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을 조부모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물을 흘리고, 몸을 꼼지락대고, 물건을 깨뜨리면 나뭇가지 여러 개를 꼬아서 만든 회초리로 매를 맞았습니다. 오프라가 세 살 때 매질로 살갖이 벗겨지고 피가 원피스에 묻어나자 할머니는 손녀를 더 세게 때렸습니다.
맞아서 터진 상처에서 피가 나면 옷이나 이불에 묻을까봐 걱정하고, 얼굴을 맞을 때 볼 안쪽이 치아와 부딪혀 입속에 고인 피를 삼켰던 저는 오프라의 어린 시절에 한숨을 쉬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었습니다. 오프라는 할머니와 전혀 딴판인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줄 수도 없어.” “부모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나도 사랑을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이런 생각이 난무하지만, 세상에는 열악한 배경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 수많은 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환경의 힘은 강하지만 우리가 넘지 못할 허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환경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루이스 헤이 등 세계 1%가 존경한다는 웨인 다이어도 고아원에서 자란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컸지만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성장과 치유를 돕는 데 헌신을 다했습니다. 오프라의 성장스토리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아픔에 시달려온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30여 권의 저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치유와 긍정 확언 전문가 루이스 헤이의 부모도 18개월 딸을 두고 헤어졌습니다. 다섯 살에 성폭행을 당한 이후 계부의 학대, 학업 중단, 가출, 이혼, 암 투병 등 시련이 줄을 이었지만 폭력을 당했기에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에 자기 삶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폭력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저는 친절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언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남자친구를 구타하는 사람이 돼있었습니다. 언어폭력은 폭력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상대가 마땅히 들어야 될 입바른 소리라고 믿었으니까요. 상처가 났던 제가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받아본 제가 고통을 주고 있었습니다. 타인에게 아픔의 이유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자살을 몇 번이나 시도해놓고 고작 이게 새로운 인생이란 말인가. 아픔을 당한 대로 주고 살 수밖에 없다면 내 앞날은 뻔한 거잖아. 그럼 남은 날들은 대체 왜 살아야 되지?’
얼마나 길지는 알 수 없지만 남은 삶마저 폭력에 갖다바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당한 폭력을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퍼뜨리지 않는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본 제 일상 곳곳에 폭력적 생활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줄담배를 피워서 온몸을 공격하고, 부실한 식생활로 남은 체력을 바닥내고, 시계가 필요없는 불규칙한 생활로 평온과 거리가 먼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웰빙을 주고 싶다면 제 안에서 넘치게 채워야 했습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기쁘게 나눔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먹고 입고 소비하는 동안 환경이나 다른 생명에 피해와 고통을 끼치는 일은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웰빙을 실천한다는 좋은 의도로 나부터 챙기기 시작해 나만 챙기는 상태로 굳어지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입니다. 의식주 모든 영역에 걸쳐 둘러보니 신경 쓸 일들이 너무 많아 망설여졌지만 제 모토대로 한 가지씩 바꾸기로 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해치는 모든 옷을 안 입기는 어렵지만 청바지를 안 사입는 건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당장 비건 패셔니스타로 거듭나진 못 해도 멸종위기 동물이나 뱀가죽이 들어간 제품부터 쓰지 않는 건 가능했습니다.
악어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숨이 끊어지면 가방으로 탈바꿈해 진열대에 올려집니다. 악어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폭력에 프랑스 여배우 제인 버킨은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버킨백’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정식으로 요구할 때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악어가죽 수트가 세상 멋지다고 감탄하며 언젠가 재킷을 장만해 입어보리라 작정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악어가죽은 머스트해브아이템 목록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살다 제 명을 다하고 세상을 뜨는 대신 공장에서 죽어가는 동물들. 고통을 아는 그 눈빛이 가슴에 박혀 채식을 시도하며 생채식 셰프 과정을 밟았습니다.
실기를 위해 디톡스 주스 레시피를 구상하던 어느 날, 문득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레몬을 짜면 레몬즙이 나오고, 케일을 짜면 케일즙이 나오고, 비트를 짜면 비트즙이 나오는데 나를 짜면 대체 뭐가 나오려나?’
우리가 살다보면 마치 착즙기에 든 채소처럼 압박이 몰려오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럴 때 내 속에선 뭐가 튀어나올까. 어떤 본색이 드러날까. 나도 엄마처럼 폭력을 휘두를까. 두려움에 무너져버릴까. 몰랐던 숨은 힘이 발휘될까… 궁금했습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면목이라고 하니, 이왕이면 영양성분 튼실해서 도움되는 동료 인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내 마음이 지옥이라고 남의 마음도 지옥화해서 지옥의 영토를 넓히는 류의 환경오염도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제 몸과 정신이 기억하는 폭력이 상처를 입히고 어둠을 퍼뜨리면 준 대로 받는다는 진리에 따라 부메랑처럼 돌아온 불행이 제 삶을 부술 텐데, 그런 대참사는 저도 이제 그만 겪고 싶으니까요.
‘나는 지금 내 삶에 무엇을 더하는 사람인가? 나로 인해 세상에는 무엇이 늘어나는가? 위로인가 상처인가?’
몬스터의 시간을 지나온 자리에서 희망을 떠올리며 삶이 묻는 질문을 껴안고 리추얼 같은 순간들로 답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