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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20. 2016

미국의 음악교육 현장: 마지막 콘서트는 레드카펫 위에서

계속되는 육아 일기

아이들이 바이얼린을 시작하게 된 것은, 둘째가 여섯 살이던 어느 겨울 저녁, 그 즈음이면 온 도시에 울려퍼지는 파헬벨의 캐논을 들으면서, "엄마, 형아아? 저 음악이 너무 아름답지 않아?" 라는 믿기지 않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스스로 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다고, 엄마 바이얼린 배우고 싶어요... 라는 청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오호 니가 뭘 좀 아는구나 반기며, 냉큼 두 녀석 모두에게 바이얼린을 안겼다.


5월이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고,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스케줄은 탤런트 쑈, 각종 클럽과 운동팀의 뱅킷, 콘서트, 파티 등으로 바빠진다. 엄마 아빠도 덩달아 바빠져야 한다. 오늘 저녁은 학교 오케스트라에 속해 있는 하이 스쿨 다니는 큰 아이의 마지막 콘서트이자, 부모인 우리가 참관한 서른 번째 콘서트이다. 무려 두 시간 반, 150분째 진행 중인 콘서트에 부모들은 주리를 틀고 있는 중이다. 사라 장이 150분을 연주해도 청중은 지칠 판인데... 배가 고프다.


고등학교 수영 대표팀을 병행하고 있는 큰 아이는, 주니어가 되는 내년에는 대학 전공 선택과 관련한 교과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관계로,  수영을 선택하고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오케스트라는, 하루 세 시간씩 훈련을 해야 하는 수영보다는 몸도 시간도 훨씬 편할 텐데도, 이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이번 콘서트가 큰 아이에게도 마지막 콘서트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기념사진도 좀 찍고, 마지막 연주도 녹음하려고 바쁜 저녁 시간을 통째로 비워서 아빠까지 일찍 퇴근하여 서둘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오케스트라는 가을, 크리스마스, 그리고 5월의 학기말 세 번의 콘서트를 개최하는데, 고등학교의 경우 5월 콘서트는 졸업생 시니어들을 위한 farewell concert 형식이다. 가을 콘서트와 크리스마스 콘서트는  보통 한 시간 남짓이면 끝나는데 반해, 5월 콘서트는 좀 긴 편인데 올해는 유독 길다.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길지 않은 17년 음악 인생을 일일이 낭독해 주며 레드 카펫을 깔아주느라, 객석에 앉아 듣는 부모들은 음... 배도 고프고 지루하다. 네 개의 수준별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중간중간 졸업생을 소개 한다. 음악 한곡 들으시고, 졸업생들 소개 들으시고, 음악 한곡 들으시고, 또 졸업생 소개 들으시고.... 그러니까, 졸업생 시니어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치 골든 글로브나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 후보들이라도 되는 양, 그들의 일대기를 담은 사진들을 대형 화면에 띄워놓고, 누구누구는 몇 살 때 음악을 시작했으며, 장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며 간단하고 짧은 졸업 소감 등등을 오케스트라 디렉터가 낭독해 주는 동안, 드레스며 턱시도 등으로 성장을 한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사진 아래를 우아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은 여학생들의 의상이 화려고, 졸업생들의 솔로 연주가 다양하다. 가을부터 스탠포드를 다니게 되었다는 생상의 백조를 첼로독주 하는 여학생으로부터 시작해, 비올라 콘체르토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를 냈으며, 파가니니 랩소디를 피아노 협주하는 남학생도 멋있었다. 졸업생 다운 꽤 공들인 연주들이었다.  


고등학교의 크고 화려한 무대. 조명발 제대로인 오디토리움
졸업 무렵 저 스크린에 얼굴이 오를거라 생각하면 열심히 안 할 수 없을테지, 너희들!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 오디토리움을 빌려서, 무대 위에 드리워진 스크린에다 졸업하는 열한두 살짜리들의 얼굴을 순서대로 몇 초간 스크린에 띄워주고, 부모와 친구들은 마치 그 아이들이 스타라도 된 듯이 열광하고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해주면서 졸업파티를 꽤나 소란하게 했다. 그때는 나도 부모들 속에 섞여 앉아 처음 맞는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을 감동하며 눈물 몇 방울 또로록 흘렸더랬다.


