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기 좋은 취미를 찾는 지인에게 등산을 추천했더니 바로 등산에 관한 책과 보온병을 구입했습니다. 한창 단풍철이라 얼마 뒤 만났을 때 어느 산이 멋있냐고 물어봤습니다.
“호젓할 줄 알았는데 날씨 좋은 날은 저만 산에 가는 게 아니더군요. 온통 북적대서 저랑은 안 맞는 거 같아요. 등산말고 뭐가 좋을까요?”
지인이 힙합을 즐겨듣기에 방송댄스를 권했습니다. 유효기간이 다 돼가는 ‘오픈기념 70% 할인 쿠폰’을 지갑에서 꺼내주며 수업 소감을 부탁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쌤도 친절하게 잘 가르치세요. 근데 춤도 유연한 사람이 춰야 봐주죠. 저는 관절이 목각인형 수준이라 거울 보는 내내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참. 도저히 빠릿빠릿 따라가질 못 하겠네요. 그냥 저녁에 피트니스나 다니려고요.”
등산도 춤도 안 맞으면 운동은 잘 되는지 물었더니 트레드밀에서 내려서다 발목을 비끗한 후로 쉬고 있다는 문자가 돌아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지인은 등록한 독서모임에도 첫날 이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안 끌리는 책만 선정됐다며 시무룩하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삶에는 단번에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이들과 낯선 장소에서 시작하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배우고 적응하려면 시간이 들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데 인색합니다. 한번에 알아차리고 척척 해내지 못하는 나를 보는 순간 야멸차게 다음 기회를 빼앗아버립니다. 처음부터 무리한 기준을 잡아놓고 필요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건 나를 해치는 괴롭힘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우리가 포기하는 일들을 보면 남이 아닌 자신의 조바심에 놔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잘 하게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 새로운 장소에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 어떤 일에 대한 안목을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 서툰 시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서툰 포기로 이어질수록 후회스런 일들도 삶에 늘어납니다.
‘그때 계속 밀고 나갈 걸.’ ‘좀더 차근차근 해볼 걸.’ ‘나만 못하는 거 아니었는데 몇번 더 다녀볼 걸….’ 시작한 일들이 보람과 재미가 되는 양분같은 시간을 주지 않는 건, 저녁에 심은 씨앗이 밤새 싹트지 않았다고 아침에 파헤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치어리더가 돼서 응원하지 않으면 힘겨운 일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입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세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마침내 망설임을 떨치고 첫 걸음 뗀 나를 힘껏 칭찬하고 나아가도 뒤늦지 않습니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이들과 비교하며 매번 글렀다고 손을 털어버리면 내 능력과 재주는 돋아날 틈도 없이 사그라들고 맙니다.
미숙함에 시간과 관심을 더하면 재능이 될 수 있습니다. 나다움이 빛나는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자유롭게 살지 못 하면 세상에도 손실이 큽니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불행의 총량도 늘어나 세상은 더욱 살기 험한 곳이 될 테니까요.
성에 차지 않는 자신을 면박주고 자책한다고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남이 나에게 하면 가슴 아픈 행동으로 자신을 상처주지 맙시다. 다시 해보려고 마음을 먹는 나. 어렵게 용기를 내고 정면돌파하는 나. 몇번이고 손가락질 당했지만 눈물콧물 훔치며 다시 일어서는 나. 그런 나를 누가 다독여주길 기다리는 대신 ‘할 수 있어! 믿어줄게!’ 거울 속 나를 향해 가장 든든한 눈빛으로 웃어주어야 합니다. 나를 믿는 마음의 불씨를 내 안에 키울수록 두려움을 태워버릴 순간도 앞당겨집니다.
처한 상황이 힘들다고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자동 낙인찍지 말아야 합니다. 힘듦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외항사를 그만두고 코칭스쿨에 다닐 때 영어로 수업을 듣고 시험에 코칭실기를 보았습니다. 전 세계 학생들의 다양한 억양이 섞인 말을 알아듣고 토론과 실기를 보는 스트레스가 도를 넘을 때는 앉아만 있어도 주르륵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몇 주 과정만 들으면 자격증 주는 학원들도 많고 실기가 없는 곳도 많다는대 3년 동안 미국에서 하는 원격수업을 듣느라 사서 고생을 하는지 후회막심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보니 그때 흘린 눈물은 운동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비슷한 거였지, 불행의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힘듦이 불행이라면 올림픽 메달리스트만큼 불행한 이들도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힘듦은 불행과 동의어라기보다 자아실현, 성취, 삶의 의미에 다가가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보람된 일, 남을 돌보는 일, 결과가 불확실한 일, 인내가 필요한 일,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일. 많은 일들이 힘들고, 때로는 외롭기까지 합니다.
이직을 시도하며 갖은 건강 문제에 시달리던 저를 힘들고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들어도 견뎌야 될 이유를 만나자, 힘듦과 불행이 수술에 성공한 샴쌍둥이처럼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려고 코칭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커리어보다는 저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금단증세로 집중력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손을 떨며 라이터를 뒤지는 니코틴 의존자로 사는 이상, 도움이 절실한 결정적 순간에 힘을 더하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담배 피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코칭 세션을 급히 마무리하고, 참가자를 위한 시설보다 흡연에 편한 곳을 세미나 장소로 우선시하는 경우를 본 것도 금연 결정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금연과 치유에 성공해야 될 목적이 분명해지니 상황은 같은데 함부로 불행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이 터널을 빠져나가야 될 이유가 명확하지 않을 때 ‘나는 힘들어서 불행하다.’는 생각에 동의했던 것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신호등을 마주칩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면 보행자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운전자는 시동을 끄고 운전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신호등 아래가 목적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 길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빨간불은 ‘잠시 숨을 고르세요.’ 신호를 보냈을 뿐, 목적지를 포기하라는 엄포를 놓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삶의 기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황급히 포기를 떠올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빨간불 너머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최종 목적지. 그곳에 가야 할 나만의 이유를 가슴에 품고 완주하는 기쁨이 우리를 맞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