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슬론 - 맨해튼 연대기 3
맨해튼 연대기
맨해튼은 바둑판처럼 구획되어 세로로 넓게 난 ‘애비뉴’와 가로로 난 ‘스트리트’가 기본을 이루고 브로드웨이가 대각선으로 통과하면서 그 교차점에 광장들이 조성돼 있다. 비대면이 유비쿼터스의 시대의 이면이 되어버린 현대에 구글 어스 google earth는 비행기를 타고 저공비행을 하며 도시를 샅샅이 관찰하는 것과 흡사한 시각적 조망을 제시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존 슬론의 시절, 석양이 가라앉고 도시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가는 겨울 저녁의 맨해튼, 하늘은 아직 푸른빛을 품고 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어둠과 냉기 어린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밤거리의 자유분방한 풍경에선 활력과 즐거움이 넘치고 20년대 풍의 재즈 연주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도시의 저녁빛을 풍부하게 묘사했다. 깊고 푸른 하늘 아래로 기차가 날고 있는 100년 전의 맨해튼의 풍경은 생소하면서도 반갑다. 푸른 밤하늘 아래로 날고 있는 옛날의 고가 철도가 있는 풍경에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업으로 부활한 하이라인 high line의 원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해저문 하늘 아래로 날아가는 기차라니….
20세기 초까지도 유럽으로부터 그리고 미국의 각지로부터 도착한 물품은 서부 수송선 (west side line)이라는 철도를 이용해 맨해튼의 중심부로 수송되었다. 기차와 마차, 자동차가 뒤엉켜 달리다던 당시 뉴욕의 도로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난맥상을 타계하기 위해 뉴욕시는 지상 9m 높이에 고가 철도를 만들어 부두로부터 도심의 상업지구까지 화물 운송을 편리하게 했고, 이는 1980년대까지도 뉴욕시의 가장 중요한 화물 운송수단이었다. 고속도로망의 건설과 지하철,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자 철도는 쓸모를 상실하고 폐선이 된 이후 20년 이상 방치되어 있었다. 철거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무렵, 1999년 동네 주민이었던 한 프리랜서 기고가와 스타트업 오너는 “하이 라인의 친구들”이라는 시민 조직을 결성하여 폐선을 녹지화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했다. 뉴욕 역사를 관통한 고가 철로를 허물어버리는 대신 ‘하늘에 떠 있는 공원이자 문화유산”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시민 조직은 위로는 뉴욕시의 정책 결정권자들과 기업들, 아래로는 시민들을 동시에 설득해 천문학적 액수의 기금을 조성하고 폐허를 녹지화 해 경제적 이윤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도시 재생 사업의 기념비적인 전형을 보여주었다. 지난 세기는 기술의 진보, 속도의 향상, 양적 팽창을 지향해왔으나, 발전의 최대치에 도달한 것 같은 현재의 문명은 이제 지역적 독창성과 재생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민간이 주도한 녹지화 프로젝트의 성공은,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게라는 물질적 가치에 대항한 자연 친화와 도시 재생이라는 대안적 가치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많은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창출되었음은 물론이고, 도심의 개발에 뒷따르는 잡음과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용도를 상실한 시간의 폐허를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삶을 자연에 병치시키려는 녹색의 공중정원 ‘하이라인(the High Line)’은 세계적인 지역재생 운동의 벤치마킹 대상이자 롤모델이 되었다. 서울시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방침 역시 뉴욕의 하이라인을 롤모델로 삼았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착공 10년 만인 2009년 제1구간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문을 열었고 2011년 확장 개방을 거쳐 2014년 하늘공원으로 변신한 약 2킬로미터가 넘는 하이라인 전 구간이 공개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맨해튼의 첼시와 그리니치 빌리지, 웨스트 빌리지는 라이프 스타일의 실험실과도 같은 공간이다. 존 슬론의 맨해튼 연대기가 21세기의 우리에게 던지는 키워드 중 하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결국 개인의 삶을 관장하는 철학과 가치 체계의 문제다. 