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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심리학자의 이중 생활 – 성공한 ADHD의 좋은 예

 그때 나는 이미 두 아이를 둔 30대 중반의 외국인이었고,  더구나 그 대학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왕복 대구 부산의 거리에 맞먹는 140마일을 매일같이 운전해서 등교를 해야하는 처지였다. 뭐든지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꼼꼼한 성격의 배우자는 내 집안 일을 누가 들여다보고 손을 대는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나도 아이들의 등하교 관리며, 그 많은 액티비티 참여를 위해 직접 장시간 운전을 하고 다녀야 했다. 아, 숨쉴틈 없이 허덕이던 그 시간들이여... 불과 몇해 전의 일인데 그 때가 까마득한 옛일로 느껴진다. 전공이 실험실에 붙박혀있어야 하는 기초 과목도 아니고 응용 과목이라 강의실과 연구 미팅, 캠퍼스 밖의 두 개의 클리닉, 그리고 교육청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1년의 풀타임 교육청 인턴쉽을 포함해 6년 만에 학위를 끝냈다. 박사를 끝내는데 소요되는 미국 전체의 평균이 7년이고, 주변에는 부인의 수발을 받으며 공학박사를 10년씩 걸려 세월을 낚는 인사들도 허다했기에, 내가 겪은 6년이란 시간은 빛의 속도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텍사스로 이주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때였기에 in state resident 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해서도 무조건 빨리 졸업을 해야했다. 그랬던 시간이 화인처럼 남아서 학위를 끝낸 이후로는 그 도시 근처에는 발을 들이지 않고 있다.


나의 논문 커미티 체어였던 그 교수님의 이중생활을 눈치채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그 동네 근처에는 얼씬도 않고 있던 어느 주말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텍스트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나의 근황을 물어오는 낯선 이름은 크리스티 N.  이상한 기분에 머리끝이 쭈뼛해지며 그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클릭했다.  도대체 누구 길래 불려진 지 오래된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것일까, 그것도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궁금해하며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포스팅을 읽어 가던 중 한 인터뷰 기사에 눈길이 간다.  크리스티 N. 그녀는 추리소설 시리즈를 출간한 바 있는 미스터리 소설가인데, 최근 신작 출간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한 것이다. 기사 중간에 그녀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크리스티 N의 얼굴은 나의 커미티 체어였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물론 그녀는 쌍둥이가 아니다. 이럴 수가... 구글을 해 보니 goodreads에 소개된 그녀의 프로필에서는 애교스러운 모자까지 쓰고 웃고 있다. 이건 그녀의 완벽한 이중생활의 현장이다. 그간 왜 몰랐을까. 아무도 몰랐는데....


심리학자로 일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다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결혼을 한 그녀는 슬하에 자제가 없다. 그래서 가족을 서포트하는데 시간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유유자적한 전문가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생들 강의 준비와, 논문지도, 거기다 임상실습 수퍼비전에 논문과 저서의 출간으로 무지하게 정신이 없을 텐데, 밤에는 또 다른 이름의 작가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인터뷰 기사에는 학교에서의 일과가 끝난 후 매일 밤 두시간 정도 소설을 쓴다고 했다. 살면서 놀랄 일이 많았지만, 이런 종류의 놀람은 처음이다. 그녀는 학교는 물론 미국 심리학계 전체에서도 꽤나 비중 있는 인사이다. 한 가지 전문성으로 성공하기도 어려운데, 심리학자와 추리소설 작가 두 가지 전문성을 양손에? 언젠가 강의 시작 전에 추리소설 한 권을 소개해 준 적이 있는데, 내용은 그리 흥미롭지 않았으나, 소설은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화법이 너무나 낯이 익은 구어체로 기술되어 있어, 소설책보다는 어학용 서적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추리소설 역시 그녀가 쓴 것이었던 것인가...


