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from Canada (11)
워털루-키치너-캠브리지-스트라트포드-런던- 그리고 파리다.
이 유럽의 다양한 나라들을 대표하는 동네들이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서로서로 이웃하고 있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유럽의 위성국가임을 자처하는 캐나다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남부 온타리오의 풍경이다. 워털루는 독일의 실용성 강한 전통을 계승한 워털루 공대가 있는 동네이고, 워털루 대학에서 10분 거리에 있던 키치너는 우리가 살던 동네 이름이다. 워털루는 나폴레옹이 연합군에 대패한 전투로 유명한 벨기에의 작은 타운의 이름인데, 또 그 앞마당에 딱 버티고 있는 트윈시티의 이름이 영국 장군 키치너라니... 역사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지명들이다.
아바가 불렀던 워~워~워~워~ 워털루의 선명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들어있긴 하지만, 차마 내가 워털루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의 주민이 되어 살게 될 거라고 상상을 못 하였었다. 그러나 누구에겐 노래 부르며 소망하는 일은 진실로 역사가 되더라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게 해 준 이름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우리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쉬임 없이 토끼와 당나귀 저녁을 주러 양배추와 당근을 싸들고 산책 나가곤 했던 동물원이 있었다. 동물원은 워털루 대학의 맞은 편 공원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인간의 형상을 갖추어가는 꼬맹이들에게는 심심할 겨를이 없는 복 받은 환경이었다. 사계절을 뛰어놀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과 정부에서 아낌없이 세금을 쏟아부어 주관하는 영유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일 년 내도록 운영되고 있었고, 트윈시티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있는 뮤지엄과 아트센터에서도 유아들을 위한 꽤나 진지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으므로 꼬마들에게는 매일매일이 흥분의 도가니였던 공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도시에서 자라온 나와 남편에겐 생활방식의 엄청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환경이기도 했었다. 생활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에 곤란을 겪는 어떤 이웃들은 네온 금단증상을 호소하며 주기적으로 대도시의 네온을 찾아 달려 나가기도 했었다. 과거의 생활을 잊어버린 우리는 그 반대로 더더욱 고색을 발하는 동네로 남하하여 저녁 산책을 하곤 했었다. 40여 분을 달리면 셰익스피어의 고향마을을 이름을 딴 그 도시에 닿았다.
스트라트포드의 공원 한가운데는 은빛으로 빛나는 셰익스피어의 동상이 언제나 그 멋진 대머리 반짝이며 망토를 거룩하게 두르고 서 있다. 누군가는 매일같이 저 동상이 반짝이도록 열심히 꼼꼼하게 닦고 있겠지. 그의 이름을 딴 연극제가 해마다 진행이 되기도 하고, 계절별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개최되는 축제는 이 작고 한적한 동네로 인파를 불러 모은다. 재미있는 사실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도 여름엔 셰익스피어 축제 주간이 열려 매주 저녁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을 개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허드슨 강 건너 뉴저지에는 스트라트포드도 있다고 한다... 그렇건만 스트라트포드에서도 맨해튼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관람한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휴스턴에선 맥베드를 몇 해 전에 보았다. 역시 홈그라운드가 주는 여유다.
정말 멋진 카누다. 꽤 무거울 것 같아보이긴 하지만, 가을이 물들어 가던 그 무렵의 공원 전체와 무척 잘 어울리는 색깔이다.
매사추세츠의 찰스강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캐주얼한 복장으로 조정 연습을 하는 팀들도 있었고, 유니폼을 칼같이 입고 연습을 하는 팀도 있고, 부부가 카약을 타기도 하고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이 오후를 즐기기도 한다.
자연미 가득한 전체 공원 한편에는 인공미 아기자기한 사람 손길이 많이 간 조경도 있다. 물속에 핀 연꽃 사진은 언제나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과 하늘이 맞닿은 자리에 핀 꽃이라 연꽃사진은 늘 신비한 느낌을 준다.
플라스틱 공 하나를 소중하게 들고 다니며 다정한 나들이를 하던 삼부자와 그들을 열심히 쫒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엄마도 있었다.
공원 주차장에 면한 우리가 숫하게 오르내렸던 거리의 이름은 York Street. 도로의 길이 삼백 미터가 될까 말까 한 이 짧은 거리에 면한 모든 건물들과 벽면들은 언제나 시선을 붙들어 놓는다. 입구는 반대쪽 도로에 있으므로 York Street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건물의 뒷면인 셈인데 정면보다 여유롭고 아름답기도 더 하다. 붉은 벽돌과 흰 벽돌에 앉은 세월의 더깨는 우중충한 색감과 질감을 빚어낼 수도 있지만, 초록과 붉은 악센트가 가미되면 우아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개성 있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이다. 가게들 모두 여전히 성업 중인 것으로 보면, 최소 15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가게들인 셈이다. 비록 내가 쉽게 들를 수 없을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모든 것들은 고맙다.