오케스트라 졸업 콘서트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졸업생을 둔 이웃의 초대였고, 처음이니 조금 감동도 하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진심으로 박수 쳐주고 연주를 즐겼었다. 졸업생들의 고별 무대를 보는 것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번째인데, 우리가 볼 때마다 그 많은 졸업생들에게 감동하고 박수를 쳐줄 만큼 한가하지만은 않은데다가, 이것은 졸업식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학기말 콘서트일 뿐인 것이다. 배가 고파지면 아이 어른을 막론하고 심기가 불편해지는 법, 특히 길어지는 오늘 콘서트를 진행하며 무대 위를 주름잡고 다니는 시니어들에게 묻고 싶어 졌다.

"프로그램에는 이렇게 오래 하는 걸로 계획돼 있지 않던데, 너네 오늘 왜 반칙하니?"

"너네 지난 주말에도 뱅큇 하면서 밤 열한 시까지 먹고 춤추고 파티했잖니. 오늘은 콘서트를 빙자한 파티니? 퇴근하고 달려온 부모들도 생각해야지 얘들아..... 어흑"


큰 아이가 작은 아이와 함께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은 5학년 때이고, 중 고등학교 줄곧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 내가 이이들 레슨 데리고 다니느라 길 위에서 보낸 시간들이라니...


중학교의 아담한 무대 위에서 열심히  음악 하던 소년 시절. 네 네 무대 중앙의 콘서트 메스터 저 예쁜 소년입니다.


동네(라고 하기엔 좀 크지만) 청소년 오케스트라 활동하면서 라이스  대학 콘서트홀에도 섰던 그 때 그 시절.



오케스트라는 말 그대로 합주를 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며, 학년을 초월해 연주 수준별로 각 단계의 오케스트라가 구성되기 때문에 학년이 뒤섞인다. 그래서 좀 딱딱하게 말하자면 음악을 통한 정서 함양은 물론 사회성을 키우기에 뛰어난 선택이다.  매년 봄이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독주와 앙상블 컨테스트도 있고 (큰 아이는 5년째 나가서 매달을 한 두개씩 건져와 음악 매달 컬렉션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오케스트라 경력 2년 밖에 되지 않는 질투의 화신인 작은 아이는 질투로 활활 타오른다) 학교대항 컴피티션도 있는데, 때로는 집에서 다섯 시간 떨어진 도시로 연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백여명이서 스쿨버스를 타고 편도 다섯 시간, 왕복 열시간을 드라이브 하며, 합숙하며, 합주를 하고, 승리의 영광도 함께 안고 돌아오기도 했다. 올 봄에는 비행기 두대를 나눠타고서 디즈니 랜드로 4박 5일 수학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늘 함께하는 같은 반이라는 개념이 없이, 개인 능력별, 취향별 학과목 선택을 하다보니, 수학여행과 파티 등을 비롯한 학교 생활의 재미란, 음악이나 운동팀, 클럽 활동을 통하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졸업생들은 할 이야기가 더욱 많은 것일터이다.


아이의 마지막 콘서트라 좀 쓸쓸한 마음이 들까 했는데, 이 아이들의 습관이 되어버린 무대 위에서의 "스타놀이"에 쓸쓸함은 커녕 허기를 달래느라 정신을 쏙 빼놓은 그대들을 위한 레드 카펫, 배고픈 기억의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다.


미국, 정적 강화의 교육철학은 좋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도 좋다. 아이들의 조그마한 성취라도 화려하고 재미있게 폼나게 칭찬을 퍼부어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절제와 겸손 역시 미덕일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줄 사람들은 없을까......  당연한거 해 놓고 으스대며 보상받기를 원하는 미국애들 너무 많이 보아온 나는, 또 "최선을 다함"이란 어떤 상태인지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은데도 자신에게 돌아온 결과에 만족 못하는 내 아이들이 안타까운 나는, 아 또 박수치고 즐거워하면 되는 라스트 콘서트 가서 침소봉대하는 거니?



                                                     © Yoon Hyunhee all right reserved



표지 사진 출처는

http://capturedbycarrie.com/blog/tag/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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