너져내리고
신체노화가 뭔지 제대로 알게 되니
마냥 좋기만 할 리가 없다.

웃으면서 거짓말하는 얼굴을 만나고
몰이해와 폭력을 목격하고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는 충격과
나만의 지옥을 경험하는 건,
흐르는 시간이 베일 뒤에 숨긴 어둠이다.

단 얼마라도 세월을 붙들어 앉혀서
그 속도를 늦춰보겠다고
덧없고 허탈한 젊은애들 코스프레에
없는 시간+남은 기력마저 소모하는 건
에너지 효율면에서도 현명치않다.

시간이 맡은 바 할 일을 다 하느라
충실히, 부단히, 어차피 흘러갈 거라면
그 믿음직한 흐름에 맡겨 떠나보내자.
가슴 아픈 일과 오래된 후회와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속이 타들어가는 미련과
마음에 독이 되는 생각과
칼처럼 아플줄 알고 뱉은 말들과
먹구름만 드리우는 기대와 집착을.

그리하여,
하루해가 저물고 나면
추억이 깃든 머리와
사랑만 남은 심장으로
다시 또 다시
남은 날들을 살아낼 수 있게.

온마음 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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