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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Nov 26. 2020

아침 숲 하이킹

머리를 덮어주는 해를 가려주는 숲으로 들어가는 일은 정말 자연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기분좋은 일이다.  바람도 불지 않는 숲 속에선 아주 키 큰 나무의 정수리로부터 낙엽이 천천히 떨어지며 빗소리를 내고 있었고 개울물 흐르는 소리조차 들려오고 있었다. 낙엽이 두텁게 깔린 노란 흙길은 포장된 도로보다 너무나 부드러웠다. 흙을 밟아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각자의 리듬으로 존재를 알리는 새소리가 11월의 숲 속을 잔잔히 깨우고 있었다. 두 시간이 걸린 아침의 하이킹은 숲을 재발견하는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인적이 없어 좀 무섭기도 하고 아주 편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크릭 위로 난 좁은 오솔길은 코요테로부터 안전한 배수의 진이었다. 그 좁은 숲길이나마 마운틴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독특한 스릴을 즐기는 biking 들이 숲 속의 적막을 가끔씩 흔들고 지나갔다. 코요테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대신 뜬금없이 살찐 다람쥐가 나무 꼭대기로부터 떨어지는 꼴을 보았다. 책이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에 뒤 돌아보니 나무에서 떨어진 다람쥐가 정신이 나간듯 꼼짝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소리와 떨어진 나무의 높이로 짐작컨데 장파열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한참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웅크리고 있더니 정신이 돌아온듯  살금살금 나무 둥치 사이에 몸을 반쯤 숨기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있다가 정신이 돌아오자 개울 건너 편의 숲으로 들어갔다. 이 숲 속의 다람쥐들은 가을이라 도토리를 많이 먹은 덕분이었던지  동네에서 마주치는 다람쥐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살이찐듯 보였다. 이번 겨울은 매일같이 저 숲 속을 하이킹하고픈 마음이 들만큼 소담하고 예쁜길이다.


개울을 향해 난 오솔길을 걸으면 다람쥐 정도나 만나지만 호수쪽으로 난 큰 숲 길을 걸으면 운이 좋으면 사슴 가족도 만날 수 있다. 사슴 대가족이 이 숲속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대신 거대한 자라나 코요테를 마주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다람쥐가 이 길 한 가운데 떨어져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배가 많이 아팠을 것이다.

자전거 탄 사람이 이 좁은 길로 지나가고

남편은 왕복 일흔 다섯 시간 3400km를 달려 3학년 첫학기를 마친 아들을 데리고 왔다. 아직 기말고사 진행중이지만 추수감사절을 집에서 보내고 시험은 온라인으로 치를 수 있어 강의가 끝나자 마자 데려온 것인데, 매 학기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대륙 종단을 일삼는 것은 자기들이 좋아서 이러는 거다. 다음번엔 렌터카를 이용해 혼자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아들은 나이제한이 걸려서 차를 빌릴 수가 없다고 했다. 스무살에게 차를 빌려주지 않는다니....

아이가 집을 떠날 때나 돌아올 무렵에는 종종 환영인사처럼 또는 송별인사처럼 무지개가 걸리곤 한다. 무지개의 의미만큼 이이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평평한 지평선 위로 이렇게 거대하게 걸린 무지개를 보는 것도 흥분되는 일이지만, 이렇게 거침없이 큰 무지개가 바다같은 호수 위에 걸려있는 것을 처음 보있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도 두 개나 거대한 호수 위에 걸려 있어 나는 가까운 공원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도시에선 건물들에 가려져 저렇게 거대하고 깨끗한 무지개를 보는 일이 흔치ㅡ않았다.


저녁 식사 후 오랫만에 아들과 나눈 대화는 선택의

자유도와 행복의 역관계...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들의 자기 문화 부정, 자기가 자라온 토대에 대한 부정, self-denial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로 흘렀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라고조심스럽게 문제제기를 했는데, 그러는 나 자신 역시 자기문화 비판적이란 사실을 아이는 당연하다는듯 말했다. 엄마 아빠가 그러하듯이 나 역시 미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노라고.... 아이비와 실리콘 벨리의 문화가 서구의 문명사와 미국 역사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다 못해 자기-부정에 가까운 현상을 보이는 것은, 지적 자살을 연상케 한다. 자기가 선 토대마저 전면 부정해 버리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아이가 특수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안전한 선택이다. 직장을 가질 때 백그라운드 조사를 하게 될 것을 숙지하고 있어서 몸가짐을 조심하고 전공의 특성상 머리 굵은 아이들이 빠지기 쉬운 현실과 괴리된 지적 유희에 몰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지의 것을 탐구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식의 실제적 구현과 가시적 작동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현실에 굳건히 발딛고 서있다. 엄마는 그것이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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