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봉을 휘두르는 리추얼

"엑스펙토 패트로눔!"

by 알케미걸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디멘터는 영혼을 빨아들이는 마법 생물입니다. 생활고에 허덕이며 원고를 쓰던 시절 조앤 롤링은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디멘터는 당시 경험에서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디멘터가 다가오면 냉랭한 기운이 돌면서 행복은 아득히 멀어집니다. 불쾌하고 끔찍한 기억들만 떠올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지요. 악명 높은 ‘디멘터의 키스’를 당하는 날엔 영혼이 빨려나가 산송장과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마음을 제대로 돌보며 살지 않으면 우리도 디멘터에 제압 당한 듯 시달리게 됩니다. 저도 디멘터의 손아귀에서 꼼짝 못하는 상태로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눅눅한 이불같은 기운에 짓눌려 늪에 뒹굴어도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 했습니다.


일단, 창문이 365일 잠겨있었습니다. 수면장애로 밤낮이 따로 없는 마당에 정신 건강에 좋은 일조권마저 거부하는 드라큘라였습니다. 창밖에 펼쳐진 수려한 경관에 블라인드를 올리지 않는 무관심으로 화답했습니다. 에너지원은 담배, 커피, 콜라. 음식 천국 홍콩에서 살면서 하루 종일 뭘 먹고 살았는지 기억나는 음식이 없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운동량은 제로. 신발장 속 운동화 개수도 제로. 외출복, 평상복, 잠옷이 동일한 TPO 제로 패션을 고수했습니다.

꿈이든 생시든 무서운 건 못 참지만 엽기 호러물에 집착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섭습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음산하고 잔인한 영화들을 새벽 3시에 떨면서 봤습니다. 악몽과 가위 눌림에 시달리느라 열악한 수면 환경에 가혹한 취미를 추가하다니.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황폐한 의식주로 건강한 심신을 기대했으니, 욕심을 넘어 기적을 탐낸 셈입니다. 난생 처음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일에 적응하는 데 이로운 생활습관이 전혀 없었습니다.

‘컨디션이 바닥이니 오늘도 망쳤네.’ ‘주변이 안 받쳐주니 어쩌겠어. 내 주위엔 롤모델이 없다고!’ ‘그냥 다 싫다 싫어….’ 디멘터의 어두운 확언에 귀기울이는 동안 블라인드 너머 세상의 풍경이 변하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들도 떠났습니다.




“엑스펙토 패트로눔!”

해리는 마술봉을 횃불처럼 들어올립니다. 주문을 외칠 때 해리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야 합니다. 행복의 기운이 막강해야 동물 형상의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서 디멘터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잃은 해리는 혼신을 다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패트로누스를 불러내 디멘터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내 삶의 디멘터를 몰아낼 사람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해리가 행복한 기억으로 디멘터를 물리치듯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야 하는 것도 말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어둠의 습관들을 쉽게 떨쳐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장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끌려 디멘터의 편에 머뭅니다. 활력을 주는 대신 남은 기운마저 바닥내는 행동을 일삼으면 디멘터의 세력이 늘어나 훗날 내가 헤어나올 수렁만 깊어집니다.

히어로가 나타나리라 믿은 건 아니지만, 왜 인생은 제가 힘들수록 자발성을 요구하는 건지 화를 내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1초도 돌려받을 수 없는 시간마저 디멘터 수중에 넘겨준 셈이 되었습니다.


디멘터를 몰아낼 긍정을 떠올리기 어려웠던 건 완벽한 추억, 감동의 순간, 찬란한 경험이 있어야 된다는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왕관처럼 반짝이는 장면이라야 행복이고 긍정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눈부신 메가급 행복이 내 삶에 없다는 생각에 휩쓸리는 동안 제 곁을 둘러싼 꼬마전구같은 행복을 알알이 놓치고 있었습니다. 보석같은 행복이 없다는 불만보다, 이만해서 다행스런 일들에 눈을 돌렸다면 더 일찍 제 삶에 패트로누스를 동원했을 것입니다.

‘학대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데 무사해서 다행이다.’ ‘병가를 내도 눈치주는 상관이 없어서 다행이다.’ ‘비행할 때 다친 고막이 나아서 다행이다.’ ‘옆집에 조용한 이웃이 살아서 다행이다.’ ‘집에 고장난 물건이 없어서 다행이다.’ ‘세면대 물이 잘 내려가서 다행이다.’ ‘씻을 물 마실 물 다 충분해서 다행이다.’ ‘자판을 두드릴 열 손가락이 있어 다행이다.’




학교에 가던 열 살 소녀가 사라졌습니다. 주차된 차에 짐짝처럼 던져진 소녀는 납치범의 지하 감옥에서 3,096일을 보낸 뒤 탈출했습니다. 8년이 지나 살아 돌아온 소녀의 이름은 나타샤 캄푸쉬. 납치범 볼프강 프리클로필은 나타샤가 탈출한 날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나타샤가 노예처럼 견뎌낸 감금 생활이 자서전과 영화를 통해 드러나자 세상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결코 죽음이 멀지 않았던 순간들 속에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나타샤는 해리처럼 패트로누스를 부르는 마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5평 감옥에서 잠들 때마다 나타샤는 손바닥을 벽에 대고 상상에 빠졌습니다. 집에 있는 가구와 인형과 커튼과 감돌던 냄새를 떠올렸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차를 끓여다 주며 자기를 깨우는 장면이 어차피 다가올 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손을 벽에 대고 집을 떠올리며 잠드는 습관은 탈출하기로 자신과 매일 약속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096일이 지나고 18세가 된 나타샤는 탈출에 성공한 뒤 집에 돌아가 자기 방 침대에 누웠습니다. 벽으로 손을 가져가 겁에 질린 열 살 나타샤에게 말했습니다. ‘I’m here again. You see, it worked.’




마술봉을 휘둘렀다고 믿었는데 손에 쥔 게 채찍인 걸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삶은 우리가 무엇을 휘두르고 사는지 현실로 보여줍니다.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건강이 무너지고, 두런두런 대화 대신 침묵만 남고, 여운있는 만남이 자취를 감췄다면 우리는 채찍을 휘둘러 디멘터를 자처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무엇이 떠나서 외롭고, 무엇이 남아서 괴로운지 내 하루하루를 눈여겨 보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손에 붙들면 좋을지 알게 됩니다.

멀티태스킹은 환상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태도로 매순간을 마주합니다. 태도를 선택해주세요. 마술봉을 휘두를지 채찍을 휘두를지.


“엑스펙토 패트로눔!” vs. 디멘터와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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