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간은 나에게 동작이 느리고 답답한 친구였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미래로 건너뛸 줄 모르고 불필요하기 짝이 없는 현재를 맴돌며 꾸물거렸다. 두 눈에 짜증을 가득 담아 쏘아보면 시침 분침이 속도를 낼 줄 알았다. 적어도 매일 못살게 구는 내 눈치 정도는 볼 거라 믿었다. 그런 기대를 엎고 시간은 느림과 고집으로 무장한 만만찮음을 과시했다. 아이의 소망 따윈 무심하게 즈려 밟고 늑장 페이스를 고수하는 매정함은 필살기였다.
초능력을 써서라도 시간을 움직이고 싶은 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순간들 탓이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누릴 수 없는 자유 때문이었다. 슬플 때 위로를 받고, 겁이 나면 울어도 되고, 하기 싫은 말은 안 해도 되고, 혼자 있고 싶으면 그럴 수 있어야 했다. 질타나 체벌 대신 따스함이 간절했지만 그렇지 못 한 날들이 늘어만 갔다. 날쌔게 가는 시간은 어린 시절이란 앙증맞은 감옥을 벗어날 열쇠였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히어로였다.
한없이 굼뜨고 더딘 시간이 돌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절로 민첩해졌다. 하루가 후딱 지나고, 일주일이 짧아지고, 사계절과 달력이 술술 넘어갔다. 마지막 남은 12월이 서운함을 넘어 야속하게 다가왔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저만의 속력으로 가버리는 시간의 가차없음이 거슬리기 시작한 때가. 아니, 살짝 두려워지게 된 시점은.
달리는 기차같은 날들의 차창 밖으로 인생 풍경들이 휘릭휘릭 스쳐갔다. 입학 축하 꽃다발을 들었던 손에 졸업장이 주어졌고, 20대의 생일이 뒤늦게 기억난 기념일처럼 어이없이 지나버렸다. 사랑이 왔고, 자격증을 몇 개 땄고, 회사를 차렸다. 해외로 취업해 180여 개 도시를 쏘다녔다. 시간의 질주를 보채던 아이는 잠잠해졌다.
"180개도 넘는 도시를 가보셨으니 추억도 많겠네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해외여행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묻는 사람이 나온다.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지만, 처음 누군가 질문했을 때 머릿속이 텅 비어 답을 못 했다. 그럴싸한 명소들이 줄줄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달리는 차의 속도로 휙휙 지나는 밖을 보거나, 시차선을 넘고 넘어 다음 목적지로 날아가는 내가 보였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나의 여행모드는 그 둘 중 하나였다.
뭐라고 말을 할까 궁리 중에 핀란드의 하늘과 피렌체의 비둘기떼가 생각났지만 지워버렸다. 디즈니랜드를 90분 만에 속성 관람한 얘기는 자랑이 아니라서 삼켜버렸다. '뭐가 급해서 그렇게 서둘러 다녔어?' 들려줄 대답 대신, 자책도 실망도 아닌 안쓰러운 물음이 머리에 차올랐다.
그 많은 장소를 여행했다기보다, 도시 사이를 줄곧 옮겨 다닌 느낌이었다. 방문보다는 이동이란 표현이 더 들어맞았다. 자취를 감췄다고 여긴 아이, 오지 않은 시간을 그리던 아이가 나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했다. 오롯이 주어진 지금 여기를 사탕껍질처럼 던져버리고, 다음 순간, 다른 장면, 낯선 하늘로 내달리는 익숙한 버릇이 그 증거였다.
그래선지 요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을 수긍할 만큼 아이는 자라서 용기를 낸다. 삶이 내준 백지 앞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 머무는 연습을 한다. 한켠한켠 여백이 채워질수록 가슴에도 찰나의 빛과 색이 스며든다.
아이의 손을 감싸듯 붓을 쥐며 알게 되었다. 시간은 가버리지 않고 마음에 서린다는 것을. 사라지지 않고 알알이 마음결에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을. 그 힘으로 살아갈 날들이 기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