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꽃길에서 장애물 넘는 리추얼

by 알케미걸



‘내가 담배를 안 피우게 됐구나!’ 문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늑한 카페에서 커피잔을 들고 흡연을 즐길 가능성이 줄어든 요즘은 더 마음이 놓입니다. 금연에 도전한다는 공개 선언을 하기도 민망하게 수년 간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금연만은 이번 생에 안 이뤄질 꿈인가보다.’ 지쳐 포기한 적이 수십 번이었습니다.


다이어트 실패가 반복될수록 다이어트 전보다 체중이 불어나듯이 금연 실패를 반복하는 동안 흡연량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하루 열 개비에서 몇 보루씩 사다 쌓아놓고 피워대는 메가골초로 등극하고 말았습니다.

섬뜩한 경고 문구와 손상된 인체 사진도 공포를 자극하지 못했습니다. 바닥을 맴돌던 제 자존감은 건강 따위를 우선시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가지 유해물질에 수십 가지 발암물질을 곁들였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갈비뼈를 뒤흔드는 기침과 통증이 악화되면 간헐적 두려움을 느낄 뿐, 그 모든 해로움에서 놓여날 자유를 탐내지 않았습니다.


흡연없는 삶. 수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저도 체험한 삶이지만, 그 시공간에 재진입하는 건 뛰쳐나올 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환골탈태. 누가 봐도 완전 딴 사람이 됐다 싶게 변해야 가능한 일들 중 하나가 금연이었습니다. 저도 생활 전반을 바꾼 후에야 마지막 담배를 반도 안 피우고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금연 계획을 일기장에 적는 시작이 성공의 반은 아니었습니다. 흡연을 돕는 최적의 환경, 흡연형 대인관계, 흡연형 사고방식, 흡연형 동선은 금연에 출사표를 던진 순간 모조리 결투 상대로 돌변했습니다. 늘 어울리는 사람들과 아지트에 앉아있다 피워물고 실패.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에 흡연 라운지 앞을 지나다 들어가서 실패. 커피를 내리다 니코틴+카페인 조합에 무릎 꿇어서 실패. ‘그래도 너밖에 없다….’ 심약할 때 의지해서 실패.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를 아무리 존경한들 그들의 실패 횟수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흡연없는 삶은 흡연을 부추기는 모든 것과 갈라설 때 행복한 지속이 가능하다는 걸 말이지요. 그런 이별의 과정은 큰 괴로움이었습니다. 변심한 제가 못마땅하긴 주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금단증세냐? 얼굴 좀 펴라.” “무슨 고민이길래 혼자 심각하니?” “피곤하면 가서 쉬어. 컨디션 좋은 날 만나자.” 걱정과 핀잔이 섞인 말들을 흘려넘기는 사이 피차 연락을 안 하는 날이 다가오자 일상에서 마주치는 얼굴들 거의가 교체되었습니다.




운동, 새벽 기상, 퇴사, 책쓰기, 해외취업.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할 때 우리는 장애물과 마주칩니다. 미리 준비해서 탈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뜻밖에 마주쳐 고전하는 사태도 벌어집니다. 장애물로 봤는데 기회를 주는 일도 생기지요. 슬쩍 피해가고 싶은데 꼼짝 못 하고 진검승부를 펼치게 만드는 장애물도 있습니다.

쉽게 되는 일은 있어도 저절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누워서 떡을 먹어도 수많은 근육들이 협조해야 맛을 보고 삼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바로 백기를 들 때가 있습니다. 이미 심신이 녹초가 돼있을 때는 장애물이 주차 방지턱 높이만 돼도 버겁기 짝이 없습니다. 왜 방지턱이 있냐는 푸념에 남은 기운을 써버립니다.

“저런 길에 발 들이지 않길 다행이야. 꽃길은 고사하고 떡하니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잖아! 그러니 가지 않은 길로 남은 거겠지. 이유가 다 있었다니까!”


목표 달성으로 가는 길이 벚꽃잎 흩날리는 설렘의 꽃길이라면 저도 좋겠습니다. 현실은 벚꽃낭만의 연속이 아니란 걸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터득하며 살아갑니다.

운동선수는 부상과 패배의 아픔을 안고 경기장으로 돌아갑니다. 흥행에 참패한 배우는 다른 배역을 따기 위해 오디션에 도전합니다. 면접에 떨어진 취준생은 하소연할 틈도 없이 이력서를 돌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모르지만 소망 하나 붙들고 땀 흘리는 이들도 지금 어디선가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쉬운 길이 최고라면 장애물 경기처럼 미련한 이벤트도 없습니다. 한두 개도 아닌 허들을 넘고 또 넘으니까요. 허들이 왜 저리 많으냐, 높기는 왜 저리 높으냐, 혹시 넘어지면 책임은 누가 지는 거냐. 재고 따지느라 출발 신호를 놓치면 기록을 세워 메달을 따기는커녕 완주도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고된 훈련마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인생 트랙에 놓인 장애물은 방해물이 아닌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앞길을 막고 훼방을 놓는다며 스트레스로 낙심하면 출발선을 박차고 나설 동력을 잃고 맙니다. 하지만 장애물 하나를 넘을 때마다 결승선에 다가간 걸 기억하면 달리는 자신을 응원하게 됩니다.



몇 년 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견뎌낸 훈련의 강도와 시간이 한눈에 와닿는 이미지였습니다. 두 발이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공연을 본 이들의 삶에 감명깊은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마디마디 뼈가 튀어나오고 발톱 크기 굳은 살이 불거진 두 발. 바라볼수록 희귀한 꽃처럼 보였습니다.

뼈마디가 뒤틀리고 피가 맺힐 때 토슈즈를 포기했다면 피어날 수 없었을 두 송이 발.



feet.jpg 이미지 : jtbc 포토뉴스



“오늘의 행복”


두 송이 행복이 꽃말을 들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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