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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28. 2020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 아라키 켄타로

한 낮에는 굉장한 비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미동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들어와 소리없이 창문의 블라인드를 죄다 걷어놓고선 한마디 툭 던졌다. "엄마 창 밖 좀 봐. 굉장하지?" 정말 굉장한 기세로 비바람이 불었고 3미터를 훌쩍 넘는 정원의 나무가 주체를 못하고 버들가지처럼 사방으로 몸체를 나부끼고 있었다. 작은 녀석은 종종 내 방으로 와 창문의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 두고 말없이 나가곤 한다. 지금 바깥 풍경이 너무 예쁘니 엄마도 눈을 들어 밖을 보시라는 말없는 배려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창 밖을 내다보곤 한다. 노을이 유달리 예쁘거나 무지개가 걸렸거나 하는 순간들이다. 작은 아이와 나는 해가 질 무렵이면 각자의 방식으로 산책을 나서는데, 녀석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나는 걷는다. 각자 해지는 풍경 사진을 잔뜩 찍어서 돌아오곤 한다.


낮에는 바람이 비와 함께 날뛰었지만 해질녘이 되자 잠잠해졌다. 북쪽하늘에는 여전히 파랗게 질린 구름이 무겁게 걸려 있었지만, 오솔길 위의 하늘은 환해지고 있었다. 오솔길을 빠져나와 호숫가에 이르자 사방은 완전히 어두워져 호수 건너의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어둠이 내린 호수 위의 풍경은 늘 그렇듯 휘슬러의 아스라한 풍경이다. 숲 길을 걸어내려올 땐 번개치는 하늘을 등지고 내려와서 그랬던지 번개가 번쩍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호수 이쪽에서 반대쪽의 숲 길을 바라보니 붉은 번개가 광선쑈를 벌이는 것 같았다. 6월을 바라보는 저녁의 습한 대기는 팔이 얼얼해질만큼 차가웠다. 이 저녁의 풍경은 낮에 계획되어있던 역사전 사건을 연기시킨 날씨다. 대륙의 끝자락은 텍사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거쳐 플로리다까지 비바람의 영향권에 놓여있었다. 덕분에 오늘 오후에 있을 예정이었던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왕복선 크루 드레건 발사는 토요일로 연기되었고, 토요일도 여의치 않으면 일요일로 옮겨갈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두 명의 비행사가 착용한 우주복은 나사가 사용해 온 우주복보다 훨씬 홀가분 해보였다. 일전에 식사 중에 우리집 남성동지들은 현재 나사에는 구식의 우주복이 40벌 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로켓사이언스를 공부하지만 취미가 엄마 몰래 옷만들기인 큰 녀석에게 남편은 전공과 취미를 결합하여 우주복을 만들어 볼 의향이 없는지를 물었다. 큰 녀석의 옷장에서 자가 제작한 자켓과 모자를 발견한 것은 몇 해 전의 일이었는데, 어깨와 허리 부분에 다아트와 주름을 여러겹 잡아 각지고 딱 떨어지는 휴고 보스 풍의 자켓이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여느 기성제품보다 뛰어난 디자인과 재단이었다. 휴고 보스는 2차 대전 때 밀리터리 군복을 만들던 회사다. 어쨋거나, 여름에 우주선을 발사할 때 연기와 지연은 자주 있는 일이다. 2006년 우주왕복선을 발사 할 때도, 자연사 박물관의 I MAX 영화관에 앉아 생중계를 대기하고 있었지만, 기후가 허락하지 않아 연기되고 우리는 싱겁게 박물관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6월은 아틀란타로부터 불어오는 허리케인과 함께 시작될거라며 기상학자들이 기상방송에 나와 겁을 준다.  

