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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r 07. 2020

겨울에서 봄 사이 -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전쟁

3월이 시작되면서 live oak tree는 작고 노란 잎을 마구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여느 활엽수와는 다른 oak tree의 계절감은 이제 솜털 같은 꽃가루를 공기 중에 마구 휘날려 주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보면 라이브 오크는 활엽수와 침엽수 중간쯤 되는 딱딱한 잎을 가진 지역색이 강한 나무다.  2월 한 달간은 겨울과 봄 사이의 경계에 걸쳐진 채 스케줄과 재 스케줄의 현을 고르느라 지루하게 지나갔다. 한 달여간 예정되어있던 한국에서의 강연과 심포지엄 일정들은 그러리라고 예상했던 것보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연기 결정이 났고, 강행 예정인 일정은 미안하게도 내쪽에서 취소를 해야 핬다. 마지막으로 비행 일정을 재조정해 가을로 넘기고 난 자리에는 깊은 우물이 하나 생겨났다. 우물은 잃어버리게 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전쟁을 치르는 시대의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이 만들어 낸 것이다.


새로운 전염병이 역사에 등장하리란 것은 예상해 왔던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신체 면역력이 제기능을 하기를 바랄 뿐이고, 낮게 엎드려 신약의 개발 추이를 지켜볼 일이지만, 사태가 전개되는 모습은 어느 시대 풍경인가 싶게 낯설다가도 불길한 데자부를 경험하는것 같기도 하다. 바이러스의 폭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달라진 질서와 새로운 가치관이 움틀 테지만, 현재 진행형인 해체가 재건이 가능한 것이기만을 바랄 뿐. 시간의 여백과 마음에 생긴 우물을 사람들과 어울려 공을 치며 메운다. 공치는 시간들은 궤도를 이탈한 일탈적인 시간들이고 killer back hand와 best beginner putter ever라는 닉네임을 가져다 주었다. 세상에 킬러라니....


큰 아이가 대학으로 떠난 작년 언제쯤부터 가족들이 각자의 이유로 헤쳐 모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만 얌전히 집을 지킨다. 공항으로 배웅을 나가는 날은 흔히 밤을 뜬눈으로 새우게 된다. 대게는 아침 일곱 시나 여덟 시 비행기라 네시쯤 집을 나서면 공항까지 40분이 소요된다. 큰 녀석 개강 전날 1월의 어느 아침. 아이를 공항에 내려다 주고 돌아온 두 시간 후에 전화가 왔다. 시카고 상공 엉망이라 비행이 죄다 캔슬됐다고 패닉해진 녀석을 진정시키고 공항으로 다시 가는 동안 대책을 고민해야 했다. 다음날 일기가 좋아지리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차로 데려다주어야 할까? 17시간 편도 운전이면 등교로 시간으로는 에픽이다... 수영 훈련 간 작은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우리 형아 학교 데려다줘야 할지도 몰라. 엄마 혼자 갔다 오면 힘드니까 같이 가자 운전도 교대로 하고... 그 순간 작은애는 마음이 무너졌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는 엄마 농담 마세요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나 수영하면서 생각해 보겠다고만 착하게 대답했다.  두 시간 만에 다시 만난 큰 녀석은 다음날 아침 비행기 티켓을 다시 구해놓은 상태였고, 다행히 무사히 학교로 돌아갔다.


그랬던 녀석이 두 달 만에 다시 내려온 것은 시민권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서다. 전공과 관련해 캐네디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현실의 요구에 따라 미국 시민이 되어야 했다. 공항을 나와서 대기 중인 엄마를 발견한 녀석 한층 웃음이 많아졌다. 로켓 클럽에서 technical director를 맡아 다양한 인간들을 경험 중인 녀석은 “똑똑한 아이들은 왜들 그렇게 mean 한 거냐”라고 내게 물어왔다. 원래 그런 거야 ㅎㅎ.. 자기 생각이 분명하니까.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한 컨퍼런스를 개최하겠다는 프로포절을 냈더니 학교를 후원하는 어느 독지가가 2만 불을 쾌척했다고 한다. 겨우 대학 2학년들인데 상상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했을 테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그래서 파티했니?라는 질문에 파티가 아니라 팀 전체가 패닉 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디어를 던져봤는데 펀드를 덜컥 받았으니, 성과에 대한 책임감이 즉각적으로 엄습해 왔다는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아이들. 순수와 열정만 가득하구나.... 이젠 그런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기회로 충만한 시간들이 너희들 앞에 펼쳐져 있으니 참 좋겠구나.... 아이가 커나가는 모습이 우물을 얕아지게 만든다. 일요일 오전이면 다시 올라가야하고, 한주후면 봄방학의 시작이라 또 공항엘 마중가야 한다. 그래도 봄이 뜨거워진다는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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