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기

캐나다로부터 찾아온 이야기- 온타리오의 첫

by 윤현희

로스코의 그림이 불러온 여행지에서의 새벽에 관한 기억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벽.

호텔방 창 밖으로 거리를 떠돌던 푸르스름한 새벽과 눈이 마주침.

어둠은 옅어져 가지만 아침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

호텔 방의 붉은색 문.

또 들여다보고 있으면 5월 새벽의 온타리오 호수가 떠오른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의 수면으로부터 피어오르던 손에 잡힐 듯하던 새벽안개...

새벽녘에 잠을 깨어 보면 커튼으로 가려 놓지 않았던 커다란 창을 통해 가득 밀려들어 오는 듯하던 푸른빛 공기. 그 푸른빛은 끝간데를 알 수 없이 넓은 호수 위에서 피어오른 초봄의 포근함이기도 했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눈을 뜨면 대면하던 그 푸른 새벽에 마주한 바다 같은 호수가 주는 느낌은 무섭지 않았고 유년 시절 외가에서 자다 눈을 떠 정신이 말똥 해졌을 때 느껴지던 고요한 포근함과도 닮아 있었다.



캐나다에 새 여장을 풀었던 그해 봄은 한국으로부터의 열다섯 시간의 시차에다 임신 말기의 불면증이 겹쳐서 참으로 들쭉날쭉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처음 맞는 새벽의 감상이 실로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유년 시절에 맞은 새벽 녘의 포근하고 고즈넉함이라니... 고향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와 이국땅에 오롯이 우리 셋만 뚝 떨어졌다는 외로움이나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비장함 보다는, 오히려 유년의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고향에 도착한 기분. 실제의 유년 동네라기보단 그림책을 읽으며 떠났던 미지의 마을에 이제야 도착한 기분. 그랬다. 우리가 렌트하기로 한, 엘긴 스트리트와 메이플 뷰의 인터섹션에 위치한, 바다 같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9층의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여행 온 기분으로 온타리오 호수가 뒷마당에 닿아있는 그 나지막한 모텔의 안채에서 한 달을 기거했다. 우리가 잠깐 동안 머물 숙소를 미리 알아봐 주었던 그 부부는, 모던하고 전형적인 고층 호텔과 온타리오 호수가 뒷마당에 펼쳐져 있는 모텔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하며 하나를 선택하기를 권했었다. 호수가 뒷마당에 펼쳐진 나지막한 모텔이라니... 미지의 거주지를 향한 설렘을 한층 더 들뜨게 하는 상상 속의 풍경이었다.


막상 당도해 마주한 풍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활한 호수여서, 바다의 느낌이 났다. 그러니까 그 숙소가 면하고 있는 것이 호수가 아니라 바다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기거하였던 모텔의 안채는 장기 투숙자를 위한 별채로 지어져 본채의 뒷면에 숨어있다 시 피하여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었고, 안채의 숙소에 할당된 마당은 우리만의 주차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두 개의 넓은 침대가 놓인 침실을 사이에 두고 입구로부터 가장 먼 쪽에는 욕실이, 입구의 오른쪽에는 문이 달린 키친이 갖추어져 있었다. 입구의 넓은 공간에는 티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호텔이라기보단 개인 가정의 원형에 더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어 한층 안정감을 더해 주었다. 햇살이 느긋하던 5월의 오후 제시 노먼이 노래하던 summer knows는 그 공간과 매우 잘 어울렸다. 하지만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방송을 들을 때면 언제나 마음 한켠은 당혹스러웠다. 마당으로 나가면 바다 같은 호수를 느긋이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할 수 있는 야외용 의자도 두 개 놓여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 저 멀리 호수 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른쪽으로 해밀턴 시의 아스라한 전경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한국에서 첫 아이를 낳고 대학에 강의를 나가던 시절은 참 여유로왔다. 여유가 지나쳤던 것인지 강의가 없는 날이면 캐나다 대사관의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영주권 수속 서류를 한 장씩 작성하기 시작하였고, 한 달이 지나자 모든 서류의 작성이 마무리되었다. 얼마간의 수수료와 함께 영주권 수속을 시작한 지 서너 달이 지나자, 인터뷰는 생략하기로 하고 캐나다로 이사 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래서 영주권 수속을 시작한 때로부터 8개월이 지난 시점에, 캐나다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기 시작하는 5월 초순에 호숫가의 작은 도시로 거처를 옮겼던 것이다. 새 삶을 개척해 나갈 거처는 토론토 시내로부터 고속도로를 타고 40여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벌링턴이라는, 이를테면 서울로 부터 분당에 비유할 수 있는 조용하고 단정한 도시였다. 고속도로라 하더라도 아기자기한 구간이 많았고 삭막함을 느끼지 않으며 달릴 수 있는 거리였다. 토론토로부터 벌링턴에 도착하는 또 다른 길은 온타리오 호숫가로 난 레이크 쇼어라 이름 붙은 도로를 타고 호숫가에 지어진 대저택들의 풍경을 감상하며 도로변에 줄지어선 가로수 그늘 아래를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리는 방법도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밤, 우리를 마중 나온 안내자와 함께 숙소를 향해 레이크 쇼어를 달리던 그 5월의 밤길이 기억에 남아있다. 고층건물이라곤 없어 사방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기만 만데, 도로로부터 한참 떨어진 저 깊은 숲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은 평범한 가정집들이 거기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들이 모여있지 않고 어째서 저렇게 드문 드문 반짝이는 것일까... 모여있지 않고 뚝뚝 떨어져 드문 드문 반짝이는 집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구나.. 생각하면서 아침이 되어 불빛들의 실체를 무척 확인하고 싶어 지던 순간이었다.


