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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

현대 건축의 전시장, 2016년 홍콩 (2)

귀챠니즘이 치사량에 달했을 때...작년의 짧은 기록에 뒤 이어

by 윤현희

작년 여름 7월 초순의 이야기다.

출국 전날 태풍이 홍콩을 휩쓸고 지나가 시가지가 범람되었다는 뉴스로 걱정은 했었지만, 막상 공항을 빠져나와 홍콩섬에 도착하고보니 그 여파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태풍이 지난 뒤라 그런지 습하긴 해도 서늘한 바람도 자주 불어주었고, 멕시코만의 무더위에 단련된 우리들에겐 크게 더위를 느낄 수 없는 날씨였다. 오히려 빨간 더블데커 빅 버스의 이층에 올라 앉아 시가지며 건축물들을 관망하기엔 매우 좋은 날씨였다. 홍콩에선 빅토리아 하버 선착장과 연결되었던 해양 박물관외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릴 기회가 없었지만, 시가지 전체가 거대한 현대 건축물의 전시장이었으니 별로 아쉬울 것이 없었다.



도시의 밤을 지키는 부릅뜬 눈동자


London eye 런던 아이가 아니고 광장의 중앙에 딱 중심잡고 서 있는 거대한 패리스 휠의 이름은 홍콩 대관람차라고 한다. 비 개인 빅토리아 하버 앞의 광장은 전혀 붐비지 않았고, 바람만 그 넓은 광장을 쓸고 다니고 있었다. 광장을 쓸고 간 바람은 그대로 바다 위로 날아 올라, 건너편의 구룡시를 향해 구름을 시원하게 속도감 있게 날려 보내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의 습격을 받은 나는 아이들만 대관람차에 태워주고선 광장에 서서 시가지쪽을 감상하였다. 거대한 건축전시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운데 보이는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진 상층부가 뾰족한 더듬이 처럼 생긴 건물은 차이나 뱅크 본관 건물이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혹시 아이엠 페이? 싶은데 결국은 역시 "나, 아이엠 페이! "였다.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고 불안 불안하게 만드는 건물들이다. 뾰족하고 건물 몸통에 온통 X자을 그리고 있어 홍콩 사람들 역시 별로 안 좋아한다고....우리집의 구조공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엠 페이가 중국계라 홍콩정서를 잘 알만할텐데도 이렇게 해 놓은건 지진에 대비해 굉장한 practicality 를 가미한 설계라는 것. 건물 전체를 X자로 휘감은 철빔을 건물 내부로 넣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홍콩시민들의 반감은 덜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와 같이 만듦으로서 건축주는 매우 만족했을 것같아 보인다. 물론 철빔을 따라 유리패널을 한장 한장 커스터마이즈해서 깎아야 했던 사람은 귀챦았겠지만 훈련된 엔지니어의 눈에 아이엠 페이 선생은 천재라고.... 전 글쎄요...


휴스턴 도심의 다운타운에도 똑같은 패리스휠이 있다. 그걸 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 봐야 대륙 남단에 끝없이 평쳐진 광활한 지평선 밖에는 볼 것이 없겠지만, 거대한 마천루 사이에서 파란불빛을 흘리며 천천히 돌아가는 거대한 패리스휠은 휴스턴 야경 랜드마크의 한부분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밤만 되면 눈에 불을 켜는 도시의 외눈들....눈알들.


응, 알아 ... 엄마도 사춘기때는 사진찍는거 무지 싫었어. 오늘만 협조해 주렴.



빅 버스는 내친구


휴스턴을 향해 귀가하는 중간 기착지로 선택한 여행이었기에 모든 것을 빅버스에 일임하기로 하고, 현지에서 파악하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했다. 소호의 호텔에서 빅토리아 하버 선착장 앞까지는 20여분이 소요되었는데 충분히 재미있게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빨간 더블데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작은 아이는 또 보도위를 종종거리는 참새들을 눈으로 쫒기에 열중했었다. 습기 가득한 홍콩의 여름을 온 몸으로 느끼기에는 더블데커의 이층이 좋았다.




"힘"과 "보배"의 표음 력보= Lippo. Lippo center twin tower. 미국 건축가 폴 아돌프가 설계하여 1989 을 전후하여 지어졌다고 한니 그때의 한국을 생각하면서 홍콩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트랜스 포머가 서로 마주보면서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막강한 힘과 부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건물같다. 매우 중국스러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왠일인지 한국의 장승을 보는 느낌도 든다. 천하 대장군 지하여장군?



방향에 따라 매뚜기 같아 보이기도 하는 아이엠 페이. 차이나 뱅크....애플 디자인 같은 느낌도 든다.

저 X자 띠는 내진설계. 지진이 나더라도 건물을 꽉 잡아주는 안전밸트 철빔. 꼭 맞는 유리창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저 철빔을 따라 유리 패널을 한장 한장 깎았을지도....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밤이 되자 투탕카멘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하던 굉장히 높은 건물도 있었다.


이금기 빌딩.. 주부들의 동반자 이금기. 건물에 세겨진 이금기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어머, 안녕하세요?' 했던... 예쁘지는 않지만 무척 반가웠던 빌딩이었다.


맞은편의 금색 담배곽처럼 생긴 건물. 내부에는 무척 돈이 많을것 같아보인다. 그리고 력보 건물 옆에 서 있는 또 하나의 황금성..