우르르쾅쾅은 없이 조용히 번개만 번쩍 번쩍


구름은 하루도 같은 얼굴을 보인 적이 없지만, 이번 봄 만큼 다양하고도 낮선 얼굴을 보인 적도 없었다. 내가 구름을 얼마나 좋아하면 이름이 구름바다이겠는가만, 구름을 정말 사랑하는 구름 전문가를 만났다. 아라키 켄타로는 일본의 기상학자인데,  구름에 관한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더없이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썼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교과서 수준의 내용을 담은 이 책의 제목은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이다. 이 멋들어진 시적인 책의 제목은 진실이다. 구름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고, 사랑은 결국은 기술 (skill) 의 문제가 맞다. 이 구름 전문가는 <언어의 정원>을 제작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또 다른 날씨 영화 <weathering with you 날씨의 아이>의 감수를 맡기도 했다.  <언어의 정원>이 '비'를 그린 영화라면 <weathering with you 날씨의 아이>는 상위 개념인 '기상조건'을 그린 영화였다. 그리고 이 기상전문가가 쓴 책의 제목을 영화감독이 조언을 했던지, 기상전문가가 영화제목에 조언을 주었던지는 모르겠지만, <weathering with you>와 <구름을 사랑하는 방법>은 완벽하게 댓구를 이루는 제목의 세트다.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에는 40개의 눈의 결정의 이름과 10 종류의 기본 운형 - 구름의 모양- 과 변형들의 목록이 소개된다. 40개의 눈의 결정이 제각각의 이름이 있었다니. 에스키모들이 그렇다고 했다. 눈속에 사는 사람들이라 눈을 부르는 이름이 수도없이 많다고...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QR코드가 중간 중간에 나오는데, 그 코드를 클릭하면 유튜브 화면으로 연결이 되면서 이 기상학자가 자료화면 앞에서 육성으로 구름을 설명한다. 클립이 끝도 없이 많다. 아라키 켄타로는 보물섬인데, 문제는 그가 일본말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제와서 일본어를 배울 수는 없고.... 지역 방송 ABC의 기상 학자 트래비스에게 이 소식을 전할까 보다. 트래비스는 구름과 하늘과 대기 사진을 직업적으로 포스팅하므로 나는 그의 social media를 follow하고 있다. 트래비스씨가 노력을 좀 하셔야 겠어요. 아라키 켄타로를 보세요.... 지구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그가 노력하는 걸 좀 보시라구요...지역민들을 위해 구름을 사랑하게 만드는 유튜브 자료를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기상학자가 가르쳐주는 중요한 사실은... 책은 이렇게 쓰는 거야... 라는 태도다. 자신의 전문성이든, 연구대상이든, 직업적 과제든, 이름이야 뭐라하든, 그 대상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세상과 나누는 일. 그는 서문과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책은 일상적으로 구름을 사랑하고 친해지며 즐기기 위한 기상 정보와 현저한 현상의 관천망기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상재해에 대한 방재력을 갖추는 능동적이고 즐거운 방재를 지향한다.
빗방울이 커지면 낙하할 때 공기 저항을 받는다. 이에 따라 동그란 공 모양이었던 빗방울의 아랫부분이 평평해지면서 찐빵 같은 모양이 된다. 비를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들을 보면 머리 부분이 뾰족하게 묘사될 때가 많은데, 실제 공기 중에서 빗방울은 그런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빗방울을 찐빵 모양으로 그린 작품이 있다면 그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빗방울을 정말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빗방울이 더욱 커져서 빗방울 모양을 구형으로 변환했을 때 반지름(등가 반지름)이 2.5~3mm 정도가 되면 분열되며, 그 밖에 다른 구름방울이나 빗방울과 충돌해서 분열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작은 구름방울들이 힘을 합쳐 하나가 되어 성장한 빗방울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마치 우리네 삶 같기도 하다.
구름을 알고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고 마침내 구름을 사랑할 수 있게 됨을 실감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아름다운 구름이나 하늘을 만나고 날씨의 변덕을 가져올 구름을 파악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등 구름과 잘 지낼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구름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회가 오는 것이 나의 꿈이다."


단순히 구름을 보기만 하는 관천망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구름의 마음을 느끼고 感天望氣를 통해 구름과 친하게 지낸다면 우리는 충실한 구름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름입자는 초속 1cm 정도로 낙하하지만 이 속도를 능가하는 상승기류 대기 곳곳에 존재하는 까닭에 공중에 떠 있다. 구름 하나 하나는 수 많은 입자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장관이란 걸 상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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