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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r 01. 2020

twilight epiphany and Dvorak

James Turell @ rice university

낮의 햇살은 따뜻하여 자목련 꽃송이는 등불을 켠 듯 환했다. 저 예쁜 분홍 보랏빛은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색이 달라진다.


모처럼 음악회가 있어 밤의 산책.

라이스 대학이 풋볼은 좀 못해도 음악과 미술은 수준급이라 가을과 봄 학기 중에 몇 번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치는데, 휴스턴 심포니 못지않다. 큰 아이가 중학교 때  youth symphony를 하면서 일 년에 세 번씩 공연을 하던 예쁘고 품위 있는 콘서트 홀에서 오늘 저녁은 대학 심포니 공연이 있다.   Antonin Dvorak  cello concerto in b minor

루카스 굿맨이 오늘 밤의 솔로이스트였는데, 졸업을 앞두고 프로 연주자로 데뷔하기 전에 갖는 무대였다. 화려한 프로필은 이 젊은 음악가의 열정과 동서분주한 노력의 증서다. 늘 듣던 재크린 뒤프레의 긴장감과 힘이 넘치는 리코딩과는 다소 다른 부드러운 소리였지만 젊은 연주자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콘서트홀에서 듣는 연주는 언제나 30분짜리 협주곡도 10분처럼 느껴지니... 몰입의 힘. 드보르작이 19세기 말 카네기의 초청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하고 감흥으로 작곡한 첼로 협주곡이라는 설명... 나이아가라의 웅장함은 첼로를 꺼리던 드 브르작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한때의 나이아가라 이웃주민이었던 터라 드보르작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저녁. ㅎㅎ 체코인 드보르작에게 신대륙의 대자연이 주는 감흥은 굉장했던가 보다. 9번 교향곡 신세계에서, 4중주 아메리칸, 그리고 첼로 협주곡이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절 작곡되었다니. 집에 돌아와 영상으로 다시 본 재클린 뒤프레의 연주.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팔은 첼로를 연주하기 위해 빚어진 팔 같다. 여자 첼로 연주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니 첼로가 체력적으로도 힘든 악기임은 분명한 듯...

그리고 라이스 대학 음악당 정원에는 다채로운 하늘빛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이 있다.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이 설치한 skyspace 시리즈 73 번째 건물인 "Twilight Epiphany"이다. 미술작품이라기보다는 예술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만한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은 세계 각국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에는 원주의 뮤지엄 산에 제임스 터렐의 작품 공간이 있는데 나는 아직 방문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다음번 방문 때는 직접 운전해서 찾아가리라는 생각. 원주는 내게서 무척 멀지만 다행히도 동네의 휴스턴 미술관과 라이스 대학이 있다. 단정하고 현대적인 직사각형 건물인 쉐퍼드 뮤직홀과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건축 공간은 무척 조화롭다. 1975년부터 제작해 온 스카이 스페이스(Sky Space)’ 시리즈는 Skyspaces는 독자적 구조로 존재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건축에 설치하는데, Twilight Epiphany" 잔디로 덮인 피라미드 형태로, 측면이 평평한 꼭대기 위에 지붕으로 덮여 있다. 건물의 천장에 커다란 타원형이나 사각형의 프레임을 뚫었다. 꼭대기 관망대 벤치에는 젊은 친구들이 두세 명씩 모여읹아 저물어가는 저녁을 지키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높지 않은 피라미드 같은 그 공간에서 건너다보는 메디컬 센터의 야경도 신선했다. 빛과 공간을 소재로 우리의 지각 현상을 탐색하려는 설치 미술가의 시도에 안도 다다오의 빛의 건축을 떠올린다.




야트막한 피라미드 위에 앉아 황혼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왕자가 하늘로 난 천정의 구멍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난 해 질 녘을 아주 좋아해. 우리 해지는 걸 보러 가자 지금.”
“하지만 기다려야지.”
“기다려 뭘?”
“해지는 걸....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지.”
처음에 너는 굉장히 놀라는 것 같았어. 하지만 곧 웃음을 터뜨리고 내게 말했지.
“난 아직도 내가 집에 있는 걸로 생각한다니까.”
“그렇구나 미국에서 정오일 때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 프랑스로 1분 만에 날아갈 수 있다면 정오에도 당장 일몰을 보러 갈 수 있겠지.

불행히도 그러기에는 프랑스는 너무 멀리 있단다. 하지만 네 작은 별에선 앉아 있는 의자를 몇 발짝만 뒤로 돌려놓으면 되지.

언제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날이 저물고 황혼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지.”
넌 내게 말했어
“어느 날은 해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봤어.”
그리고 조금 후에 덧붙였지


“아주 슬플 땐 해 질 녘이 너무 좋잖아.”
“그럼 그때 아주 슬펐니? 마흔네 번 해지는 걸 본 날?”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제임스 터렐은 풍채 좋고 찰스 다아윈을 연상시키는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분인데  수염이 얼굴의 절반을 덮었지만 깔끔한 인상이다.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 태생인데다 항공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열 여섯살부터 경비행기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취미가 있었고 그 축적된 체험이 예술공간에 빛을 들여넣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작품은 대채로 지각 심리학의 원리를 응용해 착시와 환시 현상등을 미적 체험으로 만들어낸다. 현재도 취미는 경비행기 수집인데 비행기를 죄다 하늘빛과 똑같은 파란색으로 칠하고 여기 저기 날아다니신다는데, ㅇㅖ술가로서는 지구 최강 스케일이 아니실까 싶은 생각. 어린왕자인양 파란 비행기 타고 신나게 날아다니신 이 분은 마침내 아리조나 사막에  crater를 하나 사서 굴을 파고 들어가 하늘을 만나는 전망대 공간을 건설중이라고 한다. 로덴 분화구 프로잭트라고 한다. 조만간 완성될 예정인데, 아리조나를 가야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한다. 우주와 가장 가까운 동네 아리조나. 수염기른 한때의 어린왕자가 드디어는 분화구에 앉아서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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