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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Sep 18. 2016

미국의 체육 교육: 방과 후의 2라운드

예전에 발행했던 글인데, 실수로 삭제가 되어 다시 복구 한 글입니다. 



새벽 다섯 시 반, 졸린 눈을 비비며 남편이 뽑아준 에스프레소 그 진한 커피의 진액은, 뇌 주름 구석구석을 팽팽하게 자극시키며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피로감에서 못 깨어나는 남편에게 토요일 아침의 자유를 맡겨놓고, 아이들과 첫 경기를 향해 출발한다. 한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운전해 와서 도착한 곳은 새소리도 귀여운 숲 속의 오붓한 동네다. 진입로의 조경은 아름다웠으며, 수영 경기가 펼쳐질 레크리에이션 센터도 비치발리볼이며 농구코트까지 함께 갖추어져 있어 규모가 충분히 크고도 넉넉하다. 400여 명의 돌고래들 -우리 팀의 마스코트- 과 물개 -상대팀의 마스코트-들, 그리고 함께 온 가족들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하다. 물론 주차 걱정조차 덜어주었다. 서머리그 첫 경기가 집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공항 옆 동네에서 진행되는 것은 운이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오며 캠핑하던 새벽의 기억을 잠시 선물 받은 것을 보상으로 여기기로 한다. 새벽 어스름이 가시지 않았을 무렵, 호수 위로 부스스 하얗게 일어나는 안개를 보는 일은 참 묘한 기분에 젖게 한다. 


해마다 5월의 시작은 아이들 수영팀의 서머리그의 시작을 알리며, 부모들의 토요일 새벽은 여느 때보다 더 바빠진다. 동네 수영팀은 약 300여 명의 유아 청소년들이 한 팀을 이루고, 내 거주지로부터 반경 30분 거리 이내에 위치한 그 정도 규모의 수영팀 대 여섯 개가 두 달간 매주 물속에서의 스피드를 겨루는 리그를 벌인다. 마지막 두 주일에는 그간의 기록을 망라해, 반경 100킬로미터가 넘는 광역 휴스턴을 비롯한 인근 소도시에서 가장 빠른 선수들을 초대해 최종 결승을 치르고는 두 달간의 여름 리그는 6월 말에 끝이 난다. 첫 경기부터 고속도로를 한 시간 이상 운전해야 했던 것은 우리 팀이 올해는 대진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경기 진행 방식이 크게 바뀐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수영팀의 일원이 되는 또 다른 방식은 연중 year round 강훈련을 하는 미국 수영연맹 소속의 수영팀에 소속되는 것인데, 팀의 주목적은 기력 향상이고, 선수들은 매우 빠르다.

고등학교부터는 학교의 공식적인 수영 대표팀이 있다. 




경기가 진행되는 토요일, 경기를 주최하는 홈팀의 부모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세 시간 전쯤인 새벽 다섯 시부터 나와서 텐트를 치고, 풀장을 정돈하기, 기록 입력을 준비하고, 음식 가판대인 컨세션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수영장 주변으로는 흥을 돋우는 음악들이 하루 종일 울려 퍼지고, 수줍음과는 거리가 먼 여자아이들과 저학년 어린아이들은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자신들의 유년을 즐긴다. 선수들의 연령대는 네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 인데, 새끼오리들처럼 줄지어 입수하고 파닥파닥 수영하던 꼬마들이 미끈한 

