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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

19세기로 떠나는 여행 - 오르세

by 윤현희

프랑크푸르트로부터 TGV를 타고 파리로 들어오던 날. 정겨운 산과 들 위로 잔잔히 햇살이 부서지던 풍경은 여느 대륙의 전원 풍경과도 흡사했다. noiselessly and seamlessly 달리는 부드러운 기차의 운행은 놀라운 고요의 무중력 속을 떠다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졸음을 불러왔다. 국경을 넘어가는 구간이었으므로 여권과 티켓을 대기하고 있었는데, 나타난 승무원들은 guten morgen 한마디와 옅은 미소를 날리고는 우리곁을 지나갔다. 쉥겐 조약국 사이에는 무비자 국경 통과인가보다 했다. 그래도 그렇지 국경이 이렇게 뚫려있어서야 ... 믿을수 없는 일이다.

이스트 역에 내려 택시로 샹젤리제의 숙소까지 오는 시간동안에도 아니 이럴수가를 연발하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 시켜야 했다. 믿기지 않는 도로의 혼잡함과 시내를 주행하는 자동차들의 어지러운 속도감은 여권체크없이 입국수속 따위 없이 육로로 국경을 넘어온 몇 시간 전의 믿기지 않는 경험에 더해져 어째서 파리가 테러 난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나는 어느새 미국이라는 경찰국가의 잘 훈련된 시민이 가질법한 규준을 내재화한 것인가..... 내가 살고있는 곳은 범죄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대중교통도 만들지 않는다는 카우보이 동네가 아니던가. 짧은 기간 느낀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통제가 체계적이고 예상가능하고 엄격한 미국에 비해 한국과 유럽은 완전히 자유방임에 가까운 무척이나 인간적인 나라라는 생각.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사람들이 온화하고 친절한 것은 법이 그들을 심하게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니까...하지만 대규모 난민 사태들로 인한 소요와 테러등을 생각할 때 유럽 국경 개방은 참 양날의 검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파리의 숙소는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하나 빌렸는데, 조그만 창으로 에펠탑이 건너다 보이는 아늑한 느낌을 사진상으로는 주는 곳이다. 주인은 상당한 포스가 느껴지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쿠엔틴... 파리는 화려한 베스트셀러 같은 느낌이라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가득 차 있어서 막상 무엇을 해야겠다거나 별 생각이 없다. 제목이 인상적인 소설책을 두 권 발견했는데, 가기 전에 다 읽을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여행 일정이 겹치는 선배님은 '파리에서 멍 때리기'가 목표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튿날, 새벽부터 쏟아지는 비로 인해 애초의 예정이었던 베르사이유 행을 오르세로 변경했다. 까만 벤츠의 우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자리로 일분의 오차도 없이 도착했다. 놀라운 정확성과 기동력이다. 내가 몇마디 물으니 기사님께서 당황하시며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고... 프렌치를 배운 둘째녀석에게 바톤을 넘겼다. 이 녀석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줄곧 프렌치만 읊조리고 다니더니 집에 돌아와서도 프렌치팝만 듣고 있다.


쏟아지는 우중에도 끝없는 줄서기 끝에 미술관으로 개조된 오래된 기차역에 들어섰다. 영화 휴고를 떠올리게 하는 건물의 아울렛과 큰 벽시계.

비 오는 아침 오르세에서 1 라운드를 시작했다.
살아있는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니 말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이 앞을 가리다 말줄 알았지 그렇게 쏙 빼놓으리라고는... 고흐는 우리 모두의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꼭대기 층으로 걸어올라가 변태 대마왕 드가와 드가의 그녀들도 2년만에 재회.

그리고 언제나 감탄이 흘러나오는 아스라한 모네.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

끌려가는 남자는 아마도 로뎅이리라 짐작해 본다.

줄리엣 비노쉬의 얼굴로 기억하는 까미유 끌로델의 가슴 아픈 인생이 고스란히 표현된 듯한 작품이다.

슬펐던 그녀의 인생을 위해 꽃 한송이 저 조각 앞에 놓아두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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