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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미걸 Apr 18. 2024

막다른 길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낮선 동네라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허둥대고 처음 가본 외국이라 지도를 손에 쥔 채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상하좌우를 살피느라 다리가 꼬여 휘청대다 발목이 삐끗할 때도 있습니다. 골목골목 꼼꼼히 뒤지는 피로가 쌓이고 짜증이 올라옵니다. 조급한 마음을 따라 눈도 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지름길, 편한 통로, 맞는 출구를 얼렁뚱땅 놓치고 지나버립니다.


여기는 아닌 거 같은데? 저렇게 생긴 데가 맞을 리가 없어. 딱 봐도 아닌데 뭘. 아이고 지친다, 이 길은 그냥 넘어가자. 어쨌든 가다보면 찾아지겠지.


지하철을 잘못 내리는 바람에 이름도 모르는 지역을 폭염 속에 쏘다닌 기억이 납니다. 휴대폰 밧데리도 떨어져 5분 거리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40분 넘게 갈팡질팡하다 눈에 익은 막다른 길을 만났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턱없이 지나 거의 체념한 상태로 터덜터덜 가로막은 벽을 향해 걸었습니다.



모든 문들 중 마지막 문

그렇지만 아직 한 번도

모든 문을 다 두드려본 적 없다

 

- 라이너 쿤체의 시 ‘자살’ 전문 -



손이 닿을 만큼 다가서니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고개만 돌리면 목적지로 이어지는 계단과 샛길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멀찍이 지나친 막다른 길이 가야할 장소로이끄는 가장 편리한 통로였다는 것을.


막다른 길을 마주칠 때마다 요즘은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막다른 길이 아닐 수도 있어.’ 호기심에 끝까지 걸어가서 고개를 돌리면 신기한 뒷골목이 펼쳐지곤 합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막다른 상황과 절망 앞에서 피나는 노력까지는 아니라도 고개를 돌려 한치 앞을 볼 만큼의 희망은 우리가 붙들고 살 수 있기를, 4월 하늘 아래 두 손을 모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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