팔다리를 가진 수영선수로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엄마라서 행복해요"를 만끽하게 해주는 재미다. 물론 동네 축구팀, 동네 풋볼팀,  그리고 동네 야구팀도 그들의 리그를 해마다 펼쳐가는데, 남들은 더워서 공차기를 중단할 때, 시원한 물속에서의 스피트 대항을 시작하는 점에서 수영팀 서머리그는 그들과 계절을 엇박자로 난다.  7월과 8월에는 모두가 휴가 모드고, 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 맞추어 모두 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두 명의 사내아이들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태권도, 체조, 야구, 축구 등등을 두루 거쳤으나, 수영에 정착하게 된 것은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 4학년 때였다. 흔히 말하는 soccor mom 사커맘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24/7 아이들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적 자원의 확보이었기에, 공부와 일로 바빴던 내가 뒷바라지 하기가 그나마 수월한 swim mom 스윔 맘으로 정착을 하게 되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한 일이다. 운동팀은 전적으로 학부모 발런티어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되는 것이라, 선수의 부모는 감독이든, 코치든, 벤치에 대기 중이든, 간식을 제공하든 어떤 역할이라도 하나는 담당을 하여야 했다. 미안하게도 남편과 나는 각자의 일로 너무나 바빴고, 시간과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짜 아이들을 연습에 데려갔다 하더라도, 축구나 야구의 코치나 감독을 하기에는 우리의 체력과 운동 경험이 일천했고, 대화능력은 월등히 떨어졌으니.... 그때의 심정이란... 이것은 무리야를 외치며 여러 번 쓰러질 뻔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숙제를 마치고도 남아도는 오후의 긴 시간을 좀 더 활기찬 것으로 만들어 주려고, 수영팀에 등록했고, 아이는 그 팀에서 3년을 수영을 한 후, 고등학교 진학하면서는 학교 대표팀으로 소속을 옮겼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이유로 서너 살 어린아이들 틈에 껑충하게 섞여서 기초반부터 시작하면서도 큰 아이는 마치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행복해했고, 유독 길게 타고난 팔과 다리가 가지는 장점 덕분에, 꼬맹이 시절부터 수영을 시작한 친구들을 곧장 따라잡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간 너무 바빴던 생활이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그 미안함을 덜어보고자, year round는 물론, 서머리그까지 내쳐 등록한 후, 토요일을 송두리째 뺏겨버리는 여름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규칙적인 운동을 삶의 필수불가결로 여기는 듯하고, 운동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신체적, 정서적인 유대감, 팀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간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수영팀에 있는 동안 부모들은 역시 학기당 20 시간을 발런티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지만, 일단 정해진 코치와 감독이 있고, 정해진 연습장소가 있으니, 그 모든 것이 유동적이었던 볼 게임에 비하면 땡볕이 내리쬐는 수영장 라인을 지키고 서서 물 뒤집어쓰면서 선수의 시간을 잰다든가, 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선수들의 기록을 입력한다든가 하는 등의 발런티어의 노동력을 제공하기란 식은 죽먹기에 불과했다. 텍사스의 여름에 두어 시간 수영장 앞에 앉아 있으면 온몸은 땀으로 습습해지고 몸은 공중에 붕 뜬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 축제의 날들을 불평하며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스윔 맘이 되어 관찰하게 되는 이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원리는 "가족중심"인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언제나 감탄스럽다. 학교의 운영 역시 그러하지만, 어떤 스포츠든 스포츠 행사는 온가족이 참여해야 하는 주말 행사인 셈. 맨파워 휴먼파워의 실상인 셈이다. 


매우 고맙게도 큰 아이는 몇 년간 하루도 연습에 빠진 적이 없다. 아이가 스스로의 생활을 discipline 하는 것은  수영이 가져다준 예상하지 못했던 소득이다. 학기 중 매일 새벽 다섯 시면 혼자 일어나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아침을 식사를 스스로 챙겨 먹고 엄마나 아빠를 깨운다. 다섯 시 반이면 집을 나서 여섯 시에는 입수를 해야 하기에, 전날 밤 10시에는 엄마가 아무리 재미있고 맛있는 것으로 유혹을 하더라도 꼬박꼬박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따라서, 방과 후 연습이 없는 날은 집에 도착한 오후 세시부터, 방과 후 연습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후 다섯 시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열 시까지는 꼬박 과제를 하는데 모든 시간을 다 쓰고, 시간이 좀 남으면 동생에게 시비를 건다든지 기분 내키면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하면서 보내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매우 바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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