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바다 May 25. 2020

言の葉の庭

비 내리는 날의 모든 감각.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오후가 되자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번개도 번쩍인다. 오월 장마란 말은 올해는 어울리지 않지만, 추억 속 5월 장마를 소환하는 날씨는 하루 종일 계속되고, 마침 날씨와 딱 떨어지는 영화 <언어의 정원>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발견했다. 예쁜 정원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비 내리는 언어의 정원이 딱 걸렸다. 여러 해 전에 코엑스의 지하 영화관에서 보았으나, 번잡한 도심의 영화관에서는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던 영화였다. 다음에 조용할 때 다시 한번 보리라 생각해 두었는데, 뜻밖에 오늘 만났다. 한반도로부터 수만리 떨어진 이 멕시코만 연안에서조차 공교롭게 오월이면 장마가 들곤 했고, 5년에 한 번쯤은 대홍수로 큰 뉴스거리를 제공하곤 한다. 귀는 창 밖의 천둥소리 빗소리에 열어두고, 눈으로는 스크린을 쫒으며 비에 젖는 날의 그 모든 감각을 경험한다. 영화와 현실 기후조건의 완벽한 합일이라니!

<언어의 정원>은 도쿄의 장마철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말로 번역된 제목은 시적이다. <言の葉の庭 언어의 잎사귀의 정원>이라는 원제는 시적이라기보다 시구에 가깝고, 주제는 본격적으로 일본의 고전 시작품이다. 고전의 시는 천둥과 비 구름에 마음을 빚대어 에두르고 빙빙 돌려 말하는 옛날식 사랑가에다, 혼네와 다테마에 사이에 걸친 일본식 서정을 복합적으로 시전 한다. 비 내리는 날이면 학교 안 가고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출근하는 학생과 선생이지만, 정작 방향성 뚜렷한 10대와 방향감각을 잃은 20대다. 이 둘이 영화의 초반과 말미에 애매한 사랑가를 수미상관 법으로 주고받는다. 이야기는 말 줄임표 많은 문장처럼 이어져, 매우 지루하면서도, 매우 감각적이다. 감정선이 분명한 미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 영화는 또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시각적 감각이 압도적이다. 비 내리는 도쿄의 정원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국에서라면 올림픽 공원의 연못과 정원쯤이 영화 속 정원과 흡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우 지루하면서도 비 내리는 도시의 그 모든 감각을 낱낱이 담고 있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모순 형용 같은 영화다. 그러므로 비 내리는 날의 도시가 그리울 때 보고픈 영화다. 어느 해 겨울비 내리는 맨해튼의 호텔방에서 불현듯 느껴지던 그런 기분.... 빗소리에 창문을 열자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실내로 몰려들며 잊고 있던 감각을 일깨웠다. 그런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언어의 정원, 시의 정원, 비의 정원.

비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빛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시각 예술에 있어 빛의 계보를 이을만한 이름이 아닐지... 장르는 다르지만 카라바지오- 베르메르-모네- 에드워드 호퍼의 대를 잇는 계보의 끝자리에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이 들어가도 무리가 없을듯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스타 공예의 험난한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