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밀의 승강장 9와 3/4
해리 포터는 킹스 크로스역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 9와 3/4번 승강장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갑니다. 이모 가족에게 갖은 구박을 당하며 계단 아래 벽장에서 지내는 해리의 삶은 호그와트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하면 천지 차이가 납니다. 특급열차에 오르는 순간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어떤 시련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을 접하는 시간도 호그와트로 가는 등굣길처럼 삶에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은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중대한 기로에서 결정적 단서를 줍니다.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사람에게 받지 못한 위로와 격려로 치유를 도울 때도 있습니다.
외국 생활에 적응도 하기 전에 저를 덮쳐온 여러 증상들. 이름도 모른 채 고생하다 마주친 책 한권이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를 전해준 덕에 위태로운 고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 진열된 책 가운데 끌리는 표지가 있어 집어들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쓴 베스트셀러였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렵던 고충들이 제 몸 속을 들여다본듯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악몽에 비명을 지르다 착한 마녀의 마법으로 깨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벅찬 마음에 책을 품에 끌어안았습니다. 제가 어딘가 나약해져서 이름모를 병에 시달린다고 자책해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발달로 정보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이라 실마리를 찾은 그 순간이 더 각별했습니다.
정보를 얻은 기쁨보다 깊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우리 곁에 책이 나타난 이후 도움받고 삶을 바꾼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니 세상은 서로 돕는 곳이라는 증거를 본듯 안심이 들었습니다.
책과 일상의 콜라보 feat. 인생 시너지
한 달 앞을 내다보기 힘들고 민첩한 변화가 요구될수록 책이라는 리소스가 요긴해집니다. 계발서를 끼고 살아도 나아진 게 없다는 경우를 보면 읽는 양에 비해서 실제 적용하는 양이 무척 빈약합니다. 책의 도움으로 상황이 개선된 사람은 책에서 본 내용을 실생활에 끌어다 쓰는 횟수도 잦고 속도도 빠릅니다. 바로 해보고, 시행착오를 저질러도 멈추지 않는 과정이 시너지를 내다보니 독서량 만큼 생활 전반이 나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일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뀌는 것도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우리가 서핑 매뉴얼을 꿰고 있어도 파도를 잘 타게 되지는 않습니다. 운전하는 법만 외워서 고속도로를 달릴 수는 없지요. 손에 넣은 정보와 몸소 해보는 실천이 어깨동무하고 한발씩 나아갈수록 막연한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실행근력이 증가합니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레시피만 읽고 요리는 안 할 때와 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실력이 쌓이지 않아요. 칼질, 불조절, 간 맞추기를 체험하는 주방에서 요리 실력이 좋아지지, 조리 순서를 달달 외운다고 좋아지지 않습니다. 밑줄 그은 아이디어와 노하우는 씨앗과 같습니다. 일상의 화분에 심어서 실행이란 양분을 듬뿍 주면 튼실한 결실을 두 손 가득 담을 수 있습니다.
뉴욕에 살던 줄리 파웰은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에 나온 524개의 레시피를 365일 안에 만들기로 결심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커리어, 인간관계, 결혼생활 속 좌충우돌 위기에도 불구하고 챌린지를 진행하는 동안 줄리의 블로그가 주목을 받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2009년 개봉한 “줄리 & 줄리아”는 에이미 애덤스와 메릴 스트립이 출연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줄리 파웰이 요리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면 영화와 출간으로 이어진 인생 장면들은 탄생할 수 없었을 거예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인상에 남은 한 가지를 일상에 풀어내는 움직임이 중요한 거죠. 행동하는 나의 힘이 어떤 시너지를 발휘해 깜짝 선물을 가져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책과 함께 하이파이브
힘들 때 곁에 있는 존재가 절친이라면 저의 절친은 책이 됩니다. 관심을 보이든 말든 곁을 지켰고 사람의 온기 한줌이 급할 때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갖은 학대와 폭력을 경험한 열 살 무렵. 살아야 될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절망을 떨치려고 책을 붙잡았습니다. 한번도 손이 가지 않던 위인전이었습니다.
링컨, 헬렌 켈러, 에디슨, 베토벤. 읽을수록 신기했습니다. 보나마나 훌륭하다는 칭찬 밖에 없을 거라며 흘겨보던 책에게 위로와 충격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위인전의 인물들도 어려서 고생을 했고, 외롭고 두려운 순간들을 거쳤습니다. 어른도 이겨내기 힘든 고난 앞에 스스로 일어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나말고 힘든 어린이들이 있었구나….’ 마음을 뒤덮은 새카만 어둠 한켠이 열리고 한가닥 빛이 새어들었습니다.
런던에서 마주친 책들과 어린 날의 위인전. 책은 삶의 고비에서 수호천사처럼 나타나 힘을 주고 혼자인 저에게 ‘우리’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비행직의 막을 내리고 생소한 코칭의 세계로 뛰어들 동력이 된 루이스 헤이의 긍정 확언과 웨인 다이어의 마음단련법도 책이 놔준 징검다리였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설 용기를 일깨워준 그들의 생전에 눈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전한 것도 책이 열어준 꽃길에서 얻은 기회였습니다.
인연을 만드는 책의 기적은 놀랍습니다. 홍콩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알게 된 친구 아니타가 암투병 끝에 임사체험과 완전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하와이에 살던 웨인 다이어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는 아니타의 치유가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서 아니타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아니타의 첫 책 <Dying to be me>는 루이스 헤이의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45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니타의 책 두 권이 독자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대형서점에서 한 여성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오더니 책을 낚아채며 말했습니다. “이거 쳐다본다고 뭐가 달라져?” 머쓱해진 표정으로 친구를 따라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쳐다본다고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메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포만감이 들 리도, 셰프로 둔갑할 리도 없고요. 그러니 쳐다만보지 말고 손 내밀어 붙드세요. 당신을 위해 체험을 털어놓고, 비법을 공개하고, 미로를 안내하는 이들이 책 속에서 내미는 손을 놓치지 말고 맞잡으세요. 함께 길을 가다보면 알게 됩니다. 어둠을 혼자 헤쳐나가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 아니타 무르자니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