홍콩 도서관. 시간도 없었지만 별로 들어가보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에게도 있다고! 아이언 빌딩!"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누더기 아이언이다.



트램타고 산정에 올라가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는데, 저 앞바다는 구룡시와 홍콩섬 사이의 바다쯤 되어 보인다. 내가 서서 사진을 찍은 장소가 빅토리아 피크의 전망대라고 했다. 그러니까 홍콩의 도심이 배산임수? 복받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이 사진은말하고자 한다.


구름이 건물을 휩싸면, 실내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참 묘한 기분이 될듯한데, 정신건강에 괜챦을까하는 생각도 살짝 해보았다. 아래의 시가지와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샌프란시스코의 종잡을 수 없던 날씨가 생각났다. 그 도시에 히피와 예술가 그리고 정신이 남다른 자유인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아무래도 그 도시의 변화무쌍한 하늘 때문일것 같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던 기억이 있다. 자연은 너무 아름다운데, 하늘색 마져 시시각각 바뀌고, 안개가 확 전진해 들어왔다가 구름이 산허리까지 내려왔다가... 자연의 그 기묘한 조화에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지경이었다. 도시의 느낌이 시시각각으로 변함에 따라 내 머릿속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회오리가 마구 일어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누구라도 예술가가 되지 않고는 못배기거나,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던 샌프란시스코의 묘한 날씨.




시가지 반대편으로 방향으로 돌아갔더니 드넓은 중국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데자뷰는 아니지만 내게 익숙한 바다의 풍경 태종대...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와 똑같은 풍경. 그 가을의 어느 날엔 밴쿠버의 Stanley Park 어느 언덕 모퉁이에서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태평양의 서쪽끝인 태종대와 동쪽끝인 밴쿠버가 한때는 옆동네였겠구나 싶은 대륙이동설이 마구 믿겨지던.... 그 바다와 하늘과 공기와 나무의 느낌을 기억한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빨간 더블데커가 우리를 내려 놓았던 주거용 아파트가 즐비했던 바닷가. 바다 한가운데 그럴것 같지 않은 장소에 그럴것 같지 않은 웅장함을 지닌 중국성 같은 레스토랑이 떠 있었다. 누군가 애를 많이 썼겠다 싶긴했지만 별로 들어가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다. 우리를 태운 통통배는 매연을 내뿜으며 목적없이 이 바다 위를 잠시 떠돌았다. 아마도 저 중국성 같은 레스토랑으로 유도하기 위한 코스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다.



통통배의 내부는 무척 칼라풀했다. 대나무에 온갖 색을 칠해 엮어서 천정을 만들어 놓았다.


시티 투어에서 돌아온 후 꽤나 긴 시간을 IFC 건물 내부와 rooftop에서 보냈는데, 몇 바퀴 돌다보니 건물 구조를 외울 것 같았다. 대도시의 거대 쇼핑몰들의 내부는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다. 도시 특유의 음식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그것은 그리 큰 흥미거리가 되지 못한다. 큰 도시를 여행하는데 있어서는, 반가운 낯섦음을 기대하기보단 편리성에 고마와 해야할듯 하다. 낮에는 건물의 내부에서 식사하고 옥상에서 산책하며 저녁에는 영화관에서 우리의 제이슨 본이 나이 들어 버린 모습도 보았다. 아마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 같았는데... 제이슨이 흰머리도 나고 걷는 것도 느려지고... 슬펐다. 아빠에 대한 비밀도 풀렸으니, 이젠 안녕 제이슨.




다음날은 크루즈 (통통배)를 타고서 바다 건너 구룡성에도 갔었는데, 우리가 젊은 시절 사랑해마지 않았던 왕가위 감독이 그곳에서 영화를 여러편 찍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영화는 영화로 볼 뿐, 답사는 필요치 않았다.

rooftop에서 바라본 구룡시는 무척 상쾌해 보인다.



우리가 묵었던 부띠크 호텔은 남편이 미리 예약해 두었었는데, 소호지역의 매우 편리한 위치에 있었고, 서비스도 매우 훌륭했다. 혹여라도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지만 미안하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실내가 크지 않았지만 공간을 주제별로 구분해 놓아 호텔방이라기 보단 집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어 아이들이 무척 편해하고 활기차게 떠들었다. 더우기 좋았던 것은 호텔의 넉넉한 에스프레소 인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 (색깔)의 에스프레소 캡슐을 하루 세알씩 제공해주었다.



사춘기 만발한 십대의 두 아들들을 혼자 데리고 여행을 하는 일은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아기때부터 해오던 일이라 아이들이 장성해 오히려 힘은 덜 드는 면도 있다. 그리고 전략을 조금 바꾸어 목적지에 도달해서는 독립적으로 놀기. 한 시간 후에 보자. 를 선언하면 오히려 고분고분져서 엄마를 졸졸 따라 다니기도 한다. 엄마따라 여행다니는 날들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니 최선을 다해 같이 다녀보자. 인간이 원래 물에서 나와 그런지 아이들은 물 속에 들어가 있을때 원초적인 순한 상태로 돌아가는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면 아이들이 꾸린 가정과 그 가정에서 나온 예쁜 아이들이 우리의 여행에 동참을 하겠지. 늦어도 10년 안에는.. 오리새끼들처럼 조롬히 줄 세워 데리고 다니면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하와이나 콜로라도 산정쯤에서에서 해마다 가족 모임을 가질 것이고... 미래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잔뜩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Life should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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