봄을 맞은 벌링턴 시내의 도로변에는 키가 큰 가로등 기둥마다 색채 화사한 꽃바구니가 매달려 있어 축제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거리마다 늘어선 꽃바구니라니... 기나긴 겨울이 드디어 끝났다는 것을 축하하는 분위기였고, 상의를 탈의한 채 조깅을 즐기는 피 끓는 젊음들도 거리에는 많았다. 그 도시 벌링턴의 대기는 맑은 공기와 투명한 햇살로 가득했고, 하늘과 땅 사이에는 키 큰 나무와 산들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은 눈이 부셨고, 새소리가 가득했고, 온 세상이 나지막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를 따라 산책을 나가면 동화 속의 나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벌링턴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은 아마도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였을 것인데, 그런 아파트마저 그 도시에는 몇 동에 불과했다. 모든 건물이 나무에 에워싸여 낮게 낮게 옆으로 펴져있는 것은 참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생애 처음 당도한 이국의 거리가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에서 보아왔던 것과 같은 모양의 집들이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시의 남쪽으로는 거대한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북쪽으로는 융기 지형의 언덕인 나이아가라 에스칼프먼트가 솟아 있고, 타운은 호수와 언덕 사이에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워터 프런트 지역에 있는 라살 파크엔 이렇게 아름다운 요트 정박장이 있었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스팟라이트를 켠 듯, 요트들이 모여있는 이 곳만 환하게 비추는 순간도..

백조와 거위들이 늘 이렇게 단체로 모여 나와 유유자적 놀고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어쩌자고 그리 반갑게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날려보내곤 했던지, 그 도시 주민들의 무턱대고 다정함에 대한 대응방도가 몸에 익지 않았던 처음 며칠간은 적쟎이 당황했었던듯 하다. 초반에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리자 아침엔 느지막이 일어나 지도를 펴 놓고 동네 지리를 익혔다. 지도에 목표지점을 정하고 드라이브를 나가곤 했다. 융기된 언덕의 한가운데로 난 구엘프 라인이라 이름 붙은 도로를 따라 언덕 너머 북쪽 동네로 드라이브를 다니기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언덕으로부터 평지로 내려오는 길을 달리다 보면 바다를 향해 곤두박칠치는 기분도 들곤 했다. 아이와 함께 호숫가 공원을 산책하거나 조금 더 떨어진 요트 선박장까지 가서 정박 중인 요트들을 감상하며 주변의 오솔길들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속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듯하다. 점심을 먹고 오수를 즐기고 그리고 일어나도 아직 반나절이나 남아 있었다. 긴 겨울을 넘기고 오월이 되어서야 봄이 당도한 것이 확실해 보이던 캐나다의 거리에서 햇살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간은 오후 아홉 시가 넘어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후 다섯 시가 되면 고속도로를 남서쪽으로 40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나이아가라를 향해서 차를 몰곤 했다. 그럴 때면 그날의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이었고, 하루를 두 번 사는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그것이 오후 산책인 셈이었다. 그제야 사람의 말을 흉내내기 시작하던 아이는 나이아가라로 긴 산책을 다녀온 날은 랄랄라 포포에 다녀왔노라 할머니께 전화로 인사드리곤 했다.



모텔의 주인 내외는 크로아티아에서 오래전에 이민을 온 분들로, 소탈하고 정감 넘치는 분들이었다. 주인인 토니 아저씨는 자그마한 체구에 절도 있는 품위가 느껴지는 단정한 분이셨다. 아주머니는 길 건너 컨비니언스의 한국인이 오너로부터 물김치 담는 법을 전수받아 그 맛에 푹 빠져있었고 물김치를 스스로 담아먹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 한 달간 호수에 맞닿은 모텔의 깊숙한 안채에 기거하면서, 한 두 번 주인 내외의 거실로 초대를 받아가기도 했었던 것 같다. 아주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밀가루 반죽 켜켜이 잼을 넣고 돌돌 말아 구운 쿠키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선 월드컵이 진행 중이었고, 이탈리아와 대결이 있던 날은 티브이 앞에 모여 앉아 대한민국을 목놓아 외치며 손뼉을 치면서 경기를 지켜보았었다.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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