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불친절해요 아까부터? 승객한테 화 풀려고 승무원 합니까?”
결국 터졌구나. 재깍재깍재깍. 마냥 가는 시한폭탄은 없으니까요. 이륙 전 후배가 머리 위 선반을 쾅 닫았을 때 승객은 인상을 지푸렸습니다. 기내식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놨을 때도 그 승객은 후배를 흘겨보았습니다. 그러다 후배가 서빙한 음료에서 얼음 하나가 튕겨나가자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맞은 편에서 일하던 제가 봐도 이륙 전부터 심상찮은 승객의 표정에 조마조마했지만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후배는 “내가 비행을 안 하면 안 했지 굽신거릴 생각은 없다.”고 누누이 말했으니까요. 신참 때 무례한 승객을 연이어 만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긴 후배는 자기가 허술해보여서 매번 타깃이 됐다고 확신했습니다. 코랄 립스틱이 다크 레드로 바뀌고 자연미 눈썹이 포청전 눈썹으로 변했습니다. 후배가 서비스 정신 대신 참전군의 결기로 승객들을 대하기 시작하자 비행마다 마찰이 일었습니다.
“언니 저는요, 유니폼 입고 집을 나설 때 주문을 걸어요. ‘나는 일하는 나로 변신했다. 진짜 나는 집에 두고 간다. 나는 강철 멘탈이다. 건드리면 네들 손해!’ 막 중얼댄다니까요. 전처럼 뭘 몰라서 순진하게 당하지는 않으려고요.”
비행 전과 후가 지킬과 하이드를 닮아기는 후배가 립스틱을 바꿀 무렵 들려준 얘기가 그날 비행 중에 떠올랐습니다.
후배는 자신이 당차게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혼자가 되었습니다. 눈가에 그늘은 늘고 주변에 사람은 줄었습니다. 한동네에 살며 알게 된 그는 퍼주기 좋아하고 세심했지만 유독 괴팍한 모습만 봐온 동료들은 후배를 피해다녔습니다. 장거리 비행을 함께 가지 않으려고 스케줄을 바꾸거나 병가를 불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기내식 나르는 투사가 아닌 유머와 붙임성 있는 후배의 다른 모습은 비밀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 숨겨둔 자신이 세상과 터놓고 지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나의 재능, 고민, 장단점, 취향, 숨은 매력. 내가 누군지 모르는 타인들과 부대끼는 세상. 아무리 바삐 살아가도 가슴은 허허벌판처럼 스산할지 모릅니다. 살아남으려고 쏘다니지만 환대받는 느낌은 들지 않고 불쑥 소외감이 찾아들지도 모릅니다. 후배는 누가 묻기도 전에 ‘친구는 필요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카페 앞을 지날 때마다 느려지던 걸음과 화기애애 대화 중인 테이블에 머물던 시선으로 후배의 속마음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큰 저도 다시는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날들이 많았습니다. 헛점이 보이지 않게 이중 잠금창에 암막 커튼을 달고 경계 태세를 갖췄습니다. 날 선 눈매와 말투로 선제공격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상처로 갈라진 마음이 산산조각나는 계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거리두기 얼리어답터가 되었습니다. 나를 보호할 칼과 방패는 상처 밖으로 행군할 용기를 주었지만 마음을 주고 받는 삶을 위해 떨쳐야 될 버거운 방해물이 되었습니다.
안전하려고 임시로 그은 선을 제때 지우지 않으면 삶의 흐름을 막는 저지선이 돼버립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혼자만의 시간은 다시 일어설 기운을 채워주지만, 기약없이 지속된다면 안전은 고립으로 퇴색하고 맙니다. 후벼파는 타인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면 조용하지만 닫은 채로 놔두면 나를 향한 친절한 말도 놓치고 살게 됩니다. 창문을 닫으면 소음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봄바람과 햇살과 밤의 공기도 내게 와닿지 못합니다. 상처주는 사람을 없애려고 잠근 마음의 문은 나를 찾아온 귀인의 통로도 차단해버립니다.
쓸모있던 리소스가 옥죄는 리스크로 변했다면 새로고침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을 상처를 막는다고 잔뜩 힘주고 지내던 시절, 저지선 안팍을 둘러보았습니다. 웅크리고 있는 사이 지나버린 기회와, 되돌릴 수 없게 된 일들과,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고 보낸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빗장을 걸고 마음의 불도 끈 채 어둠에 격리된 건 상처준 사람들이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안전하고 싶었지만 아픈 기억을 안고 독방에 남으니 삶에서 자유가 줄어들고 불안이 늘었습니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구나.’ 삶이 내미는 결론을 인정하고 리셋 버튼을 눌렀습니다.
‘지구별이 악당들만 사는 행성일 리가 없잖아? 감동 실화, 찡한 미담이 넘쳐난다고. 아니면 지구는 일찌감치 종말을 맞았을 테지. 세상이 지속가능한 건 남을 돕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위로해주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 남을 이끌어주는 사람, 병을 고치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 마지막까지 헌신하는 사람,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인 거야. 그래, 만나자.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보자.’
삶에 등장하면 좋겠다고 그려온 장면들을 현실에서 만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고, 먼저 믿고,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연약한 마음을 지키려던 호신술이 연약한 몸부림이 돼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저지선을 걷어내고 사람에게 다가서자 종료가 아득하던 거리두기의 막이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