강을 돌며 긴 산책을 하고 난 후에 종종 들러 다리를 쉬고 음료수를 마시곤 하던 아이비가 풍성했던 커피가게와 그 옆의 칼란 서점. 언젠가는 연극배우 부부인듯한 커플이 앉아있는 풍경이 극적으로 보여서 양해를 구했더니 기꺼이 촬영을 허락한 날도 있었다. 커피점 버즈 옆, 빨간 쑈윈도우가 매력포인트였던 칼란 서점. 그 빨간 서점의 주인 할머니는 손주들이 그린 것인 듯한 현대미술을 닮은 것도 같은 꼬불 꼬불 붓질을 한 그림들을 액자도 없이 벽에 전시해 두곤 하셨었다. 그림 아래 따로 정성스레 아티스트의 이름과 나이 -5세 혹은 6세 -를 적어 넣어둔 태그에는 손주들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 묻어 있었다.
단골로 들렀던, 초록의 악센트가 돋보이는 Distinctly Tea Shop에 들어서면 마치 도서관이나 서점에라도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차의 디스플레이가 돋보였던, 안 밖으로 개성 넘치던 가게... 카페인이 함유되지 않은 초콜릿 향이 나는 것과 몇 가지의 다른 향이 나는 루이보스, 그리고 작게 썰어 말린 여러 가지 과일들과 장미꽃잎을 섞어서 만든 티를 사곤 했었다. 겨울이 길었던 추운 동네라 그리고 영국의 전통이 많이 깃든 동네라 그랬던지 커피보다는 차를 많이 마셨다. 대기가 냉각되어 가는 밤, 아이들과 마주 앉아 과일향 가득한 또는 초콜릿향이 우러나는 차를 마시면서 아빠가 도서관에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너무 뚜구와...도딤해야 돼..."
자정이 넘어서도 소식이 없으신 아빠가 도서관에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침대에서 방방 뛰며 소진되지 않은 에너지를 불태우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나는 잠든척 기절한 척 한 밤도 많았다. 그곳을 떠나온 뒤에도 한동안은 이곳의 차를 주문해서 마시곤 했었는데, 아마존의 위력은 Distinctly Tea에 대한 나의 로열티마저도 극복해 버렸다.
어느 여름 날이었던지, 계획을 하고 나갔던 것은 아니었으나 전국에서 모여든 백파이프 군악단의 그 장엄한 대열과 맞닥뜨렸다. 화려하고 강렬한 퀼트를 입고, 오묘한 소리를 뿜어내는 악기들을 연주하는 백발 용사들의 위풍당당한 등장과 함께 여름 음악축제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한적하기만 하던 그 동네에 여느 때와 달리 모여든 그 엄청난 인파와 화려하고 장엄한 백발 백파이프단의 등장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침 하늘에서는 에어쑈까지 동시 진행이 되고 있었으니...
이날의 페스티벌에선 RCMP (Royal Canadian Mounted Police)를 이끄는 백파이프단도, 영국 근위병을 이끄는 군악단, 스코틀랜드의 복장을 한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군악단인진 알 수 없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짐작되는 ) 악단도, 그리고 동네 경찰 해밀턴의 군악단도 참가를 했던 것 같다. 영국 근위병들이 캐나다에 나타난 이유는, 이들이 여왕의 권한을 대행하는 캐나다의 총독을 보호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연방 국가의 일원인 캐나다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리하는 총독을 따로 두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취임하여 두 달 전인 10월에 퇴임한 데이비드 죤스톤 총독은 임명될 당시 워털루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던 중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리하는 총독은 모두 여자였는데, 데이비드 죤스톤 총장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은 좀 낯설었다. 그러나 그의 후임으로는 캐나다가 낳은 여성 우주인으로 휴스턴의 나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줄리 파예트 여사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이다. ㅎㅎ
스코틀랜드의 치마 (킬트)를 입은 군악대는 1725년에 창설되어 워털루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고 1, 2 차 세계 대전 때도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그들이 연주하는 Scottland the Brave의 쟁쟁한 소리가 귀에 들리는듯하다.
한국과 이웃하고 있지만 일본은 완전히 다른 정서와 체제를 가진 나라이듯이, 비록 미국과 캐나다가 같은 언어를 쓰면서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온도 차이는 일본과 한국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느낀다. 시간이 좀 고여서 졸졸졸 흐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진대... 미국과도 또 다른 이곳은 Texas Republic 시간의 흐름이 급물살을 타는 곳. 각자도생의 라이프 스타일이 미덕을 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