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를 사랑하는 리추얼

by 알케미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온 비비안 리를 닮은 외모. 쾌활한 성격. 네 아이를 둔 엄마. 제자에게 손편지 쓰는 교사.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인상깊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중학교 첫 담임 선생님은 제 눈에 드라마 캐릭터로 보였습니다. 누구든 미소짓게 만드는 선생님은 엔도르핀을 솟게 하는 착한 마녀였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저에게 관심을 보이다니, 무척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관심이 유지될수록 불편했습니다. ‘보는 눈도 없으신가보네. 예뻐할 애들도 많은데 나 같은 애를 좋아하다니. 내가 얼마나 이상한 앤지 알면 정신이 번쩍 들 거야.’



중학생이 되어 처음 듣는 성교육 수업. 드르륵 문을 열고 담임이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어떤 부끄러운 얘기가 나올지 긴장이 돼서 ‘얼굴만 빨개지지 말자.’ 무심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예 표정관리가 불가능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청소년 시절 가족에게 겪은 성추행 경험이었습니다. 부반장다운 착실함을 유지한답시고 안간힘을 썼지만 온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잔근육 하나만 움찔해도 비밀이 탄로날까봐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를 오가는 괴물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이 겪은 일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만에 하나 당할지 모를 일’이었겠지만 저에겐 ‘몇 년 전부터 겪은 일’이었습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도 못 하고 충격에 얼어붙어 지냈습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나이였으니까요.




저희 집이 가족 드라마를 찍었다면 제 역할은 학대받는 아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 나와보니 그렇게 설정돼있었습니다. 제 몸은 엄마의 손길을 오로지 매질로 기억합니다. 형제 중에 맞는 아이는 저뿐이었고 친구들 중에도 맞는 아이를 보지 못 했습니다. ‘나는 아무리 맞아도 나아질 수 없는 구제불능이구나. 정말 괴물이 맞아.’ 단정지어버렸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런 결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반 아이들이 드라큘라 얘기를 하면서 떠들고 있었습니다. “혈액형마다 피는 맛이 다를까?” “피를 먹으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애?” 그런데 저는 맞아서 피가 날 때 옷에 묻으면 더 맞을까봐 재빨리 혀로 핥아본 적이 많아서 피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드라큘라보다 더 이상했습니다. “네들은 피맛을 모르니? 안 먹어봤단 말야? 왜?” 제가 놀란 눈으로 되묻자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더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거의 매일 1등으로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불타는 학구열 때문이 아니라, 학교는 유일한 쉼터였기 때문입니다. 패잔병같은 몸과 마음에 교실은 야전병원만큼 고마운 장소였습니다. 마당에 무성한 개나리, 진달래가 분수처럼 뻗어나고 담장에 장미 넝쿨이 탐스러운 집. 장미 넝쿨 아래 서성이며 그날은 얼마나 가시처럼 아픈 일을 겪게 될지 걱정겸 상상으로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초인종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방학은 길디 긴 극기훈련이었습니다. ‘죽으면 고생이 끝날지도 몰라….’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 중에 극단적 선택이 솟아날 구멍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비밀을 가슴에 품고 입학한 중학교에서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제 상황을 알게 된 선생님은 집에 연락해 개입하려 했고 그런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건넸습니다. 체벌의 이름으로 삭발을 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선생님이 안전그물이 되어 받쳐주었습니다.



scarlet-ohara.jpg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가 추락할 위치를 알고 출동한 헬기처럼 등장한 선생님은 2학년 겨울 함박눈 내리는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히든카드로 쥐고 있던 극단적 선택을 버리고 선생님이 성교육 시간에 들려준 이야기를 바통처럼 쥐었습니다. 제가 겪는 아픔도 훗날 어른이 되어 선생님처럼 돌아볼 수 있다면… 닥쳐올 날들을 한번 뚫고 지나가보자 싶었습니다.




인생은 꽃길과 절벽이 뒤죽박죽 섞인 난코스입니다. 슬프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만 한다면 세상은 가식의 무대가 돼버립니다. 상처도 진심도 마음도 나눌 필요가 없는 가면극같은 생활에서 하차하려면 의지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고단하고 아픈지 티를 내거나 솔직하게 드러내면 질타를 받기 때문입니다.

“무슨 자랑이라고 떠벌이고 그래!” “다 지난 과거를 왜 들추는 거지?” “당신만 힘든 거 아녜요.” “듣는 사람도 괴로운 상처는 보이지 마세요.” “그래서 지금 어쩌라는 거죠?!”


아무도 고난을 말할 수 없다면 세상에는 빅터 프랭클도 헬렌 켈러도 안네의 일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140개국에서 방영된 토크쇼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나눈 오프라 윈프리는 수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가능성과 새출발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상처가 오늘의 삶을 곪기지 않게 아픈 곳을 다스리고 돌봅니다. 상처가 아물고 생살이 돋아나 회복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됐고 무엇이 통증과 재발을 막았는지 고통받는 사람과 나누고 산다면 세상은 우리가 상처로 무너지지 않고 상처로 이어지는 연대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살아있을까.’ 미래를 그릴 수 없었던 제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돌아보는 어른을 목격한 것은, 스스로가 괴물이라는 눈먼 믿음을 언러닝 Unlearning 하는 첫 수업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아픈 경험을 치부로 보고 숨겼다면 그 비밀은 선생님을 수치의 창살 안에 가뒀을 것입니다. 진심어린 스토리텔링의 힘은 벽을 허물고 공감의 물꼬를 터서 마음을 이어줍니다. 서로 나눈 이야기를 딛고 일어섰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너와 내가 정직한 슬픔을 나누면 우리가 됩니다. 정직한 슬픔을 나누고 사는 기쁨은 무엇이든 헤쳐나갈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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