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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17. 2016

외국어로 글쓰기, 시집 [입국]

책 소개

서시


커다란 나무는

그대로 한 권의 역사책이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한 페이지며

해마다 다시 써져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책.

하루 종일 바람이 읽고 있다.

가끔 언더라인 한다.

                                                                사이토우 마리코



매우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사한 마음 가득 해지는 그녀가 우리말로 쓴 첫 시집에 쓰인 서시다.


태평양을 건너 이사를 다니면서도 우리말로 쓰인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들 죄다 끌고 다니던 이유는 그러고 보면, 그것이 내 젊은 날의 유일한 컬렉션이었기 때문이었던듯도하다. 마음껏 사모으고 읽었던 내가 가진 유일한 컬렉션이었던 시집들을, 둘째 아이를 낳고 난 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많이 많이 내다 버렸다. 이제는 내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를 내가 불러주어야 하는 때가 왔으므로, 무겁고 심각한 자장가와 노래들을 내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는 없으므로 그들과는 이제 그만 결연히 안녕을 고했다. 지역 도서관에 도네이션을 할까 알아보았으나, 생소한 한국어로 된 책을 도네이션 받아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사서가 마다 하였다. 대학의 한국 학생회에 기부를 할까 알아보았으나, 문학도 아니고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일 그 대학의 유학생들이, 90년대 한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쓰인 그 시들을 이해할리 만무하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아프고 미안하지만 나를 위한 자장가 책들은 지하 주차장에 내다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코 버릴 수 없었던 책 중의 하나가 사이토우 마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 여인이 우리말로 쓴 시집이었다. 시대를 논하고, 시대를 이야기하는 90년대의 한국의 많은 시인들과 그녀가 달랐던 것은, 모국어인 일본말을 두고서 외국어인 한국말로 시를 쓴다는 점 외에도, 아직 아름답고도 젊은 그녀가 내보이는, 살아 숨 쉬는 것들에 대한 깊디깊은 이해와 애정이 매우 감탄스러울 정도였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남다른 재능과 노력. 언어적 재능을 시를 통해 보여준다기 보다, 남의 언어로 자신의 철학을 노래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시라는 형태를 통해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조를, 그것도 외국어로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내는 그녀의 용기와 고집에 반해 있을 무렵, 나는 남편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얼떨결에 시작된 첫 데이트에서 이 시집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의 시들이 맘에 들어온다면 나랑도 친하게 지내자고..



.........................
 한 권의 책은 많은 나뭇잎들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말을 잃어버릴 때야 침묵은 어느 나라 말도 아니며 어느 나라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한 권(券)의 말이 한 그루 나무의 삶과 어울릴 줄 안다면 어느 나라 말이라도 좋다.
말이 한 그루 나무의 내력을 지켜줄 줄 알고 그 나무를 키웠던 지하수 한 방울 한 방울까지도 엎지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삼켜줄 줄 안다면.
............................
                                                                                                광합성 중에서



숨 쉬듯 배운 우리말을 접어 넣어두고, 애써 익힌 남의 말로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는 가끔 일본인인 그녀를, 또 그녀가 우리말로 쓴 시를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 대단하구나. 그녀의 사고는 정말 따뜻했으며, 그 언어는 그 따뜻함을 정말 정교하게도 그려내고 있구나. 그녀에게 반해 있던 그 시절엔 나도 그리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도 언젠간 수려한 영어로 나의 정교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며 만족에 겨워하는 날이 올 줄 알았다. 나는 사이토우 마리코처럼 뛰어나지 못하다. 그리 뛰어난 사람은 사실 그녀 한 명뿐이다.  

아, 소문에 들려오는 비정상회담의 그들이 있구나. 그래도 그들이 그녀처럼 시를 쓰진 못할 걸...


내가 영어로 말을 할 땐, 언제나 또 하나의 내가 등 뒤에서 한국말로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밖에 못하겠니? 어떻게 좀 내가하는 것처럼 세련되게 안될까?"하는 눈길을 쏘아주고 있다. 한국말을 하는 내가 영어로 말하는 내게 쏘는 그 눈길은 참 뒤통수 가려운 것이다. 내가 모국어로 표현 해 낼 수 있는 세심한 세계와 영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제한된 세계 사이에 놓인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언제나 저만큼 떨어져 서있다. 그 거리가 때론 고통스럽다. 그럴 때, 외국인이 쓴 우리말로 된 시는 다시 나를 조금 위로하기도 한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가르치는 일이 답답하게 느껴질 즈음, 일제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말과 글을 되찾았을 때 조상들이 느꼈을 환희와, 국어사간에 읽었던 퀴리부인의 모국어 폴란드어에 대한 사랑이 새옥새록해진다. .


엄마에게 배운 말이 아닌, 각자가 알아서 배운 말을 쓰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그녀가 건네는 위로 한 권이다.



p.s. 그러고 보니 황동규 시인이 단도직입적으로 쓴 시도 하나 있다.


황동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중


외따로 핀 꽃들
-해외에서 글 쓰는 동업자들에게

외국에서 우리말로 글 쓰는 사람들
너나없이 외로운 사람들
자신들이 어느 회사 항공기를 타고 왔다는 얘기를 한다.
떨어지지 않고 왔다!

외따로 핀 꽃들.
꽃판에서 떨어져 작게 외따로 서 있는 꽃에게
잠시 마음 주어 보라.
마음 온통 저며진 꽃!

(나는 외로움의 도사
자동차 없이 23층 아파트에서 저 넉넉한 물굽이를 내려다보며
물가를 거닐며
반년은 거뜬히 보낼 수 있다.
헌데 지금,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한 통!)

외따로 피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 그윽해진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은 오래 참고 사람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기 되지 아니하며
사람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람 이 셋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 제일은 사람이라.



© Yoon Hyunhee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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