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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04. 2020

오리가 떠가네.

유행병의 사태가 길어지면서 갇혀있는 나도 답답하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도 지루하실듯해 산책길에 만난 오리를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셨다.


동네마다 갖추어진 수영장은 5월이면 개장하곤 했는데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본지가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다. 하지만 그때 조용하고 정갈한 수영장에서 느껴지던 청량감은 그 어디에서도 다시 느껴볼 수 없는 것이었다. 동네에는 백야드에 수영장을 가진 집이 많았기에 넓은 커뮤니티 수영장은 언제나 라이프 가드들의 summer job을 유지하기 위해 가동되는 듯, 한 두 가족만 겨우 교대로 나와 놀곤했다. 가끔 학급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마주치기라도하면 그때만해도 수줍음 많았던 우리집 사내 아이들은 적극적인 여학생들로 부터 도망다니며 본의 아니게 술래잡기놀이를 연출하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수영팀에 들어갔고 매일같이 고등학교의 수영장 레인에서 2시간씩 허덕이며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꼬마들이 키 큰 미끄럼틀과 아기자기한 분수공원이 겸비된 동네 수영장에서 여름 오후를 보내던 시절은 채 몇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집 앞의 남쪽 수영장을 이용했는데 어느 여름 하루 인적이 드문 동네의 북쪽 수영장을 찾았다. 북쪽 수영장 앞엔 호수가 있어서 맑은 수영장에선 아이들이 물놀이를 , 호수에선 오리들이 물놀이를 하는 풍경이 연출되곤 하던곳이었다. 오리와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 싫었던지, 북쪽 수영장은 수영연습을 할 수 있는 25야드 스퀘어 레인이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언제나 정말 텅 비어있었고 역시 라이프 가드들은 무료함에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날은 북쪽 수영장을 독차지하고 즐기다가ㅣ문득 오리들이 풀섶에 낳아두고 돌보지 않은 알들을 발견했다. 한 두 군데가 아니라 장식용 부드러운 식물을 심어둔곳마다 서너개의 새하얀 알이 놓여있었는데 , 흙이 묻어있는 것도 있었다. 순간 갑자기 낭패감이 몰려왔다. 알을 낳아 둔 것은 오리였는데 왜 지나가던 내가 낭패감을 느꼈는지....

순간이었지만 생명으로 부화하지 못한 버려진 알들이 못내 안쓰러웠고 생명이기도 하고 생명이 아니기도 한 그 많은 알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적쟎이 낭패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 놔둔다고 오리가 다시 와서 품을 것같지도 않았기에 거기 방치된 알들은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같았다. 물고기였다면 혹은 거북이였다면  번쩍 들어다 연못에 넣어줄 수 있을텐데, 풀섶에 방치된 오리알들을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날 이후 한동안은 계란도 먹기가 꺼림직했던 기억이 난다. 예쁘게 부화해서 엄마 아빠 옆에 열심히 꼭 붙어 잘 따라다니는 여섯 마리 아기오리를 보니 잠깐이지만 너무나 안도감이 느껴졌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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