라이프 스타일을 정의하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결국은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삶의 가치체계를 구성하는 삶의 철학이 일상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18세기 본격적인 산업사회의 도래는 출생 시에 주어진 귀속 지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성취와 부의 축적이 가능한, 종래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탄생시켰다. 그 선두에 있던 그룹이 부르주아라고 한다면, 그들의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성취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일정 정도의 도덕성의 상쇄와 영혼의 황폐화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이라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회의 한편에는 경제적 성공보다는 영혼의 고결성을 유지한 정신의 귀족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보헤미안이라 불렀다. 존 슬론의 작품 세계는 20세기 초 보헤미안들의 일상을 기록한 풍경이다. 맨해튼이 산업도시였던 시절, 서부 수송선이 지나는 철로 아래 보헤미안 공화국이 존재했다면, 폐기 처분된 철로가 공중 정원의 문화유산으로 재탄생한 21세기에는 보보스로 통칭되는 주민들이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변화한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보보스 인 파라다이스>를 저술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David Brooks는 20세기의 산업 도시가 21세기의 정보와 예술의 도시로 거듭남에 따라 보헤미안적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한 채 사회 경제적 성공을 거머쥔 디지털 시대의 신흥 엘리트 그룹이 이 공간을 점유한 사회 현상을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했다. 아마추어 사회학자이자 경륜 있는 저널리스트인 그는 교육을 통해 축적된 지적 자본을 바탕으로 예술과 저작 등의 창의적인 작업의 대가로 부를 형성한 엘리트 그룹을 보헤미아와 부르주아의 첫 글자를 딴 보보스라 불렀다. 보보스들은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 지향을 가졌고, 명품과 유행에 동승하는 부르주아적 소비 양식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전문성과 취향을 고수하며 다양한 삶에 대한 열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자연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생활에 중점을 둔 그들은 첼시와 그리니치 빌리지를 근거지로 다양하고 진보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하이라인의 공중정원으로 올라가는 남쪽 끝의 계단은 미국의 현대 미술이 집결해 있는 휘트니 미술관의 광장에서 시작된다. 첼시에 위치한 휘트니 미술관은 에드워드 호퍼와 조지아 오키프를 비롯, 앤디워홀과 잭슨폴락, 빌렘 드 쿠닝, 제프 쿤스를 위시한 미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관 건축의 대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미술관의 각 층은 넓은 야외 베란다로 오픈되어 있어서 맨해튼의 정경과 서쪽의 허드슨 강과 동쪽의 하이라인을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다. 도시를 관망하기를 즐겼던 존 슬론의 기분을 만끽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센트럴 파크가 도시를 떠나기 위한 자연 공간이라면 하이라인은 반대로 자연 생태공원으로부터 도시를 관망할 수 있는 공간이고 웅장한 마천루의 숲의 다양한 건축과 조경은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사유의 결집체이다. 이 작은 공중정원은 도시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은 산소 발생기 같은 곳이고, 커뮤니티로서의 도시가 개인의 삶을 배려하는 잔잔한 생각의 흔적들로 가득한 산책로이다. 34번가에서 허드슨 강으로 철로가 굽어지며 공간의 끝나는 북쪽 구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옛날 타운이 지어질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먼지 색깔 가득하던 낡은 타운이었으나, 이제는 하드슨 야드와 베슬을 비롯해 조형미 넘치는 현대건축로 가득차 새롭게 태어난 도시의 럭셔리한 면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근사한 위용을 자랑하는 현대 건축이 멋있는건 밖에서 볼 때의 조형미 일 뿐, 세계화가 가속화 되어갈수록 지역 특유의 정취를 담은 골목과 쇼핑몰은 사라지고 비즈니스 오피스와 대형 몰이 들어선 건물의 실내는 전 세계가 대동소이 해진다. 홍콩의 ifc 내부와도 비슷했고, 서울의 잠실인지, 부산의 신세계인지, 휴스턴인지, 뉴욕인지 구별이 가지 않게 유사한 글로벌 브랜드의 가게들이 입점해 있다. 하지만 문화 유산을 보전하는 남쪽 구간이건 새롭게 초현대적 건물로 재탄생한 북쪽 구간이건, 창조적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정신활동의 가시적 결과물들은 언제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