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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Feb 18. 2021

대륙을 지나가는 얼음 폭풍의 날개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이 거대한 대륙 위를 지나가는 얼음 폭풍의 서늘한 날개소리를 들었다. 스르륵 스르륵 소릴 내며 대기가 흘러갔다. 얼음 폭풍의 날개에서 떨어진 눈과 얼음 조각은 지상에 새하얀 유니폼을 입혔고 나뭇가지에는 밤 사이에 크리스탈 열매가 가득 피어났다. 얼음 폭풍의 날개 펄럭임에 따라 전기가 들고 난다. 잠 잘 시간이 되면 세상과 차단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집안에 전기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뭐 한 가지도 불편함을 모르는 세상에서 가끔은 이런 소동 나쁘지 않다. .


산책길엔 눈 속에 뭍혀버린 나무 씨앗을 찾느라 지상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새들만 분주했다. 눈쌓인 들판에 나와 있는 소들은  어리둥절 영문을 모르는 듯 처량해 보였고, 앙상한 갈비뼈가 마음 아팠다. 이 추운날 동물들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들판에 서 있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아마도 기온이 풀렸을 시간에 산책을 내보낸 거라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봐야 주말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따끈한 태양이 머리를 비출 것을 알고 있다.



십년 만에 거실에는 벽난로에 불을 다시 지폈고, 시간차를 두고 전기가 다시 들어올 때마다 환호하며 다음번 블랙 아웃을 대비해 전투적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해가 있을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던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들은 마음이 착하고 삶이 홀가분 했을 것이다. 저녁을 일찍 먹고 장을 보러 내려갔는데, 동네 마켓과 저 멀리 한국 마켓까지 모두 일찍 닫혀 있었다. 식량 저장고가 비어가는 것은 조금 불안하지만 내일이나 모레면 식료품 가게도 문을 열 것이다. 남편은 파이프가 동파되어 곤란을 겪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가시게 된데다 수천불의 수리비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면 좀 억울할 것이다. 그런 일은 남의 이야기로 듣는 것으로 족하니 이 또한 감사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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