         이제야 크리스티 N.이라는 또 하나의 자기를 드러낸 교수님은 그 멀티태스킹 능력과 산만함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발표하는 논문의 수와 저서는 엄청난 양이었고, 해마다 이름 뒤에 붙는 전문가 타이틀의 레터들을 더해가는 학계의 주요 인사였다. 나와는 일상적인 수퍼비전과 컨퍼런스를 위한 논문을 여러개 썼고 북 챕터도 하나 같이 썼는데, 그 일하는 방식이 참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랐다. 이른바 quick and dirty solution. 내 성과물에 대한 그녀의 커멘트나 피드백을 받아보면 그 허접스러움에 황당한 경우가 많았지만, 봐야할 학생과 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았던 그녀는 속전속결로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면서 내용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하지만  진지의 우물에 빠져 일의 진도와 속도를 못 내는 경우들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일처리가 일면 굉장히 프랙티컬 한 접근이기도 했거니와 배울 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 한국에 계신 모교의 선생님들과는 얼마나 되조되는 일처리 방식이었던지. 그분들은 인격적으로는 참 존경스러웠으나, 하드코어 인지를 전공하신 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뜬구름에 신선노름하시는 분들이었으니 학생을 10년씩 붙들어 두기가 예사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만행이었다.


어쨌건 그 분의 촘촘한 루브릭에 따른 quick and dirty 방식 덕분에 나도 졸업이 빠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기들과 나는 암묵적으로 그녀를 성공한 ADHD의 좋은 사례로 평가하곤 했다. 일처리 있어서 quick and dirty  solution을 주장했던 그녀의 방식은 짧은 주의력과 산만함을  멀티태스킹 능력으로 치환하여 강점으로 만들어버린 괜찮은 전략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딱 미국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워낙 기회와 시장이 넓으니 최고의 퀄리티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최소한의 구성요소와 필수요소만 충족시키면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 최소한의 필수요소를 만족시키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분명한 지표를 만들어 딱딱 제시하곤 했으니까, 그 방식에 익숙해지면 꽤나 효율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과는 인간적인 공감대는 크게 형성하지 못하였고, 더구나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쉽게 상처를 받곤 했고, 친하고 싶지 않아하는  어려운 교수였다.


성공한 ADHD는 그녀뿐 아니라 또 있다. 스스로를 공룡이라 칭하며, 너희들은 내 무덤 위에서 춤을 추어도 좋으니 나는 내 할 말을 해야겠다며 인종차별적 언사를 서슴지 않던, 백인 남성 중심의 심리학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던 모모 선생. 물론 미국사회의 데모그래픽의 엔트로피가 가속화되어 가는 와중에 발견한 공룡이 되어가는 자신의 처지도 달갑지 않았겠고, 무덤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에 대한 좌절감의 발로였을 것이라고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그때는 묻어두었지만, 그로 인해 내가 입은 collateral damage의 여파는 참 예상치 않게 오래도 간다. 그런 사람들도 좋은 학교 교수로 큰소리치며 잘들 살아간다.


누구나 남에게 말하지 않고 내보이지 않은 얼마간의 결함이나 문제는 갖고 살아가지만, 그 결함을 어떻게 스스로 인지하고 보완하여 대처하여 무난하게 기능하느냐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 응용 심리학계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모르겠으나, 대체로 미국에서 심리학을 사용하는 방법은, 개인이 가진 강점과 취약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취약점을 문제라 정의할 때, 장점을 이용하여 그 취약점을 보완하고 개인이 무난하게 기능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더디고 시간이 들지만, 개인과 환경 간의 조율에 성공하면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결함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작용할 수 있도록 삶을 가꾸어 주는 일이 미국에서의 심리학자들이 각 유닛의 시스템 속에서 하는 일이다. 그러니 성공한 ADHD의 좋은 사례였던 나의 지도교수님은 자기 결점 보완 대책의 전문가쯤 되는 셈이었던지도 모르겠다. 취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켜 화려한 이중생활을 하는 그 이름은 크리스티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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