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단점은 돌아옴이었습니다. 여행자의 여독 대신, 약간의 자유를 시식하고 회귀하는 탈출 실패자의 절망을 피하려고 아예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떠나는 건 불변의 버킷리스트 영순위 미션이었지만, 어설프게 급유턴하는 가출은 사절이었습니다.
돌아옴이 끔찍해서 휴가를 가지않을 뿐인데 가족애가 하늘을 찌르는 딸로 오해하는 상황도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학대받는 아이, 학대받는 청소년을 거쳐 학대받는 어른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한시도 자립을 잊지 않는 제 손에 하늘은 원웨이티켓을 쥐어주었습니다. 육로를 통한 가출 루트만 생각한 제 허를 찌르며 국경 너머로 날려보냈습니다.
신의 한 수가 쏘아올린 공처럼 홍콩으로 날아가 외항사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홍콩, 일본,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출신 동기들과 호텔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공간이동 초능력을 발휘한 듯 얼떨떨했습니다. 아침에 분명히 집에서 일어났는데 홍콩의 총총한 별들 아래서 창가 침대에 누워 잠들고 있었습니다.
“공짜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라서 선택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싶어요.” “봉사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비행을 하면서 승객을 도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심한 성격을 고치려면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되는데 외국에 나가면 그런 기회가 더 많을 거 같아서 이력서를 냈어요.” “홍콩에 사는 친구들이 많아서 오게 됐습니다.” “갇혀서 일하는 사무직보다 훨훨 날아다니면서 일하는 승무원이 부러워서 퇴사하고 도전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시간에 동기들은 해외취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은 비행일수가 쌓일수록 흐려졌습니다. 계절, 시차, 중력을 거스르며 수백 명을 돌보는 육체노동. 다양한 국적을 가진 고객들의 요구에 감동 서비스로 답하는 감정노동. 만만찮은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격한 노동은 비행사 광고 뒤에 숨은 신랄한 현실이었습니다.
사직서를 내는 동기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물품을 반납한 뒤 원웨이티켓을 든 동기들은 홍콩에 처음 도착한 날보다 스티커가 많아진 가방을 끌며 떠났습니다. 면접용 자기소개를 지우고 들려준 그들의 사연을 되새기며 배웅 나간 자리에 오래 서있곤 했습니다.
“사무직 월급으로 좋아하는 해외 여행 실컷 다니면서 무슨 수로 결혼자금을 모으겠어?. 여행하면서 월급, 수당 다 챙기는 길은 이게 최고지.” “집에서 경비를 댈 테니 학위를 따라고 몇 년째 괴롭히길래 외국으로 튄 거지 뭐.” “8년을 만난 약혼자랑 헤어졌는데 같은 나라에 있는 거 자체가 고문이더라고.” “아버지한테 평생 맞고 살아서 집이 너무 싫었는데 이 일도 고생을 참을 만큼 좋지는 않아!”
저마다의 지긋지긋함을 벗어나려고 오버 더 레인보우를 꿈꾼 우리들. 가출은 저 혼자만의 미션이 아니었습니다. 안쓰러움이 들었습니다. 무지개만 넘어가면 해결된다고 믿었던 일은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다른 문제로 불거졌습니다. 오즈로 떠난 모두가 도로시처럼 마법의 구두를 얻는 운명은 아닌가봅니다.
There’s no place like home! 동기 중 아무도 “집이 최고다!” 신바람 나게 면세품 쇼핑을 가득 실은 카트를 밀며 돌아가지 못 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빨간 택시와 전차가 스치듯 달리고, 치파오 차림의 이웃이 ‘조우 싼!’ 아침인사를 건네고, 골목마다 누군가는 향을 피우고, 매일 밤 야경의 축제가 열리는 쇼핑 천국. 어디를 봐도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온 물증이 차고 넘쳤습니다.
투쟁이 끝나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며 승리를 자축할 여유도 없이 우울과 공황장애가 쳐들어왔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평생 내가 깨야 될 알이 도데체 몇 개나 더 남은 거지?’ 피맺힌 부리로 간신히 알 밖으로 기어나와 마주친 거울 속에는 찬란한 불사조 대신 민둥머리 병아리가 쪼그리고 있었습니다. 갈망해온 자유를 만끽하긴커녕 빈약한 날개를 파들대며 병원을 전전하는 부실한 조류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안증세로 간단한 외출도 시련이 돼버린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왜 이 먼 데까지 힘들게 와서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지?’ 천신만고 끝에 파라다이스에 도달했어도 동굴에 널부러져 지낸다면 그처럼 허무한 엔딩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살아있으면 몸은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일 수 있으면 한 가지는 할 수 있겠지. 한 가지만 해보자. OK. 그럼 뭘 할지 하나만 정하자. 정한 거부터 해보자. 나머지는 하나를 한 다음에 생각하자. 할 수 있다. 왜? 나는 살아있으니까. 움직일 수 있으니까.
‘네 까짓 게 뭘 한다고! 다 소용없는 짓이야.’ 어린 시절부터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지만 ‘한 가지’만 계속 붙들었습니다. 저는 뭔가를 주고 싶었습니다. 내 안에도 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증거를 스스로 확인해야 붙들 희망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걸 주고 싶었습니다. 저처럼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 받는다면 뭐가 좋을까 생각해보니 꽃이란 답이 나왔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해놓고 실천을 미루다 센트럴에 있는 학원에 가는 날이 왔습니다. 컴퓨터 수업을 건너뛰고 싶었지만 죽은 사람처럼 살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나올 때 어지럽고 숨이 막히고 심장은 리듬을 무시한 채 널을 뛰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긴장 때문이 아니라 송장처럼 살기 싫은 제가 집에는 가지 않으려고 버틴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숨부터 쉬자. 맞아, 그거 하나는 할 수 있어. 숨쉬는 거 한 가지는 할 수 있어.’
손등에 흐른 땀을 옷에 문질러 닦았습니다. 손에 땀을 쥔다더니, 손바닥을 웅덩이 삼아 땀이 고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에 흘러들었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다고 믿는 제가 휘청대는 저를 부축해 한발 또 한발, 거리로 나갔습니다.
란콰이퐁에 도착하자, 미루던 결심이 떠올랐습니다. 저만치 앞에 언젠가 꽃을 사고 싶었던 꽃집이 보였습니다. 한발 또 한발. 한발 또 한발. 걸음마를 배우듯 꽃집까지 걸어서 장미 열 송이를 골랐습니다. 어린 시절 담장 아래서 보던 장미와 닮은 색이 눈에 띄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열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꽃을 주기로 했습니다.
“Hi! Would you like some flower?” “Hello, here’s some rose for you!” “Hey I’m giving out some flowers today. It’s a gift for you!” “Here’s free rose for you two!” 불금 저녁 란콰이퐁에서 꽃주기 퍼포먼스를 하게 될 줄 알았다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네 까짓 게 무슨!’ 몸이 기억하는 소리가 주문처럼 저를 주저앉힐 때마다 ‘한 가지는 할 수 있어. 자 보여주지!’ 대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날은 란콰이퐁에서 꽃주기 퍼포먼스를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